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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 ‘자살’ 사회와 ‘살자’ 종교

은바리라이프 2009. 6. 3. 16:51

[로뎀나무] ‘자살’ 사회와 ‘살자’ 종교
[국민일보] 2009년 06월 02일
 
한 인간이 태어나서 한평생을 살다가 죽는 과정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모른 채 태어나서 살다가 죽어간다. 우선 인간은 왜 태어나야 했는가를 모른다. 내 의지대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기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내가 남자나 여자가 된 것,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 내 부모와 내 형제 모두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던져진 존재'로 태어나서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왜 자기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모르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생살이는 모두 내 손에 있는 것 같아도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충족시키며 사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아닌데, 이것이 아닌데' 하는 동안에 어느덧 세월이 흘러 40대가 되고 50대가 되고 60대가 되어 황혼기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은 이미 어린 시절의 꿈대로 되어 있지 않다. 결혼은 스스로 선택했을지 몰라도 결혼 생활은 처녀 총각 때의 환상과는 아주 동떨어진 상황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것이 어쩌면 이와 비슷하게 엮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인생길이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지는 피동적 삶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돌이켜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인생의 시간들이 많다. 그러나 자동차는 온 길을 되돌아갈 수 있어도 인생은 한번 지나온 길을 돌이킬 수 없다.

이렇게 사람은 인생의 미로를 헤매면서 살다가 죽는다. 그런데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지를 모르며 언제 죽는지도 모른다. 태어났다는 사실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후회스러운 삶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죽음은 우리를 또 불안하게 만들고 공포로 몰아넣는다. 사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모르기에 무지하고 무지하니 불안하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살려는 의지가 있을 때이다.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고 의지가 있을 때 죽기 싫은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반대로 삶에 희망이 꺾이고 의지가 약해질 때 오히려 죽음은 도피처가 되고 불안과 공포의 삶에 대한 도피처가 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년에 1만3000명, 하루 35명꼴로 자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아직도 자살률이 높은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시원치 않다. 경제가 어렵고 정신적인 의지가 약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자살의 길을 택함으로써 '베르테르'의 효과를 낳는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 기독교를 비롯해 저마다 생명을 존중하는 종교 대국이다. 사회는 '자살'을 충동질하며 미화하려 하지만, 종교는 '살자'를 외치고 계몽해야 한다. 한국의 종교가 힘을 합해 경쟁 사회의 고삐를 늦추고 성공주의의 신화를 비판하고 금전 만능의 인간 사고를 개조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각각의 종교 스스로가 사회 못지않게 경쟁을 일삼고 성공주의에 빠지고 돈에 눈이 멀 때 한국 사회의 자살은 백약이 무효가 될 것이다.

문성모 서울장신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