성경/바울

제12장 바울이 보는 지도자

은바리라이프 2009. 9. 8. 09:22

  제12장 바울이 보는 지도자
  이진천
  

지도자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지도자 자신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그를 따라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모여 잇는 어느 곳이든지 지도자는 필요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도자는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제사장으로서 지도자가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해하기에 따라서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동일한 모습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교회 안에서 가졌던 직분들, 즉 목사나 장로, 감독, 그리고 집사와 같은 호칭은 사용되어지지도 않을 것이며, 주님께서 우리에 대하여 그렇게 부르시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우리는 모두 주 안에서 한 형제가 되어있을 것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다가 올 세상에서 모두 동일한 모습으로 서게 될지라도 성경이 교회 안에서 지도자가 있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의 교회를 지켜주는 유일한 기준은 성경입니다. 성경이 지도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면 당연히 교회는 지도자를 세우고 그 지도자의 인도아래 모든 성도들이 힘을 모아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경을 통하여 교회 안의 지도자들의 모습에 대하여 여러 차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매우 신중하게 지켜봐야 하는 것입니다.

1. 지도자의 소명은 주님께로부터 온다.

많은 이들은 사역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향합니다. 물론 신학교는 사역자가 되게 하는데 많은 기술적인 것들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전한 곳에서는 성경을 보는 눈과 교회를 질서 있게 운영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들의 교단에 속한 목회자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교단 확장에 필요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주님의 종이 아닌 교단의 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은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까?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음이니(딤전1:12)

바울은 성경의 많은 곳을 통하여 분명하게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서 사역을 맡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1:1,롬1:6,롬1:7,8:28,11:29,고전1:1,1:26,7:21,7:22,6:12). 이 말씀의 의미는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신학교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아도, 또한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주님으로부터 사역이 맡겨지지 않은 것이라면 그는 결코 정상적인 사역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없다면 그는 결코 주님의 종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교회를 물려받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직업으로서의 사역자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어떤 이는 사역자가 품위 있는 직업으로 보여서 목사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남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은사를 가졌으니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사역자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모든 사역자는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만일 그들이 주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이 없다면 그는 가짜입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었습니까?

2. 감독자로서의 지도자

초대교회 당시의 지도자에 대한 호칭을 정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졌던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감독(bishop)이라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어떠한 상황을 감시하여 적절하게 지도하고 살피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감독하며 훈계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살전5:12)

어떤 이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 형제라는 사실을 내세우면서 교회 내의 지도자에게 지도받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그는 온전하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교회의 질서를 해치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그가 지도자의 권면이나 지도를 무시하게 된다면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독의 직분과 관련하여 오해가 있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한 명의 감독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도자가 여러 명 있다는 것은 자칫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소신 있게 주님의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또한 일을 서로 미룸으로 인하여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자세를 갖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한 명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빌립보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1:1)

그렇다면 어떠한 자가 감독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에 대한 답은 바울의 서신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딤전3:1-7,딛1:7-8). 그는 감독의 직분을 논함에 있어서 단순히 지도력을 감독의 자격 요건으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지도력과는 상관이 없을 법한 것들을 감독의 자질을 가진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면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책망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므로 자신은 책망 받을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건전하고 순결한 가정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고, 남을 바로 보고 가르칠 수 있기 위해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남의 잘못 된 행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하며,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아는 넓은 아량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재능이 있어 상대방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어야 하며, 술을 마셔서는 안되고, 구타해도서 안됩니다. 올바른 가지기 위해서 더러운 이익을 탐내서는 안되며, 오직 인내하고 말다툼하지 않고, 탐욕을 부려서도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언급된 것으로는 가정을 잘 다스려서 자녀들로 하여금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제대로 감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초신자가 교회의 감독이 되는 것은 자칫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질 염려가 있으므로 해서는 안되며, 밖에 있는 사람, 즉 교회의 성도들이 아닌 다른 불신자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자칫 교회 밖의 사람으로부터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기준을 디모데와 디도에게 서신을 통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되도다 이 말이여 곧 남자가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자기를 술에 내어 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오직 인내하며 말다툼하지 아니하며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로 하여금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 것이며 (남자가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으리요?) 초신자는 아니 되나니 이는 그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질까 염려함이라. 또한 감독은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하나니 이것은 그로 하여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딤전3:1-7).

지도자로서 감독의 자리는 남을 지도하고 가르칠만한 자질이 있었을 때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역자들에게 이처럼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감독으로서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그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잇다면 다른 이들은 그들의 지도에 따를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3. 장로로서의 지도자

오늘날 교회 안에는 많은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성경이 말하는 장로와는 거리가 먼 자들로서 다만 그들의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일부 장로들은 교회 안에서 목사가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라면 장로는 운영을 담당하는 자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지지해 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장로가 다스리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그리할 것이니라(딤전5:17)

성경이 말하는 장로는 오늘날 대부분의 목사들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것은 성경이 감독과 장로가 동일한 기준 위에 세워져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쓴 서신에서 1장 5,6절에서는 장로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곧 바로 7절에서 감독의 자격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둔 목적은 너로 하여금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같이 각 도시에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
장로는 책망 받을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제멋대로 한다는 비난을 받지 아니하는 신실한 자녀를 둔 자라야 하리라. 이는 감독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결코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 그런즉 그는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며 쉽게 화내지 아니하며 자기를 술에 내어 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에 빠지지 아니하며(딛1:5-7)

우리는 이것이 장로와 감독이 같은 직분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안에서 지도자들이며, 동일한 기준으로 사역을 맡아 일하는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로(elder)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이가 많거나, 어떤 모임의 원로로서 경험이 많은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도자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많은 경험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순종하는 삶 속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바르게 양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식만으로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들은 오히려 더욱 많은 이들에게 바른 길로 인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도자의 또 다른 모습은 바로 장로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삶을 통하여 많은 경험을 가지고 성도들을 잘 양육할 수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로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장로회에서 디모데를 안수했다는 기록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오랜 믿음의 삶은 바른 사역자를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순수하게 주님의 교회를 이끌어 갈만한 지도자를 세울 수 있고, 그와 더불어 함께 사역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회에서 안수할 때에 대언으로 네게 주신 그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딤전4:14)

뿐만 아니라 장로에 대하여 교회가 함부로 판단을 하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의 지도자가 문제가 생기면 주님의 교회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범적인 그리스도인 지도자는 모든 교회에서 필요하며, 만일 본이 될만한 지도자가 없다면 교회는 그 순수성을 잃어갈 것이 분명합니다.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 앞에서가 아니면 받지 말 것이요(딤전5:19)

이와 같이 지도자는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들을 지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많은 경험과 순결한 삶을 요구합니다. 그는 삶을 통하여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장로는 단순히 어떤 직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였던 베드로와 같은 이들도 자신을 장로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벧전5:1). 지도자로서의 장로는 바로 경험과 지혜로 성도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 있는 자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4. 교회 안의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지도자

오늘날 교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을 들 수 있다면 소수의 사람들만이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오직 목사만이 교회 안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종류의 은사를 가진 자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맡겨진 일들을 감당해 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직분으로서 역할도 주어졌습니다.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4:11)

이러한 직분들은 주로 교회 내의 질서를 위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 내에 질서가 없다면 혼란을 틈타 마귀는 집중 공격을 하게 될 것이고, 주님의 교회는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오직 예수님만이 교회의 유일한 지도자이고, 다른 이들은 소용이 없다는 식으로 교회 안에 직분을 두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바울은 분명하게 교회 안에서 다양한 직분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직분이 누구로부터 주어진 것입니까? 바로 그분, 주님으로부터 주어졌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직분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직분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분들은 다양한 것이라는 점도 인정해야만 합니다.

교회 내의 지도자는 결코 직분으로만 구분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단순한 질서를 위한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자들이 섬기는 일을 통해서 지도자로서 일을 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대언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기적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타언어들이니라(고전12:28)

혹은 사역이면 우리의 사역하는 일로 섬기며,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권면하는 자는 권면하는 일로 하고, 주는 자는 단순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7)

대부분의 교회들이 교회 내에서 다양하게 지도자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회 내의 일을 맡기려 하지 않으며, 목사와 마음이 맞지 않아 일을 시킬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일에 대하여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순히 목사나 성도, 혹은 단순히 개교회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통하여 다양하게 일을 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며, 그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일을 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감독이나 장로의 직분과 같은 일들은 초신자에게 맡길 수 없지만 다양한 은사를 통하여 봉사하도록 일을 맡기는 것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모두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맡은 일들에 대하여 지도자의 심정으로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목사에게 만능이 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교회를 능력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히 목사는 교만해 질 수 있으며, 사역의 가장 기본적인 말씀과 기도에 힘을 기울이기 보다는 가타 다른 것들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서 성도들을 모두 구덩이로 몰아넣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은사를 가진 모든 성도들이 지도자의 심정으로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교회를 더욱 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5. 사역자로서의 지도자의 자세

사역자는 결코 어떤 기업의 운영자가 아닙니다. 교회를 기업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은 오히려 기업주에게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자들일 뿐입니다. 만일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고용주의 의도를 잘 알고 그가 원하는 방향에서 일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가 고용주의 생각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을 따라 기업을 운영한다면 그는 즉시 해고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역자가 주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주님의 교회를 운영해 간다면 그는 주님으로부터 지도자로서 자격을 잃고 버림을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고전9:27). 그러므로 사역자는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먼저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사역자의 위치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먼저 바울은 율법 조문의 사역자가 아닌 영의 사역자로 삼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고후3:6). 이 말의 의미는 생명을 주는 일들을 하도록 일이 맡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전히 교회당 건물에 관심을 가지고, 재물과 성도의 숫자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그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일을 맡기신 것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의 서신을 통하여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역자를 표현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역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고전4:1,고후11:23,딤전4:6).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역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의도대로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주님 앞에서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주님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워서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많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전하고 계시며, 우리는 오직 그 말씀을 통해서만 바르게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맡은 사역자라면 언제나 성경을 손에 들고 오직 그 기준아래서 사역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복음의 사역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엡3:7,골1:23). 그렇습니다. 사역자는 다름이 아닌 복음을 맡은 자입니다. 복음을 영어로 “Gospel”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God + spell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복음을 Good news라고 말하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바른 의미의 복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역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하는 자입니다. 만일 설교하는 강단에서 복음이 아닌 철학이나, 세상 지식을 가지고 설교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진정한 사역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역자는 복음을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바울은 “신실한 사역자”에 대하여 말합니다(엡6:21,골1:7). 어떤 자가 신실한 자입니까? 그는 주인의 의도를 바로 알고 행하는 자입니다. 주인의 의도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분이 말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신실한 사역자는 바로 이러한 기준에 적합한 자입니다. 그는 오직 주 앞에 순종하는 자세로 오직 그분의 말슴을 따라 사역을 하는 자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귀중한 자세입니다.

6. 오늘날 호칭에 대한 소견

오늘날에는 주로 목사(pastor)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많은 이들은 그것이 성경에서 단 1회 사용되어졌다는 이유로 사용하기를 꺼려합니다(엡4:11).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감독이나 장로라는 호칭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그러한 직분의 기능들이 교회내의 지도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서 어느 한 직분만을 고집하는 것도 결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성도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

사실상 교회 내에서 어느 호칭을 써도 성경 안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같은 자격을 요구하고 있으며, 교회 내의 지도자들을 대표할 때 쓰여 지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같이 쓰여지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목사라는 호칭을 많이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역의 특성상 목사라는 직분이 가장 포괄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양을 돌보는 일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자신들이 주님의 일을 대신하여 양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감독의 기능과 장로의 기능을 모두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원하는 이유는 목사, 장로, 감독의 직분 가운데, 장로나 감독이 주로 성도들을 치리하고 가르치는 직분으로 분류되는 것이라면 복사는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 이처럼 목사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했던 것은 사역자들이 성도들을 섬기는 자세로 일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목사가 성도들을 섬기는 자세보다는 가르치고, 어른으로서 행세하기를 원한다면 목사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양을 돌보듯이 성도들을 돌보고 인도하는 직분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라는 호칭는 결코 권위있는 자리에 서기보다는 오히려 낮아지려는 사역자들에게 어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