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성경배경사

팔레스타인, 팔레스티나, 블레셋, 펠리시테

은바리라이프 2009. 4. 13. 14:51

팔레스타인, 팔레스티나, 블레셋, 펠리시테 가운데 일본어식 표기는 무엇일까요?

문득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티나' 가운데 어느 것이 표준 표기인지 궁금해졌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사회과 부도에서 '팔레스티나'라고 표기된 것을 본 것 같은 기억도 있고 이원복의 학습만화 《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분명히 '팔레스티나'라는 표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표기 자체로만 봐서는 영어식 발음을 어정쩡하게 흉내낸 '팔레스타인'보다는 '팔레스티나'가 표준 표기여야 될 것 같다.

하지만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계속 '팔레스타인'이라고 쓰고 있다. 표준 표기가 아니라면 누군가 지적했을텐데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팔레스타인'을 관용 표기로 인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과연 찾아보니 둘 다 표준 표기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보니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티나' 모두 등재되어 있지만 주로 '팔레스타인'을 선호하고 있다. 세부 표제어로 '팔레스타인 문제', '팔레스타인 민족 평의회', '팔레스타인 전쟁',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이 실려 있고 팔레스티나(Palestina)는 '"팔레스타인"의 라틴 어 이름'으로 정의되어 있다.

로마 제국의 지중해 동부 영토를 나타낸 지도

'팔레스티나'는 로마 제국 때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는 고대 유대 왕국의 이름을 따서 라틴어식으로 유다이아(Iudaea/Judea) 주라고 했던 것을 132년에서 135년 사이 일어난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팔레스티나'로 고친 것이다.

이 라틴어 이름을 Palaestina (Palæstina)라고 표기한 곳도 있고 위의 지도와 같이 Palestina라고 표기한 곳도 있다. 라틴어 이름에서 ae (æ)는 e로 단순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Palestina라는 표기를 원 표기로 삼고 '팔레스티나'라고 한 것이다.

현대 유럽 언어에서 이 지방을 부르는 이름은 모두 이 라틴어 이름과 그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어 이름 '팔라이스티네(Παλαιστίνη, 현대식으로 '팔레스티니')'에서 온 것이다. 독일어에서는 팔레스티나(Palästina)라고 하고 프랑스어에서는 팔레스틴(Palestine)이라 한다. 영어에서 쓰는 이름은 프랑스어를 거쳐 온 것이다.

영어의 발음철자 혼합형 한글 표기

영어의 Palestine은 [ˈpæləstaɪn] 혹은 [ˈpælɪstaɪn]으로 발음된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팰러스타인' 또는 '팰리스타인'으로 적어야 한다. 그러니 적어도 Palestine을 영어 이름으로 보고 표기한 것이라면 '팔레스타인'은 표준 표기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이 영어식 발음에 이끌린 표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장모음 i'가 [aɪ] 즉 '아이'로 발음되는 것은 영어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영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발음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이 생기기 이전은 물론 지금도 사람들은 완전히 발음에만 의지하여 표기하기보다는 철자를 보고 표기하는 것과 혼합하는 일이 많다.

'팔레스타인'이란 표기는 영어의 발음에 상관없이 Palestine의 a는 '아', e는 '에'로 옮기고, -tine은 발음에 따라 '타인'으로 옮긴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단모음 a, e, i, o, u는 발음과 상관없이 '아, 에, 이, 오, 우'로 적는 것은 영어를 표기할 때 흔히 볼 수 있다. Manhattan의 표준 표기는 [mænˈhætn]이라는 발음에 따라 '맨해튼'인데 흔히 '맨하탄'이라고 부른다. 다만 Man-은 '맨'에서 적은 것에서 보듯 어떤 모음은 발음에 따라 적는데, 일정한 규칙은 찾기 어렵다. Los Angeles는 발음에 따라 적는다면 '로스앤절리스', '로스앤질리스', '로스앤절러스', '로스앤질러스' 가운데 하나가 되겠지만 '로스앤젤레스'라는 표기가 워낙 뿌리깊다보니 표준 표기로 인정된 경우이다.

어쨌든 영어 이름을 한글로 옮길 때 발음과 철자를 혼합하여 적는 방식은 외래어 표기법에는 어긋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맨해튼,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영어권 이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언어권 이름에도 무분별하게 이런 영어식 발음ㆍ철자 혼합형 한글 표기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팔레스타인'도 그 결과물이고 비잔티움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 제국의 문화를 이르는 '비잔틴'이란 말도 영어의 Byzantine에 이끌린 표기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현지인들은 무엇이라고 부를까?

영어판 위키피디어를 보면 팔레스타인을 히브리어로는 '팔레스티나(פלשתינה‎ Palestina)'라고 하고 아랍어로는 '필라스틴, 팔라스틴, 필리스틴(فلسطين‎ FilasṭīnFalasṭīnFilisṭīn)' 등으로 부른다고 한다. 아랍어는 보통 글로 쓸 때도 모음을 표시하지 않으며 방언마다 모음이 많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단 '필라스틴'이 대표적인 발음 같다.

아람어 표기는 ܦܠܣܛܝܢ인데 역시 ī를 제외하고는 모음이 표기되지 않아 정확한 아람어 발음은 알 수 없지만 히브리어나 아랍어 발음과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것이다. 아람어는 로마 제국 당시 팔레스타인은 물론 그 일대에서 널리 쓰였던 언어이지만 현재 아람어 사용자는 많이 남아있지 않고 아시리아인들을 비롯하여 서남아시아 곳곳에 흩어진 몇몇 소수 집단만이 쓰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람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없고 히브리어나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마리아인들이 종교예식 언어로 겨우 보존하고 있다. 사마리아인이라고 하면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흔히 알고 있어 옛날 얘기로 여기기 쉽지만 지금도 사마리아인들은 주류 유대인과는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소수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이름은 사실 고유 이름이 아니라 라틴어 Palaestina/Palestina 내지는 영어의 Palestine에서 따온 말이다. 영국이 이 지방을 통치하면서 옛 라틴어 이름에서 따온 Palestine을 부활시켰기 때문에 지금도 쓰이게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티나의 어원은 '블레셋'

그럼 하드리아누스가 지었다는 Palaestina/Palestina는 어디서 나온 이름일까? 바로 팔레스타인 지방에 거주했던 종족 가운데 하나인 블레셋인들에서 나왔다. 기원전 5세기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블레셋인들의 땅이라 하여 '팔라이스티네(Παλαιστίνη)'라는 곳을 언급했는데, 이것이 라틴어로 바뀌면서 Palaestina가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지금의 가자 지구를 포함하는 팔레스타인의 남부 해안 지방에 언젠가부터 이주해와서 살았으며 고대 히브리인들과 종종 적대 관계에 있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로마 시대 유대인들의 조상이다. 그러니 하드리아누스는 주 이름을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괘씸한 유대인의 땅이 아니라 유대인의 옛 적수들인 블레셋인의 땅이란 뜻으로 고친 셈이다.

'블레셋'은 한국어 개역판 성경(이하 한국어 성경)에서 쓰는 표기인데 이것이 그대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는 '필리시테', '필리스티아', '펠리시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기를 대체하려는 시도를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어 성경에서 쓰는 고유명사 표기 방식은 k, p, t 등을 예사소리 'ㄱ, ㅂ, ㄷ'으로 옮기는 등 현행 외래어 표기법과 다르기 때문에 '요즘 감각에 맞게' 바꾸어 적으려고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성경의 표기를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오늘날의 외래어 표기 기준에 맞게 적으려면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외래어 표기법은 현지 발음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블레셋인들의 기원은 밝혀져 있지 않고 그들의 언어는 소수의 기록과 히브리어에서 차용해 간 몇몇 어휘를 통해서만 알 수 있으며 사멸한지 오래이니 그들 스스로 부른 이름을 토대로 표기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히브리어는 한글로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블레셋인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히브리어 성경을 의존하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블레셋인들은 고대 히브리인들과 연관이 깊으니 이들에 대한 히브리어 이름을 바탕으로 표기를 정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히브리어는 기록된 역사만 수천년이고 유대인들이 전세계에 흩어진 탓에 다양한 발음이 존재한다. 같은 히브리어 성경을 읽어도 원래 기록된 시기의 히브리어 발음과 중세 초기 마소라 학자들이 본문에 모음 기호를 더했을 때 사용했던 발음, 여러 다른 전승에서 사용한 발음,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에서 사용하는 발음은 모두 다르다.

블레셋은 히브리어 성경에 פלשת (plšt)으로 등장한다. 보시다시피 자음만 나열해 놓았다. 원래 히브리 문자에서는 자음만 표기하였다. 그러다가 8세기 이후 티베리아의 유대인 사회에서 마소라 학자라 불리는 이들이 히브리어 성경의 정확한 독음을 돕기 위한 기호 체계를 개발해냈다.

'블레셋'의 마소라 본문 표기 פְּלֶ֣שֶׁת (pəlešeṯ)

이 체계를 통해 기록한 히브리어 성경을 마소라 본문이라고 하는데 이 표기 방식에서는 모음을 모두 나타내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원래 같은 기호로 기록되었지만 당시의 독음으로는 여러 발음이 가능했던 자음들도 구별하고 있다. 블레셋의 마소라 본문 표기는 פְּלֶ֣שֶׁת이다. 오른 쪽부터 읽어서 첫 글자인 פ 가운데에 점이 찍힌 것은 이것이 [f]가 아니라 [p]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고 ש 오른쪽 위의 점은 이게 [s]가 아니라 [ʃ]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며 마지막 ת에는 점이 없으니 [t]가 아니라 [θ]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 밑에 찍힌 점은 모음 기호인데 역삼각형 형태의 점 세 개는 짧은 [ɛ] 모음을 나타내며 세로로 점 두 개가 찍힌 것은 '슈바'라고 하는 아주 짧은 모음으로 원래 음가는 [ɐ̆] 또는 [ə]로 생각된다. 물론 당시 발음은 현대에 재구성한 것으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마소라 본문의 표기를 로마자로 옮겨적으면 pəlešeṯ 이며 발음은 [pəlɛʃɛθ] 정도일 것이다.

한국어 성경에서 쓰는 히브리어 음차 방식에서는 ə를 보통 'ㅡ'로 적거나 생략한다. f와 p는 구분 없이 'ㅂ'으로 적고 t와 θ은 구분 없이 'ㄷ'으로, 또는 'ㅅ' 받침으로 적는다. š은 그냥 s처럼 'ㅅ'으로 적는다. 그래서 pəlešeṯ을 '블레셋'이라고 적은 것이다. 

한국어 성경의 음차 방식은 모음은 마소라 본문을 따르지만 자음은 히브리어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발음을 따르는 것 같다. 히브리어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p]와 [f]의 구분 없이 [p]로, [t]와 [θ]의 구분 없이 [t]로만 발음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또 ו라는 글자는 마소라 학자들은 [v]로 발음했던 것 같지만 히브리어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w]로 발음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데, 한국어 성경에서는 이 글자의 발음을 [w]로 보아 '다빗', '여호바' 대신 '다윗', '여호와' 등의 표기를 쓴다.(← 확인해보니 마소라 학자들도 ו는 [w]로 발음했다고 보고 있다.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ו를 [v]로 발음한다.)

이 방식대로라면 원 발음은 [pəlɛʃɛt]이 되니 '블레셋'이라는 표기가 이해가 될 것이다.

이 음차 방식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까? 슈바 ə를 'ㅡ'로 적거나 생략하는 것과 같은 모음 표기 방식은 그대로 따를만하다. 그러나 자음은 외래어 표기법과 일관되게 p를 'ㅍ'로, t를 'ㅌ'로 적고 [ʃ]는 '시', '슈' 등으로 적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어말의 ṯ는 어떻게 적을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어말의 파열음은 '으'를 붙여 적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한국어 성경의 표기는 일관되게 받침으로 적고 있으므로 되도록이면 익숙한 표기에 가깝게 받침으로 적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또 앞의 모음이 최장모음일 때는 '으'를 붙여 적어야 된다는 주장도 있다(방석종의 〈히브리어 고유명사 한글 음역의 문제〉 참조). 여기서는 모음이 모두 단모음이니 이 주장에 따르면 '플레솃'이라 적어야 한다.

지금까지 글의 전개를 따라왔다면 히브리어를 원어로 삼아 한글 표기를 정하는 일이 매우 복잡한 문제라는 것이 이해가 될 것이다. 사실 널리 받아들여지는 원칙이 없는 한 히브리어 한글 표기의 통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히브리어를 따지는 것이 골치 아프다면?

이럴 때 사람들이 흔히 쓰는 방법이 있다. 고대 세계의 이름은 그냥 그리스어 또는 라틴어식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고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크세르크세스', '키루스' 같은 이름은 페르시아어식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어를 거친 라틴어식 이름이다. '페르시아' 자체가 '페르시스'라는 그리스어 이름을 거친 라틴어 이름이다.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파르사(Pārsa)라고 했다. 한국어 성경에는 '바사'로 나온다.

블레셋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필리스티아(Philistia)'이다. 블레셋인은 '필리스티누스(Philistinus)'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어로 '블레셋'에 해당하는 이름은 찾지 못했다. 블레셋인은 '필리스타이오이(Φιλισταίοι)' 등 여러 이름을 통해 불렀지만 이는 종족을 부르는 이름이고 그 기본형을 알아야 할텐데 그게 나와있는 믿을만한 참고 자료가 없다. '필리스티아(Φιλιστία)'가 인터넷에서 검색되기는 하지만 이게 정확한 이름이 맞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유럽의 언어들은 고대 세계의 이름을 대부분 그리스어와 라틴어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영어로 블레셋인을 뜻하는 Philistine도 라틴어 Philistinus에서 온 이름이다. 그러니 유럽 언어를 통해 고대 세계에 대한 기록을 접하는 우리도 그리스어 또는 라틴어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리스어는 특히 'ㅅ', 'ㅈ', 'ㅊ' 계열의 소리를 나타내는데 한계가 많기 때문에 원 발음이 상당히 왜곡되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 히브리어처럼 원 언어 복원이 쉬운 것은 원 언어의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히브리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기준이 세워져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펠리시테', '필리시테'라는 표기의 정체

이 글을 준비하면서 궁금했던 것 하나가 '펠리시테', '필리시테'라는 표기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냐는 문제였다. '블레셋' 대신 쓰이는 표기를 검색하면 꼭 이런 표기가 꽤 나온다. 혹시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것인가 하는 추측은 빗나갔다. 히브리어 발음도 시대와 방언에 따라 '플라솃', '펠라솃', '플로셰스'는 될 수 있어도 '펠리시테'나 '필리시테'는 되지 않는다.

그 궁금증은 일본어로 블레셋인을 'ペリシテ人', 즉 '페리시테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풀렸다. 아마 일본어로부터 관련 서적을 번역하면서 '페리시테'를 Philistine이라는 영어 단어를 참고하여 '펠리시테' 또는 '필리시테'로만 살짝 바꾼 것이 이런 표기의 시초일 것이다.

일본어에서는 왜 '페리시테'라고 했을까?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간단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아마 원 발음을 조금 잘못 알고 사용한 표기가 굳어진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히브리어의 pəlešeṯ이 peleshet을 거쳐 pelishte로 둔갑해서 '페리시테'가 되었다거나...

그런 것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일본어 표기가 막연히 '블레셋'보다는 고증이 잘 된 표기라고 생각해서 '펠리시테'나 '필리시테'라는 표기로 옮겼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적합한 표기인지 확인해볼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어이가 없다.

표기를 쓰려면 제대로 된 표기를 쓰자. 한국어 성경과 표준국어대사전의 표기인 '블레셋', 라틴어식(그리스어식?) 표기인 '필리스티아', 또 히브리어에 따른 표기를 하려면 '플레솃' 또는 '플레셰트'... 앞으로 어느 쪽으로 정해질지는 모르지만, 이에 대해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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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끝소리 | 2009/01/10 02:13 | 외래어 표기 실무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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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세계의 말과 글 : 히브리어 .. at 2009/01/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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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1/10 02:30
참고적인 용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제가 가지고 있는 1960년에 나온 을유문화사 판 <아이봔호>에는 블레셋을 두 가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을 지칭할 때는 "필리스틴"이라고 하고 블레셋 지역을 지칭할 때는 "펠리시테 군(郡)"으로 적고 있더군요. 그때도 혼동이 좀 있기는 했던 듯 합니다.
Commented by 끝소리 at 2009/01/10 07:19
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아이봔호'에 블레셋이 나오는지도 몰랐네요. 사실 무슨내용인지도 거의 기억 못하고 있었지만... 원문을 찾아보니 Philistia는 없고 Philistine이라는 표현만 있는 것 같은데 "Askalon, which, as all the world knew, was a town of the Philistines"이란 부분이 블레셋 지역을 지칭하는 것 같고 나머지는 블레셋 사람들 이야기 같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로 표기된 것을 보고 같은 Philistine을 번역한 것이라고 짐작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1/10 11:13
십자군의 원정 대상 지역으로서는 따로 블레셋을 적지 않았는데, "펠리시테 군"이라는 표기는 각주에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필리스틴"은 요크의 아이자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될 때 자기를 박해하는 이방인들(이 소설에서는 존 왕자 패거리)을 지칭할 때 "저 필리스틴들"하는 식으로 사용되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1/10 11:20
아 그러고 보니 팔레스타인이라고 적은 부분도 따로 있군요. 끝소리님이 인용하신 부분은 에이머 승정이 시합장에서 아이봔호의 정체를 확인한 후에, 리처드왕의 업적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한 이야기죠? 제가 가진 을유문화사판은 해당 부분을 이렇게 적어놓고 있습니다.

"(전략) 리챠드 왕 휘하의 십자군사가 아스칼론 앞으로는 절대 전진하지 않은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이 아스칼론(옛날 팔레스타인의 서남에 위치해 있고, 이스라엘인의 적이었던 필리스테인인의 5대도시의 하나)이라는 고을은 누구나가 다 알다시피, 필리스테인의 고을로 성도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받을 가치가 없거든"

아무래도 번역자는 나름 고대의 블레셋과 현대(아이봔호의 시대)의 팔레스타인을 구분해서 쓰려고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만, 용어 사용이 좀 오락가락한다는 느낌은 지워지지가 않는군요^^;;
Commented by 끝소리 at 2009/01/11 19:03
자세한 내용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소설에는 십자군 원정 시대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해 얘기하면서 옛 블레셋 고을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거나 옛 블레셋 사람들을 비유의 대상으로 언급한 내용이 주인 것 같네요. 번역자에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겠죠. 일관된 표기를 쓰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각주 아닌 본문에서는 '필리스틴'이라고 쭉 쓰고 있다면 그나마 이해할만하네요.

역자 주에 '팔레스타인'을 언급했다고 해서 꼭 번역자가 Philistine과 Palestine의 어원이 같다는 것을 알았다거나 '팔레스타인'을 '블레셋 땅'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그냥 현대 독자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지리적인 설명을 하면서 고대 블레셋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란 사실도 모른채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을 쓴 것 아닐까요? 아스칼론이 '팔레스타인의 서남'에 있다는 설명도 실제 옛 블레셋 지역보다는 현대에 쓰는 넓은 의미의 팔레스타인에 부합하는 듯합니다. 물론 '팔레스타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현대에는 어원에 대한 인식 없이 쓰이고 있으니 이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10 01:28
왜 영국은 Palestine이라는 고지명을 부활시켜야 했을까요?
Commented by 끝소리 at 2009/02/10 04:07
애매하면 일단 라틴어에서 온 이름을 쓰는 것에 익숙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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