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분별/성령과 악령

인도의 바울, 썬다―싱의 간증

은바리라이프 2009. 8. 26. 17:22

썬다―싱


1. 썬다-싱이 한국에서 초판 발간은 1925년입니다. 


2. 초판 발간 이후 십수판이 발간되었습니다.


3. 이 책은 1978년도 증보판입니다.


4. 현재 출간되고 있는 썬다-싱 보다 신앙적입니다.


5. 출판사는 성광출판사이고 편자는 강흥수 목사입니다.


6. 이 책은 출판 된지가 오래여서 시중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책입니다.


● 경력편


1.  出生(一八八九年 九月 三日生)


인도(印度)는 종교의 나라요 신비의 나라요. 지금도 히말라야의 깊은 山중이나 돌 바위 굴속에는 세상을 피하여 숨어 있으며, 생식(生食)하고, 고행(苦行)하며, 기도하고 도(道)를 닦는 사람이 많이 있다.


저들은 진리를 얻기 위하여, 다음 세상을 준비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헌신짝 같이 내어버리고 표연히 집을 떠나 그 일생을 이같이 운둔 생활 가운데 보내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 있을진대 나라와 이러한 민족에게 참된 진리를 증거 할 자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썬다―싱은 주님께서 보내신 二十세기의 사도이다. 안개 속에 덮인 인도와 전 세계를 향하여 세우신 주님의 등대이다. 사상적 혼란이 참 빛을 가리우고, 물질적 파도가 진리를 흐린 오늘날 썬다―싱은 이 세대를 위하여 외치는 주님의 사자요 선지자인 것이다.


「옥스포-드」의 학자 스트리터 박사는 썬다―싱을 만나 본 인상을 이같이 말하였다.『유태인 중의 바울, 로마인 중의 어거스틴과 같이 썬다―싱은 인도의 특색으로써 그리스도의 빛을 세계에 증거 하는 자이다..... 저와 함께 있는 사람은 자기도 잊어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만 생각하게 된다.』하였다.


과연 이 말과 같이 베드로는 유태인에게 보내고, 바울은 이방인에게 보낸 것 같이「썬다―싱」은 一八八九년 九월 三일 北인도 「펀잡」洲「람풀」이라는 작은 동리에서 태어났다.


그 아버지 「실다-샤싱」은 그 지방의 부유한 지주(地主)로 가정생활은 극히 단란하고 평화스러웠다. 저는 여러 아들 중의 막동 아들로 부모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특히 그 어머니의 사랑과 감화는 저가 후일 위대한 성자가 되는데 깊은 터가 된 것이다.


공자나 맹자나 와싱톤이나 링컨이나 어거스틴이나 웨슬레나 김유신이나 율곡이나 동서양의 위대한 인물들이 다 훌륭한 어머니를 가진 것 같이 저의 어머니도 역시 위대한 여성중의 한사람이었다.


그 어머니는 종교적 인물이었다. 고상하고 순결하고 사랑과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미개한 인도 시골에서 전도하는 기독교 선교사나 전도인들은 그 집에서 여러 번 대접을 받고 환대 받은 일이 종종 있었다.


그는 종교적인 인물과 교제하기를 좋아하여 그 집에 늘 높은 중들이 출입하며 경전을 가르치고 읽고 하기를 부지런히 하였다.


집이 부유함으로 여름이 되면 여기 저기 명산. 큰절을 순례하고 히말라야 산중에 피서를 가 있었다. 「썬다―싱」은 어려서부터 이같이 위대한 자연을 접촉 한 때문에 후일 자연의 서(書)라는 대자연 가운데 숨은 진리를 비유하고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위대한 어머니】


그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교훈한 중심은 『너는 다른 형제들 같이 헛된 세상 영광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자라나서 반드시 훌륭한 「사두-(종교가)」가 되어 영원한 평화를 구하라』하였다.


이같은 생각이 「썬다―」의 마음에 깊이 뿌리 박아 저는 한번도 다른 직업을 가지겠다고 생각하여 본 일이 없다.


그는 자기를 크리스찬 「사두」라 부르면서 『나를 믿게 한 것은 그리스도요, 나를 사두- 되게 한 것은 어머니』라고 하였다.


저가 어머니를 말한 때는 그 얼굴에 부드러운 존경의 빛을 띄우고 후일 하늘에 가서 반드시 어머니를 만나겠다. 확신하며 『어머니를 하늘에서 만나지 못할진대 나는 어머니와 같이 지옥에 가기를 하나님께 빌겠다.』고 했으니 이로써. 그 어머니를 사랑하는 정이 얼마나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권하면『나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것은 우리 어머니 품속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같이 사랑하고 존경하던 그 어머니는 저가 열네살 되던 해 그 사랑하는 아들을 뒤에 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은 어린 「썬다―」의 마음을 몹시 어둡게 하고, 적막하게 하고, 불안과 슬픔으로 차게 하였다. 이는 저로 하여금 평화를 갈구하게 된 가장 큰 동기가 되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1904년 12월 18일)


썬다는 일곱 살 때부터 인도경전의 ‘빠가바트끼다’ 같은 것을 외우고, 15세때 시쿠족의 성경 ‘구란쓰’를 다 읽고, 회교의 고란경과 ‘우비니샤드’ 같은 경전을 읽었다. 그러나 이 같은 종교 철학의 지식이 높아 갈수록 마음의 진리 갈구와 참 평화를 얻으려는 욕망은 더욱 불 같이 일어났다. 그래서 인도의 이름 있는 종교가나 성자를 찾아가서 그 마음의 욕구를 말하였으나 한사람도 그 마음을 만족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 성경을 불사르다 (1904년 12월 16일)


그때 그 동리에는 장로교 소학교가 있었다. 그는 보통교육을 받기 위하여 그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성경 읽고 예배 드리는 것이 규례가 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학교규칙에 따라 성경 한권을 샀다. 그러나 그 교리가 인도 종교와 다른 것을 보고 그는 격렬한 반기독자가 되었다. 조상의 종교를 받드는 열성과 씨크족의 피를 받은 오만한 성격이 터져서 그는 여러 가지로 기독교를 반대하며 선교사와 교사를 핍박하였다.


나는 씨쿠족의 출신이다. 우리는 조상의 종교가 있다. 무슨 필요로 이단의 종교를 믿겠는가. 하며 마음에 맞지 않는 성경구절을 여러 사람 앞에서 찢어 버리고 예수교 성경에 석유를 붓고 불을 놓았다.


이 말을 들은 그 아버지는 저를 책하며 너는 그런 난폭한 짓을 하여서는 안 된다. 성경도 좋은 책이다. 내 마음에 싫으면 선교사에게 돌려보내는 것이 옳지 않으냐. 훈계하였다.


그래서 그 아버지는 저를 그 학교에서 떼어 3마일이나 되는 국립소학교에 보내었다. 열대의 뜨거운 햇빛을 쪼이며 3마일이나 먼 곳으로 어린 소년이 매일 통학하게 되니 자연, 건강을 해치는 바 있어 부득이 장로교 소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반항심은 여전하여 혹시 선교사의 그림자가 그 몸에 비치기만 하면 그 몸이 더러워졌다고 다시 몸을 씻고 오랫동안 재계하는 일 까지 있었다.


이같이 기독교에 대한 반항심이 높아 갈수록 자기 종교로 마음의 만족을 얻으려고 요가의 달인을 찾아가서 묻기도 하고, 명상도 하여 보았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어떤 때는 번민하다 못하여 자기가 찢은 성경에는 무슨 도움이 없을까 하고 펴보니 [무릇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마11:28)]에 있는 말씀이었다.


그는 기뻐하며 이것이 내가 구하는 참 평안이 아닌가 하고 한때 몹시 감격하였으나 자기종교를 쉽게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성경을 그리 업수히여길 것이 아닌 줄 깨닫고 간간히 신자와 교사에게 가서 모르는 것을 묻기도 하였다.


한번은 성경을 펴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장16절)] 저는 이 구절을 보고 두 번째 감동하였다. 그러나 예수 믿을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그러므로 저의 마음은 더욱 분열과 충돌과 번민으로 끓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를 나의 구하는 평화를 얻지 못하면 차라리 자살하여 저 세상에 가서 구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목숨을 바쳐서 진리를 얻으려하였다.


섣달 추운 새벽 3시마다 일어나 목욕하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이 천지간에 신이 있거든 이 소원을 이뤄 주소서 하는 것이었다. 얻지 못하면 그 목숨을 버리려는 굳은 결심으로 부르짖는 저의 간절한 기도는 드디어 천지의 참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신 고귀한 체험을 얻게 된 것이다.

 

주의 나타나심(1904년 12월 18일 오전 4시 반)


이에 대하여 썬다―싱 자신이 증거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도인이나 신자가 종종 나를 찾아오면 나는 늘 거절하고 핍박하였다. 내가 어떤 거리에 나갔을 때 나는 사람들을 충동하여 선교사에게 돌을 던지게 하였다. 나는 때로 성경을 찢고 불질렀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예수교 서책을 찢어서 석유를 치고 불을 놓았다. 이 종교는 거짓된 것이니 없이 하여야 된다고 여러 가지로 그 박멸책에 애를 썼다.


동시에 나는 나의 종교에 충실하여 모든 의식과 규칙을 잘 지키었으나 아무 만족과 평안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자살하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성경에 불 놓은 후 3일 동안은 매일아침 3시에 일어나서 전과 같이 목욕하고 기도하였다. 오! 신이여 만일 신이 계시다면 나에게 바른 길 참 도를 가르쳐 주소서. 그렇지 아니하면 나는 자살하겠나이다.


내 생각에는 만일 만족을 얻지 못하는 때는 다섯 시 기차가 그 앞을 지나갈 때 철길에 목을 놓고 치어 죽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였으나 저 세상에 가서 얻고자 하였다.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그러나 응답은 오지 않았다. 약 반시간 이상 평안을 기도하였는데 오전 4시 30분쯤 되어 내가 일찍 생각지 못한 것을 보았다.


내가 기도하는 방안에 큰 빛이 보임으로 나는 불이 일어 낫는가 하여 두루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신이 나에게 응답으로 보내 주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그 빛을 본즉 주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신 모양이었다. 그것은 영광과 사랑이 넘치는 거룩한 모양이었다. 만일 이것이 어느 인도교 신의 나타난 것이라면 나는 곳 몸을 던져 그 앞에 엎디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며칠 전까지 모욕을 가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 이러한 모양은 결코 상상이나 무엇으로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다음 그는 인도말로 이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너와 전 세계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나의 생명을 버린 것을 알아라] 그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시고나 이것은 그 자신(自身)이다] 하는 생각이 문득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그의 앞에 몸을 던지고 이 때 까지 얻지 못하던 놀랄만한 평안을 얻었다.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갈구하던 행복이다. 이것이 곧 천국이다. 내가 일어난 때 그의 거룩한 모양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모양은 없어졌으나 나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은 그후 언제까지나 남아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자고 있는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나는 기독신자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가서 자라. 너는 엊그제 성경을 불태우지 않았느냐. 그리고 벌써 기독신자가 되었다고 하느냐.] 나는 [그렇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살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를 따르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나는 그의 제자올시다. 나는 그에게 봉사하려고 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 사실은 마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서 공중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묵시를 받고 회개한 바울의 경험과 심히 흡사한 점이 있다.


바울이나 썬다―싱이나 그리스도를 강렬히 핍박한 것은 자기 종교에 충실한 때문이오, 진리를 굳세게 옹호하려는 충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빼어 특별한 그릇으로 쓰신 것이다. 이 때에 받은 평안과 마음은 저를 근본적으로 새 사람을 만들어 주님을 증거 하는 자가 된 것이다.


썬다―싱의 이 같은 체험에 대하여 혹은 환상이나 착각이나 상상의 산물이 아닌가 의심하는 자에 대하여 그는 두 가지 점을 들어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다.


북인도의 섣달은 어지간히 춥다. 이 때 이른 새벽에 냉수욕을 한 몸이니 꿈같은 환상이 일어날리 없고 또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같은 일은 예상도 못한 일이다. 나는 그때가지 바울의 회심사적에 대하여는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보다 심중의 변화다. 내가 오랫동안 갈구하여도 얻지 못하던 마음의 평안은 이때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변치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놀랄만한 봉사적 생애를 보면 증거 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였다. 40일 동안 친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밧모섬의 요한과 다메섹의 바울과 아씨시의 푸란시쓰와 기타 2천년 내려오면서 모든 성도들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시고 늘 섭리하신다.


옛날,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시체를 찾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것과 같이 두려움에 덜며 방안에 모여있던 열 제자에게 나타난 것과 같이, 의심에 쌓인 도마에게 나타나 못 자국을 보인 것같이, 엠마오로 가든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것과 같이 오늘날도 그 사랑하는 자 택한 자에게 한가지로 나타나시는 것이다.

 

박해


예수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을 화평케 하려 온 줄로 알지 말라. 화평케 하려 온 것이 아니라 병기를 일으키려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아들이 아비와 불화하며 딸이 어미와 불화하며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 하게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그 집안의 식구니라(마 十 34-36)]


과연 썬다-싱이 예수 믿는 그날부터 그 가정의 일족간에는 큰 병기가 일어났다. 이 어린 주의 종을 향하여 박해의 칼날이 쓸어 들기 시작하였다.


그 아버지 크게 실망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기대하던 모든 소망은 다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이 이단의 자식 하나로 말미암아 이름 있던 그 가문이 일조에 타인의 조소받을 것을 생각하매 슬픔과 분함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좋은 말로 달래어 그 아들의 신앙을 돌이켜 보려고 말하였다. [우리는 명예 있는 종족 중에 명예 있는 문벌이 아니냐. 그런데 네가 예수 믿음으로 얼마나 큰 수치가 되는지 네가 아느냐. 네가 마음을 고친다면 앞길에는 큰 영달이 있을 것이오, 무슨 소원이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다시금 너의 전도와 일가 문중의 치욕 되는 것을 깊이 생각하여 보라.]


그러나 아무 말과 유혹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그 굳은 신앙을 볼 때 그 아버지는 태도를 변하여 압제와 강압으로 그 믿음을 꺾으려 하였다.


나 어린 썬다―싱은 때때로 한없는 슬픔과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아비나 어미를 사랑하기를 나보다 더 하는 자는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이나 사랑하기를 나보다 더한 자는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안는 자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다 (마十37-39)]


이 같은 주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새 힘을 얻고 이길 수 있었다. 다만 아버지의 눈에 눈물을 볼 때에는 견딜 수 없는 애처로운 정을 느끼었으나 다시 더 큰 사랑으로 이끄시는 배후의 힘에 의지하여 늘 이길 수 있었다.


한 시험이 물러가면 또 한 시험이 뒤를 이었다. 그 아버지만 못하지 않게 조카를 사랑하는 그 숙부는 그 조카의 굳은 마음을 고쳐 볼까하고 그를 데리고 지하실에 들어갔다. 들어가자 문에 쇠를 잠그는 것을 보고 두려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숙부는 사랑하는 낯빛으로 금고를 열고 속에 있는 놀랄만한 돈을 보였다. 거기는 값 높은 금 은 보석과 화폐가 수없이 있었다.


숙부는 자기의 머리에서 두건을 벗어 그의 발아래 놓고 가장 겸손한 말로 비는 듯이 조카에게 말하였다. [네가 만약 그 이단의 신앙을 버리고 우리와 같이 있으면 이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이 될 것이다.]


금전 같은 것은 썬다-싱의 원하는 바가 아니다. 다만 지위 높은 숙부가 나 어린 자기 앞에 극진한 겸손으로 비는데 대하여 감히 거절하기 어려웠다.


벗은 머리를 보고, 제 발 앞에 높인 그 두건을 보고 내가 만약 그 말을 거절한다면 이 얼마나 숙부를 모욕하는 일인가 생각할 때 나 어린 그 마음에 결정하기 어려워 두 눈에서 괴로움과 슬픔을 짜내는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다시 소년의 마음 눈에는 영광과 자비가 가득 찬 주님의 모양이 보였다. 그의 전신에 새로운 힘이 뻗혔다.


[아저씨! 미안합니다. 비록 이 세상의 모든 부귀를 다 준다 할지라도 내 마음 속에 가진바 평안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내 몸이 불사룸을 당할지라도 나의 사랑하는 구주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이같이 하여 저는 이 가장 어려운 유혹에서도 승리를 얻었다. 그 후부터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이는 내 아들이 아니오, 가족이 아니오, 버린 자라고 말하였다.


아무 방법으로도 이 소년의 가진 굳센 마음을 꺾을 수 없음으로 온 가족들의 미워함은 한층 더하였다. 그 형들은 가장 큰 핍박자로 저를 때리고 치며 몹시 굴었다.


성경을 빼앗고 저와 교제를 끊었다. 저는 몸을 피하여 ꡐ루디아나ꡑ에 있는 아메리카 장로회 본부에 가서 사랑과 관대를 받으며 거기 있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이름이 신자요. 사실은 썬다-싱을 시기하고 미워함으로 저는 사람에게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이 한때 열광하던 신앙을 버리고 온 줄 알고 기뻐 저를 맞아 들였으나 오히려 앞서 보다 더 열심 있는 신앙의 태도를 보고 실망하였다.


썬다-싱은 그 최후의 결심을 보이기 위하여 ꡐ씨쿠ꡑ족이 그 경전에 의하여 가장 존중히 여기는 머리를 베어버리고 나는 ꡐ씨쿠ꡑ가 아니라는 것을 표명하였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을 크게 격분케 하여 입으로 말할 수 없는 학대를 받았다.


집에서도 밥상을 같이하지 못하고 음식물은 던져주고 가축과 같이 따로 거처하게 하였다. 이 같은 천대는 어린 그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였으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 결심을 변케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하여도 변치 않는 그 아들의 마음을 안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루의 여유를 주고 집에서 나가라고 선언하였다.


[우리는 네가 그릇된 그 믿음을 버리고 너의 조상과 너에게 호의를 가지는 사람들에게 복종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의 행동을 보니 너는 우리를, 아니 너의 어미를 업수히여기는 자다. 네가 그 같은 불온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 온 이상 나는 전 가족의 이름으로 너는 이제 내 아들이 아니오, 우리와 너와는 아무 관계없는 것을 선언한다. 우리는 네가 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너를 잊어버리겠다. 너는 내일 이 곳을 떠나라 아무도 너를 위하여 걱정하지 아니할 때 너의 구주가 너를 구원하는가 어쩌는가 구경하겠다.]


이 선언을 받은 썬다-싱의 심사야 어떠하였을까. 이제 부자간의 인연은 끊어졌다. 오늘밤이 밝으면 정든 고향의 산천과 따뜻한 내 가정과 사랑하는 부모형제 일가제족을 영원히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십자가를 각오는 하였으나 그의 가슴은 터지는 듯 하였다. 밝은 날 그는 십육년 동안 길러 자란 보금자리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ꡐ빠치아라ꡑ 까지 가는 기차 임금과, 몸에 입은 낡은 옷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다만 주님 한 분을 의지하고 십자가의 첫길을 떠났다. 저는 기차를 타고 앉아서 ‘란바‘에 있는 작은 기독자의 촌(村)을 생각하였다.


그들은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고 피하여 그곳에 가서 사는 것이다. 차에서 내려 그곳 인도인 목사의 집을 찾았다. 그는 그때부터 심한 복통이 일어서 견딜 수 없었다.


친절한 목사 부처는 의사를 청하여 진찰한 결과 비로소 독을 먹은 것을 알아냈다. 도저히 나을 희망이 없고 내일 아침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갔다.


그가 집을 떠날 때에 그 일가 사람들이 그 점심에 독을 넣었던 것이다. 저들은 이 소년이 살아서 부끄러움을 나타내는 것보다 차라리 죽여 없이 하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고 이런 무서운 계획을 한 것이다.


후에 싼다 싱의 친구도 이렇게 하여 독에 걸려죽은 일이 있다. 썬다는 입으로 피를 토하며 몹시 고통 중에 신음하였다. 목사의 아내는 그의 머리맡에서 밤을 새이며 그의 임종(臨終)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강한 생각이 하나 일어났다.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무의미하게 죽게 하려고 암흑 중에서 구원하여 한없는 그 축복을 주실 리는 없다. 나는 땅위에서 더 살며 주님의 증인이 될 사명이 있다.]


이 같이 생각할 때 그는 남은 힘을 다하여 주께 기도하였다. 아침이 되매 기력이 쇠하였으나 병세는 많이 나았다.


의사는 이미 죽은 줄 알고 와서 본즉 이상한 일이다. 저는 성한 사람 같이 성경을 보고 있었다. 후에 이 의사는 기독교 신자가 되어 미얀마에서 전도 사업에 활동하게 되었다 한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한 때 그는 [루디아나]에 가서 아메리카 선교사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핍박은 이곳에까지 있었다. 그가 죽지 않고 산 것을 안 그 친족들은 여러 가지로 간책(奸策)을 쓰다가 마침내 그곳 촌사람들을 선동하여 가지고 그가 있는 밋숀 본부에 돌을 던지며 그를 빼앗으려고 쳐들어 왔다.


그러나 경찰의 힘을 빌어서 겨우 위험을 면하였다. 어떤 날 그는 난간 마루 의자에 앉아 묵상에 잠기고 있었다. 그때 문득 저 쪽으로 늙은 아버지가 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반면에 수심을 띄고 막대를 의지하여 허둥지둥 들어오는 가엾은 그 모양을 볼 때 아! 아버지가 내 신앙 때문에 늙은 것이 부자의 인연을 끊었으나 그래도 사랑의 줄을 끊지 못하여 또 다시 찾어 오는 것이다.


그립던 아들을 만난 그 아버지는 반가운 정에 못 이기어 아들을 붓안고 입맞추었다. 부자는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아버지는 이왕의 행복스럽던 가정의 이야기와 그 아들을 사랑하던 어머니의 이야기 등 옛날의 추억으로 그 마음을 이끌어 갔다.


늙은 아버지의 지정(至情)에서 흘러나오는 그 한마디 한 마디가 그 폐부에 녹아들어 갈 때 그의 두 눈에서는 막을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비오듯하였다.


소년의 마음에는 지난날의 생애가 번개같이 지나갔다. 그러나 큰 번뇌 중에서도 그의 가장 친근한 벗인 주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힘을 주사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내가 주를 따르는 신앙심을 변케할 것은 없다.]고 선언하여 그 아버지는 아들을 회심케 하려는 생각이 쓸데없는 노력임을 다시금 깨닫고 낙심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 모든 어려운 유혹과 시험을 이긴 썬다 싱은 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 일생과 전부를 바치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졌다.

 

헌신봉사


많은 시련을 지낸 뒤 그 몸을 피하여 [씨물나]에서 二十三마일 되는 [사파-즈]의 아메리카 의료(醫療) 전도소에 가서 보호를 받으며 자유로 성경을 전념 연구하게 되었다.


어린 소년이 우거진 그늘 밑 나무뿌리에 앉아 내 몸과 온 세상을 다 -잊어버리고 마음과 뜻을 성경에 파묻고 눈물을 흘려 가며 읽어 가는 광경은 핍박을 모르고 평화를 꿈꾸는 구미(歐美)인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그 전기의 어떤 저자는 말하였다.


一九0五년 九월 三일 그의 16세 생일 그는 [씨물나]에 가서 영국교회의 ‘아이랫맨’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새로운 기쁨과 감격으로 이튿날 [사파즈]에 돌아왔다.


그는 어머니가 평생 원하던 사두-적 생애의 참뜻을 그리스도에게 헌신 봉사함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세례 받은 三十三일만에 그는 전 생애를 주께 바치고 사두-로써 세상에 나서기를 작정하였다.


인도 종교가 즉 사두(SADhu)가 입는 사푸론 로-브를 입고 인도말로 된 성경 한 권을 손에 들고나섰다. 그 외에는 그의 소유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살아 계신 주님 한 분만이 그의 재산이오 소유요 생명이오 힘이었다. 종교가의 도복(道服)을 입은 나 어린 사두-는 마음으로 복음전도의 길을 나섰다.


원래 인도에서는 헌신적인 종교가를 대단히 존경한다. 귀족이나 부인이나 계급인은 자존심이 강하여 제 나라나 동족의 그릇이 아니면 물 한잔이라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도 종교가의 의복 속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담은 젊은 사두-는 전도하기에 많은 편리가 있었다.


그는 반석 같은 신앙과 불같은 정열을 가지고 먼저 자기 고향 [람풀]로 갔다. 몇 달 전 쫓겨 나던 곳, 죽음을 겨우 면한 그 곳을 향하여 이번에는 반대로 사랑의 공격, 전도의 돌진을 시작하였다.


집집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받은 바 평화와 얻은바 구원과 그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다. [판쟈브 카시밀]로 가서 다시 [밸누지스탄] [아부카니스탄] 아직 복음이 미치지 못한 곳을 향하여 전도하였다. 많은 고난과 핍박이 간 곳마다 저의 앞을 막았으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과 핍박은 땅위에 어떤 행복보다도 귀한 것이라 늘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갔다.


혹은 동상(凍傷)을 당하며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인적이 없는 산림 가운데 쫓겨나며 짐승의 굴에 들어가며 혹은 벗은 발로 이리저리 터지면서도 그는 열심히 전도하며 (고전11-13) 다시 문닫긴 티베트 西藏을 향하여 친히 그 가운데 들어가 보려고 한번 히말라야 산중의 [코드갈]에 물러 나와서 고요히 주와 교통하며 앞길을 기도 중에 준비하였다.


이 곳은 해발 五천척 고지로 [씨물나]에서 五十五마일 먼 곳인데 마치 옛날 전도의 근거지 [가버나움]과 같은 곳이다. 그가 영적(靈的) 깊은 은혜의 신비한 자리에 들어간 것도 많이 여기서 된 일이다.



[스토-크쓰氏와 동행]


[썬다]가 [코드갈]에 있을 때 그 근처에 있는 미국사람 [스토크]씨를 만나게 되었다. 이 사람은 [푸란시쓰]의 숭배자로 그를 본받아 고국의 부유한 생활을 버리고 인도의 형제를 위하여 이 같이 수 만리 타국에 와서 고생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뜻이 맞아 행동을 같이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칸구라]의 협곡을 넘어 많은 고난을 겪어 가면서 전도를 계속하였다. 그 때문에 [썬다]는 건강을 해하여 불의에 길 가운데 거꾸러지게 되었다.


그 때 [스토크]씨는 웬 일인가 물으니 [썬다]는 가는 목소리로


“나는 참 행복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생을 당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고 말함으로 그는 마음으로 크게 감탄하였다.


그의 입으로서는 한번도 불평을 말 해 본 적 없고 고통 중에 참 기쁨을 맛보았다. “이것이 그의 생애의 위대한 것이라” [스토크]씨는 말하였다. 스토크씨의 도움으로 겨우 어떤 서양사람의 가정에 도착하였다. 본래 종교에 무관심하던 주인도 그들의 행동에 감격되어 참 신앙을 얻게 되었다.


병이 낫자 다시 전도를 계속하였다. 낮의 더위를 피하여 밤에 다녔다. [스토크]씨는 환등을 갖이고 길가이나 집안에 사람을 모여놓고 설교하여 자지 않고 쉬지 않는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 때 [스토크]씨가 기록한 것을 보면


“나의 생애가 변화 된지 얼마 후 나는 한 인도사람 신자와 같이 전도하게 되었다. 나의 생애가 변화 된지 얼마 후 나는 한 인도사람 신자와 같이 전도하게 되었으니 그 나이는 겨우 소년이나 주를 위하여 기갈과 추위와 병과 감옥을 참고 견디었다.”


이같이 이 두 사람은 서로 그 인격에 경의를 가졌다.


오랫동안 같이 다니는 중에 사두는 푸란시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자기와 합치하는 생애의 경력을 듣고 존경하는 마음과 애모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푸란시쓰의 모방자가 아니다.


“저는 저대로 되어라. 결코 다른 사람의 집합체가 되지 말라.”


이것은 [사두] 자신의 태도인 동시 사람에게 권하는 말이다. 후일 그는 말하되


“[스토크쓰써]는 푸란시쓰에 대하여 너무 맹목적으로 모방한다.” 고 말하였다.


스토-크쓰]씨도 5년 후에는 그 방법을 버리고 자기의 입장을 발견하였다. 사두는 또 그 교단 건설에 대하여


“성 푸란시쓰는 새로운 교단을 창시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였을 듯하나 나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주의 뜻이라고 생각지 안는다.” 라고 말하였다.


이 같은 것은 대개 창립자가 죽은 뒤에는 형식만 남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대와 경우가 다른 오늘날의 인도에서 불필요한 교파가 너무 많아 걱정이라고 그는 이 같은 비유를 인증 하였다.


“산중에서 흐르는 시냇물은 자기의 갈 곳을 헤치고 나간다. 그러나 평원에서는 물이 흐르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운하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같이 신과 교통하는 높은 경지에서는 성신은 갈 곳을 뚫고 나가나 신과 깊은 교통이 없는 곳에서는 형체의 조직과 외형의 의식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1908년 [스토크]씨는 휴가를 이용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고 그는 단독으로 북인도 지방에서 전도하다 차츰 여름철이 가까워 옴으로 [티베트] 갈 준비를 하였다

 

 

신학교에 입학 (1909년)


사두는 친구들의 간절한 권고에 의하여 1909년부터 1910년까지 [라홀]에 있는 [성 요한]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며 쉬는 날에는 여전히 전도하였다. 그는 학교에서도 도복을 입었다. 그는 모든 학과를 다 배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직업적인 목사를 만드는 교육에 불만이었다.


그가 늘 하는 말은

“종교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오 마음으로라야 안다”


학과의 지식에서 보다 마음을 바치는 주(主)와의 교통에서 종교적 참 생명을 얻는 것을 그는 체험으로 굳세히 말한다.


그러나 저는 신학교에서 안계(眼界)를 넓히고 풍부한 사색의 재료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는 여러 성자 신비가의 서적도 잘 읽었다. 그 중에서도 [도마쓰 아켐비쓰]의 ‘기독의 모방’과 ‘성 푸란시쓰전’ 같은 책은 오래 애독하였다.


그밖에 신비가 [야곱 베-메] [성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저작과 [스위돈 볽] [마다무기온알갓사리] 같은 신비서적도 보았다. 이러한 서적을 통하여 그의 내면생활은 더욱 깊은 곳을 찾아 갈 동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전부 찬의를 표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항상 즐기는 서적은 성경과 자연이다. 이것이 그의 지식과 재료의 창고이다.


그는 한 때 [시탈]이라는 인도의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였으나 조금 후에는 중지하였다. 자기는 [사두]로 이것을 가지고 다니기 곤란함을 말하고 그 친구에게 주며 이것으로 더욱 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하였다.


그는 학교를 단기간에 마치고 영국 국교회의 한 설교자 될 허락을 맡았다. 또 집사로 안수례 받기를 권한즉 기도하고 또 깊이 생각한 결과 이것을 거절하고 이미 받은 허가도 도로 보내며 나는 이후부터 어떤 교파나 어떤 곳에서든지 제한 받지 않고 전도하겠다 하며 모든 구속을 싫어하였다.


1920년 그가 영국 갔을 때 [옥스포드]의 학자들이 교파에 대한 의견과 그 반환한 이유를 물으니


“내가 만약 허가를 받으면 영국교회에서는 설교할 수 있으나 다른 교파에서는 설교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까닭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전도 범위는 전 세계 일원이다. 교파의 제한을 벗어버림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교파가 서로 싸우는 어리석음을 이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는 한 분이신데 여러 교파로 갈릴 필요가 어디 있느냐, 믿는 사람이 만약 이 짧은 세상 중에서 서로 평화로히 살 수 없다면 영원한 곳에서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는가.”


[사두]의 이 말은 오늘날 교계의 큰 경종인줄 안다.


또 신자의 편벽 된 경향이 있는데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랑스럽지만 그들은 갈라져 살고 그 마음은 착한데 속은 좁다”


또 저가[칸다베리] 대승정(大僧正)을 대하여 이같이 말하였다.


“인도인의 높고 낮은 계급이 있는 것 같이 이곳 교회에도 계급이 있다. 그리스도는 이 같은 계급을 만들지 않았다.”

 

북인도 적도 중 생긴 일 (1911 - 193?)


1911년과 3년은 북인도 지방으로 다니며 전도하고 그 해 더운 철 3개월간은 혼자 서장(西藏)에 가서 전도하였다. 이 여행 중에서 그는 여러 가지 기이한 체험을 많이 보았다. 이 아래 기록하는 것은 그 중에 중요한 사항이다.


[거짓 죽었던 자의 참 죽음]


[사두]가 어떤 촌으로 갈 때 그 앞에 두 사람의 여행자가 보이더니 문득 한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거기 서 있는 한사람이 누어 있는 한 사람을 가리키며


“이는 나의 친구인데 급병으로 지금 죽었습니다. 매장할 돈도 없는 처지오니 좀 구조하여 줍시오” 하고 탄원하였다.


[사두]는 담요 한 개와 통행전 두 푼 밖에 없는데 이것을 전부 내어 주고 갔다. 잠깐 후에 그 사람이 뒤에서 소리 치며 쫓아오더니 앞에 와서 울며 말하기를


“나의 친구는 참말 죽었습니다” 하였다.


[사두]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이어 설명하는 말은 들은즉 그들은 거짓말로 죽었다 하고 행인에게서 돈 빌리기를 여러 해 동안 직업으로 하였다.


그런데 오늘 [썬다 싱]으로부터 두 푼 돈을 가지고 가서 덮었던 담요를 들고 본즉 참으로 죽어있었다. 아무 대답이 없다. 그는 크게 놀래어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반드시 거룩한 신인(神人)이다. 그를 속인 죄로 신이 나의 동무를 죽인 것이다. 만인 그와 내가 바꾸어 누었다면 어찌 되었을고” 하고 [사두]에게 용서하여 달라고 빌었다.


그 때 사두는 생명의 구주를 그에게 설교하여 그는 과거 죄의 생활을 깊이 통회하고 신자가 되었다. 사두는 이 사람을 [가루올]에 가까운 전도소에 보내어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



[때린 자가 오히려 아픔]


[날칸다]에서 사두는 곡식 거두는 농부들을 보고 가까히 가서 전도하였다. 처음은 무관심하게 듣더니 차츰 반감을 이르켜 혹자는 욕하고 그중 한 사람은 돌을 던져 사두의 머리를 쳤다.


조금 있더니 돌을 던진 사람의 머리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여 부득이 일을 못하게 되었다. [사두]는 그의 낫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곡식을 베어 주었다. 이 일은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해질 때 저들은 [사두]를 저의 집에 모시고 가서 밤에 그 전도를 듣게 되었다.


그가 떠난 후에 그들은 추수를 회계해 보니 평시보다 예상밖에 많아졌으므로 이것은 성자가 그곳에 온 까닭이라 하였다. 이일은 북인도 [남아프샨]이란 신문에 났다.



[표범과 같이 잠]


[토리-] 지방의 촌에 갔을 때 사람들이 어찌나 반대하였는지 잘 곳이 없어 전도하는 동안 전혀 숲 속에서 밤을 새었다. 어떤 날 몹시 피곤한 끝에 밤이 어두어 오매 한 동굴을 찾아서 담요를 펴고 들어 누었다.


날이 밝아 햇빛이 비칠 때 일어나 보니 그 곁에 큰 표범이 누어 아직까지 잠들고 있다. 몸이 마비할 만큼 놀래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맹수를 보내어 그를 지켜 준 것을 감사하였다. 그 후 어떠한 맹수도 그에게 해를 가한 일이 없었다.


[검정 범의 해를 면함]


한번은 어떤 동리에 들어갔다가 쫓겨 나와 황혼을 등지고 돌 바위 위에 앉아 명상에 잠겨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려 보니 그 뒤에 검정 범이 가만히 가만히 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심히 놀래었으나 마음을 주께 의지하고 몸을 하나님께 맡겼다. 그러므로 고요히 일어나서 무사히 다른 촌으로 갔다. 이 소식을 안 동리 사람이 참말 거룩한 사람으로 신의 보호하는 자라고 생각하고 다시 그를 청하여 그 전도를 들었다. 그것은 이 동리 사람이 많이 범에게 물려죽은 까닭이다.


[가해자가 사죄함]


하루는 [깐띄스] 강변에 많은 수도자들이 모여서 종교적 목욕을 행하였다. 그때 [사두]는 성경을 들고 설교하였다. 어떤 사람은 흥미 있게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하였다. 그때 어떤 자가 불의에 모래를 쥐어 [사두]의 눈에 뿌렸다.


곁에 사람들도 이것을 보고 노하여 그 자를 경관에게 내어주었다. 사두는 고요히 물에 가서 모래를 씻고 다시 와서 그 자의 죄를 용서하기를 빌며 다시 설교하기를 시작하였다.


이 관후한 태도에 놀래 때린 자는 [사두]의 발 앞에 엎디여 사죄하며 더욱 자세히 그 설교 듣기를 바라고 겸손히 그를 따라 가며 회개하여 신자가 되었다.


[독사와 같이 잠]


[사두]가 [도리와라]촌에 왔을 때 험한 길을 오래 도보한 때문에 배는 몹시 고프고 몸은 심히 피곤하여 견디기 어렵게 되었다. 집집에 다니며 하룻밤 쉬기를 청하였으나 그가 기독신자인 때문에 자기를 허락하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더욱 소낙비가 내리고 추위가 심하여 곤난이 막심하였다.


마침 거의 무너지는 오막살이 빈집을 발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집에 들어가 비 새지 않은 마루 쪽에 담요를 펴고 들어 누어 잤다. 곤한 김에 깊이 잠자다가 새벽 차디찬 공기에 깨어나 곁을 보니 큰 고부리(독사)가 비를 피하여 [사두]의 곁에 와서 서리우고 누은 것을 발견하였다.


놀라서 밖에 나왔다가 다시 생각하고 들어가 담요의 한 끝을 잡아당기었다. 거물은 곤한 잠을 이기지 못하여 한쪽으로 쓸어졌다. 그는 큰 감사로 주께서 함께 하여 주신 은혜를 찬송하며 나왔다.



[때린 자의 회개]


한 교육 있는 [아리아 사마지]의 신자가 이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가 어느 날 산길을 나려 가는데 한 젊은 [사두]가 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호기심이 나서 멀리서서 보았다. 젊은 사두는 마을에 들어서자 나무에 올라가 높은 소리로 찬송을 불렀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설교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말임으로 사람들은 노하였다.


그 중 한사람이 달려들어 몹시 때리고 차고 하여 그는 땅에 꺼꾸러지고 얼굴과 속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한마디 불평이 없이 일어나서 상한 손을 싸매고 피 흐르는 낯으로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다시 그리스도의 사랑과 속죄에 대하여 말하였다. 때린 사람은 [구리반라마라]는 사람인데 회개하고 그 상한 손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 믿기를 원하여 [사두]를 찾아 다녔다.


 

[가해자가 사죄함]


하루는 [깐띄스] 강변에 많은 수도자들이 모여서 종교적 목욕을 행하였다. 그때 [사두]는 성경을 들고 설교하였다. 어떤 사람은 흥미 있게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하였다. 그때 어떤 자가 불의에 모래를 쥐어 [사두]의 눈에 뿌렸다.


곁에 사람들도 이것을 보고 노하여 그 자를 경관에게 내어주었다. 사두는 고요히 물에 가서 모래를 씻고 다시 와서 그 자의 죄를 용서하기를 빌며 다시 설교하기를 시작하였다.


이 관후한 태도에 놀래 때린 자는 [사두]의 발 앞에 엎디여 사죄하며 더욱 자세히 그 설교 듣기를 바라고 겸손히 그를 따라 가며 회개하여 신자가 되었다.


[독사와 같이 잠]


[사두]가 [도리와라]촌에 왔을 때 험한 길을 오래 도보한 때문에 배는 몹시 고프고 몸은 심히 피곤하여 견디기 어렵게 되었다. 집집에 다니며 하룻밤 쉬기를 청하였으나 그가 기독신자인 때문에 자기를 허락하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더욱 소낙비가 내리고 추위가 심하여 곤난이 막심하였다.


마침 거의 무너지는 오막살이 빈집을 발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집에 들어가 비 새지 않은 마루 쪽에 담요를 펴고 들어 누어 잤다. 곤한 김에 깊이 잠자다가 새벽 차디찬 공기에 깨어나 곁을 보니 큰 고부리(독사)가 비를 피하여 [사두]의 곁에 와서 서리우고 누은 것을 발견하였다.


놀라서 밖에 나왔다가 다시 생각하고 들어가 담요의 한 끝을 잡아당기었다. 거물은 곤한 잠을 이기지 못하여 한쪽으로 쓸어졌다. 그는 큰 감사로 주께서 함께 하여 주신 은혜를 찬송하며 나왔다.



[때린 자의 회개]


한 교육 있는 [아리아 사마지]의 신자가 이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가 어느 날 산길을 나려 가는데 한 젊은 [사두]가 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호기심이 나서 멀리서서 보았다. 젊은 사두는 마을에 들어서자 나무에 올라가 높은 소리로 찬송을 불렀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설교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말임으로 사람들은 노하였다.


그 중 한사람이 달려들어 몹시 때리고 차고 하여 그는 땅에 꺼꾸러지고 얼굴과 속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한마디 불평이 없이 일어나서 상한 손을 싸매고 피 흐르는 낯으로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다시 그리스도의 사랑과 속죄에 대하여 말하였다. 때린 사람은 [구리반라마라]는 사람인데 회개하고 그 상한 손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 믿기를 원하여 [사두]를 찾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