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바울의 전도여행1

은바리라이프 2009. 9. 4. 19:13

바울의 전도여행 경유지 사모드라게섬
바울의 전도여행 중 섬 순례기

2002년 7월 29일, 월요일 11시15분 이제까지의 성지순례와는 달리 나의 마음은 매우 흥분된 가운데 터키 항공 TK91S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그것은 바울의 전도여행지 가운데 주로 가기 힘든 섬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예정보다 30분이나 단축하여 오후 5시 터키 이스탄불에 안착했다. 이번 순례는 성지사진에 조예가 깊은 목사님 한 분과 집사님 한 분 그리고 현장에서 만날 두 분의 목사님과 함께 하게 되었다. 단체가 아니라 비용 절감을 위해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게이트하우스에 1인당 15$을 주고 짐을 풀었다.

성경에는 496여곳의 도시와 성읍과 섬들이 나온다. 이스라엘에 273여곳, 요르단에 73여곳, 이집트에 34여곳, 터키에는 29여곳, 그리스와 지중해에 섬을 포함해 25여곳, 시리아에 20여곳, 레바논에는 16여곳, 이란과 이라크에 15여곳, 이탈리아에 4곳, 기타 지역에 7여곳으로 대략 496여곳이 있다. 그중에서 위치를 확인을 할 수 있는 곳이 450여곳이다. 이중에서 현재 답사가 가능한 곳이 300여곳으로 그동안 본인은 팔레스틴의 위험한 지역 일부와 정보 부족으로 인한 요르단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260여곳을 답사하였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섬은 모두 답사한 후  [성경속의 도시탐험]이란 책을 출판하였다. 이에 그동안 현장에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오늘날의 성지의 모습등을 성경 역사와 함께 국민일보에 연재하게 되었다. 앞으로 연재될 [성경의 도시 이야기]에는 성경의 도시와 섬들 중에서 특별히 찾아가기 힘든 귀한 곳과 사진을 중심으로 연재하게 될 것이다. 먼저 성경에 나오는 섬들을 답사기 중심으로 연재한 후 계속해서 나라별로 성경의 도시나 성읍을 연재할 계획이다. 연재 중에 새롭게 답사되는 곳도 중간에 소개할 예정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지나간 사모드라게섬



사모드라게섬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중에 들렀던 곳으로 성경에서 꼭 한번 언급된 곳이다(행16;11). 본인은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그리스로 가는 국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 열차는 오전 8시30분발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그리스 국경까지 가는 2층 침대로 된 국제열차였으나 시설이 낙후되어 우리 나라의 옛날 비둘기호보다 지저분했다. 예전에는 하루에 여러번 운행했지만 요즈음은 손님이 없어 하루 한번밖에 운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탄불을 떠난 기차는 달리다 정차하는 것을 반복하며 그리스를 향해 달렸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어렸을 때 작은 역까지 서는 우리나라의 완행열차의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졌다.

  그리스 국경에 있는 역에 도착한 기차는(사진1) 다시 그리스에서 터키로 가는 사람들을 태우고 떠났고 나는 알렉산드리아폴리스를 경유하는 그리스행 열차로 갈아탔다. 그 옛날 바울은 두번째 전도여행때 드로아에서 유럽 전도를 위해 네압볼리로 가던 중 경유했던 사모드라게섬을 찾는다는 설레임이 알렉산드리아폴리스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내 마음을 가만두지 못했다. 사실 내가 알기로 아직까지 한국인으로서 사모드라게섬을 찾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후 3시50분에 터키와 그리스 국경에서 출발한 열차는 오후 5시25분에 알렉산드리아폴리스 항구에 도착했다. 나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한시라도 빨리 섬을 방문하겠다는 마음에 40도나 되는 여름철에 무거운 장비를 들고 항구로 달렸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사모드라게섬으로 가는 배는 출발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우리가 타자마자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출항했다. 하마터면 이곳을 포기하고 네압볼리로 가야할 뻔 했다.

  알렉산드리아폴리스를 떠난 배는 오후 5시25분 사모드라게섬(사진2)에 도착했다. 사모드라게(Samothrace)섬은 트라키아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그리스 군도상의 에게해 동북부에 소재한 섬이다. 이 섬은 그리스로부터 흑해로 들어가는 굽은 뱃길에 위치하고 있어 여행자들과 식민지 개척자들, 그리고 상인들에게 중요한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이 섬에는 네 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높은 펩가리산은 해발 1650m의 높이로 에게해의 선원들에게 등대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섬에는 BC 8세기에 사람들이 정착했을 것이며 아마 그들은 이곳에서 트라키아인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 섬을 트라키아의 사모스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바다신인 포세이돈은 이 섬의 산꼭대기에 서서 트로이의 전쟁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헬라 전성기에는 해군 기지의 역할도 한 곳이다.

19세기 중엽 사모드라게의 승리로 알려진 배의 유물이 발견된 후 시작된 발굴작업은 1938년 이후에 재개되어 알렉산더와 그의 후계자들 시대에 건축된 12개의 건물 잔해를 포함하는 ꡐ위대한 신들의 사원ꡑ의 유적을 발굴했다. 이 위대한 신들에 대한 예배는 헤로도투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파네스의 글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 예배의 제사에는 각 도시의 사절과 순례자들이 헬라 전국과 소아시아 지역에서까지 모여들었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 네압볼리로 가는 도중 이곳을 방문하였으며(행16:11), 행20:6으로 미루어 보건대 드로아로 돌아가는 도중 아마 이곳에 들렀을 것이다. 바울이 탔던 배는 일단 사모드라게섬에 기항했는데 아마 그 곳은 현재 이 섬의 북서쪽에 있는 가장 큰 항구인 카마리오티사 항구였을 것이다. 초기 기독교 교회의 유적이 1938년 이 항구의 변두리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교회는 마을의 상륙을 기념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울은 터키의 드로아에서 이곳 사모드라게를 거쳐 유럽의 첫 입항지인 네압볼리로 갔으나 나는 그리스 본토에서 이곳으로 들어왔다. 저녁이 되어 주위에 있는 니키 호텔(Niki Hotel)에 짐을 풀자마자 일행 중 한분는 준비한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나는 시장에서 야채를 구입하여 여행과 사진 촬영을 위해 필요한 안내책자와 엽서를 구입했다. 처음 방문하는 순례지의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현장의 안내책자와 엽서를 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나에게는 먹는 것보다는 우선 좋은 자료 사진을 찍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튿날 오전 8시 생소한 지역이라 택시를 빌려 책자에 나온 그림을 보여주면서 장소 안내를 받았다. 처음 간 곳은 항구에서 6km 정도 떨어진 유적지인데 생각과는 달리 유적지는 매우 컸고 아직도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었다. 특별히 니케신의 기념물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니케(Nike)는 그리스의 승리의 여신으로 양손에는 종려나무가지와 월계관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나이키 신발은 이 여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 유적들은 바울이 이곳을 지나가기 전 이미 기원전 3세기경의 것들이었다. 이제는 발굴이 거의 끝나고 정리하는 단계에 있는 이곳의 가장 큰 유적은 신전 기둥(사진3)이었다. 처음 찾은 곳이라 원형건물과 야외극장, 상점터, 대신전터, 확인되지 않은 방 등 성경에 필요한 자료가 되는 것은 모두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유적지에 있는 작은 박물관을 관람한 후 이 섬의 가장 역사가 깊은 호라 마을로 향했다.

호라 마을(사진4)은 산 중앙 중턱에 있는 유적지에서 차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으며 마을의 모습은 마치 엽서의 그림처럼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 섬은 성경에서 단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중 드로아를 떠나 네압볼리로 가는 여정 중 하나로만 한번 언급될 뿐이다(행16:11). 현재 주민은 대략 3000여명 정도로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외국인은 없으며 모두 그리스 본토민들의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바울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난 가우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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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데섬을 답사하기 위해 그리스의 데살로니가에서 예정보다 앞당겨 그레데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하루를 앞당겨 그레데섬에 도착함으로 하루의 여유동안에 그리스 최남단의 가우다섬을 가기로 했다. 가우다섬은 로마로 압송해 가던 바울이 탄 배가 그레데섬 남쪽 해안에 위치한 미항 앞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쫓겨가던 중 간신히 거루(배를 매어 놓을 대 매는 줄)를 잡은 곳이다(행27:16). 이전까지는 성경에 꼭 한번 나오는 이 섬이 실제로 지도상에 표기가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혹시나 했던 가우다섬이 그레데 현지에서 구입한 상세한 그레데섬의 지도에 현재명으로 가브도스라는 표기로 나온 것을 본 순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가우다섬을 갈 수 있다는 큰 기대를 가지고 그레데의 이라클리온 공항에서 함께 한 두 분과 함께 택시 기사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가우다섬을 출발하는 남쪽에 있는 작은 항구인 스파키온으로 향했다. 그레데는 동서로 길게 늘어선 섬으로 중앙에는 아주 높은 산맥이 섬과 같이 동서로 놓여 있어 한시라도 빨리 북쪽에서 남쪽의 스파키온 항구로 가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애태우고 있었다. 그렇게 택시는 험한 산맥을 넘으며 달리기를 2시간 30분이나 되어서야 가우다로 가는 배가 있는 스파키온 항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성경에 작은 섬으로 언급되는 이곳 가우다섬에 가는 배는 하루 한편 밖에 없었고 그나마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떠나버려 이튿날이나 갈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항구 옆에 있는 사마리아라는 이름의 여관에 3인 1실의 방을 40유로를 주고 짐을 풀었다.  

  이튿날 10시30분에 가브도스로 출항하는 배에 올랐다. 이 배는 아침에 출발하여 오후 4시에 스파키온으로 다시 돌아오는 배였다. 나는 같이 간 두 분과 함께 아직까지 한국인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가우다섬을 간다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200여명이 타는 배에 올랐다.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스파키온 항구를 떠난 배는 지중해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잔잔했던 파도가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마침내 2시간 40분만에 가우다섬의 가브도스 항구에 도착했다.

  가우다(Cavda)섬은 그레데섬 남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서 오늘날의 희랍어로는 ꡒ가브도스(Gavdos)ꡓ라고 하며, 이탈리아어로는 ꡒ고조(Gozzo)ꡓ라고 한다. 이곳은 그리스 섬 중에 최남단에 있어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마치 우리나라의 최남단에 있는 마라도와 같은 곳으로 아프리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내가 탄 배의 관광객 역시 아직 개발되지 않은 그리스의 최남단을 찾는다는 뜻으로 온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배가 정박한 가브도스 항구에는 작은 상점만 한 곳 있을 뿐이었다. 섬 주민은 약 50여명이 거주하고 있었고 교통 수단 역시 짐을 실을 수 있는 1톤 정도의 반 짐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별다른 숙소가 없어 스파키온 항구를 떠난 배는 하루에 일회 왕복하여 도착한 이후부터 섬을 본 후에는 다시 타고 온 배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가우다섬에 첫발을 내딛는 것은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풍랑으로 인해 오후에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 배는 이튿날 오전 6시나 출항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남은 섬 일정에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꼼짝없이 배 외에는 전혀 다른 교통편이 없는 거의 무인도와 같은 가우다섬에서 우리는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배가 출항하지 못해 시간의 여유를 갖고 긴 해안가를 따라 걸어가 보기로 했다. 작은 섬의 해안으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해안에는 풍랑을 만난 배들에게서 나온 파손물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어 이곳이 얼마나 파도가 심한지를 짐작할 수 있었고, 바울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밤이 되어 해안가의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잠을 청하기 위해 섬에 유일하게 있는 상점에서 종이박스를 구해 바닥에 깔고 잠을 청했다. 하늘의 별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그야말로 하늘에 뿌려놓은 듯한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바울이 탄 배가 항해 중 풍랑을 만나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행27:16), 그레데 남쪽 해안을 따라 좇겨갈 때 마타라 곶을 돌아 바로 이곳 가우다 남쪽 아래쯤 왔을 때 간신히 거루를 잡았다. 바로 그곳에서 나 역시 풍랑을 만나 처량하게 해안가에 누운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어찌 잠이 오겠는가! 반바지와 반팔에 달려드는 모기로 한숨 못자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수십 여 차례의 성지를 답사했지만 이처럼 고생한 적이 없었다. 이라크의 갈대아 우르를 찾아 갔을 때 5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지 중 사막에 있는 돕가에서 베두인 천막에서 잠을 잘 때도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았다. 바울이 풍랑을 만난 가우다 섬에서, 바울이 당한 고생을, 바로 그 장소에서 경험하게 될줄이야! 아마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은 바울의 심정이 어떻했는가를 체험케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이튿날 새벽 6시에 출발하기도 되어 있던 배는 예정대로 출발하여 무사히 귀중한 체험을 간직한 채 스파키온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