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소선지서

제 2 강 요엘 개관

은바리라이프 2009. 3. 9. 11:35

1.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본 서에는 '브두엘의 아들'이라는 언급(욜1:1) 외에는 선지가 요엘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성전과 제사에 관한 그의 지식이나(욜1:13,14) 예루살렘에 대한 잦은 인용으로 미루어 보아, 요엘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제사장들에 대해서 신랄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던 것을 보면, 요엘 자신이 제사장은 아니었던 것 같다(욜1:13). 요엘은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던 선지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본 서의 표제 속에도, 본문 속에도 연대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본 서의 기록 연대에 대한 추측은 주전 9세기부터 마카비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런 견해는 크게 바벨론 포로 이전설과 바벨론 포로 이후설로 나누어진다.

  ① 바벨론 포로 이전설: 바벨론 포로 이전설은 다시 초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과 중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로 나누어진다. 초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요엘이 제사장과 장로들에 대해서는 언급한 반면 왕과 방백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학자들은 그 사실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섭정을 통해 통치를 시작했던 소년 왕 요아스(B.C.835-796)의 시대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중기 바벨론 포로 이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요엘의 사역 시기를 주전 8세기 초엽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본 서가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를 유다의 대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3장 가운데 등장하는 여섯 이방 국가들이 초기 8세기 연대설을 뒷받침한다는 점 그리고 본 서의 메뚜기 침입 사건 등과 같은 내적인 강조점들이 웃시야 시대를 반영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② 바벨론 포로 이후설: 바벨론 포로 이후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본서에서 북왕국에 대한 언급이 없고,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지도자로 언급 되어 있는 것들을 통해 본 서가 주전 4세기 중엽에 기록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본 서의 문학 형태, 본 서의 뭄시적 성격들이 바벨론 포로 이후설을 지지해 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본 서에서 제사장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요아스 왕 초기인 주전 830년경으로 기록 연대를 잡고 있다.

 

2. 주제와 기록 목적

 

1) 주제

본 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이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섭리로 열국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만이 구원받는 국가적 선민의식이 반영된 날이었다. 그러나 본 서에서는 그 소망의 날이 죄로 인해 심판과 애통의 날이 될 것임을 선포한다. 죄가 있는 한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근거 없는 교만으로, 두려운 심판만이 그들의 목전에 있다. 그러나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은 여호와의 날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에는 이처럼 은혜와 심판이라는 양면성이 있다.

 

2)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첫째, 유다의 죄로 인해 여호와의 날이 무서운 심판의 날임을 경고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하면 구원의 즐거운 날로 알았기 때문에 그 날을 사모하였으나 요엘 선지자는 그 날을 '멸망의 날'(욜1:15), '캄캄한 날'(욜2:2), '심히 두려운 날'(욜2:11)임을 알리려고 하였다. 둘째,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요엘은 겸손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권면하였다. 셋째, 하나님이 주실 영적 축복을 체험하도록 준비하게 하면, 또한 여호와의 날이 온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때임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임을 만인에게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다.

 

3. 특징과 내용 구성

 

1) 특징

요엘서의 특징은 첫째, 메시야 예언의 책이라는 점이다. 욜2:23의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성격상 '의의 교사' 즉 메시야를 가리킨다. 둘째, 성령 강림의 약속이다. 욜2:28의 '내 신'은 성령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으로, 성령은 언약을 통하여 새롭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령받은 사람은 다가올 심판을 견딜 만큼 강건해지며,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열려질 것이다(욜2:28,29). 셋째, 묵시적 종말론의 책이다.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을 언급하면서 이 여호와의 날이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요엘서가 묵시적인 종말론, 곧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들을 포함한 우주적인 종말론을 맨 처음 선포한 책이라고 본다.

 

2) 내용 구성

요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곧 히브리 성경의 1, 2 장(한글개역성경은 욜1:1-2:17)과 3,4장(한글개역성경 욜2:18-3:21)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부분은 메뚜기 재앙에 관한 내용으로, 여기에서 언급된 메뚜기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곧 실제 메뚜기 떼의 출현, 이방인들의 침략 물결에 대한 풍유적 표현, 유대인들이 가장 최근에 겪었던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묵시적인 설명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두번째 부분은 '여호와의 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날에는 이방 나라들 위에 징계가 내릴 것이나 유다와 예루살렘 위에는 축복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부어 주시고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에 관한 소식이 마지막 그 날에 들려올 것이다.

 

4. 요엘서가 주는 의미

 

여호와의 날은 준비된 자에게는 축복과 구원의 날이지만 준비되지 않거나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과 무서운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본 서는 가르쳐 주고 있다. 이처럼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본 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큰 기쁨의 날로만 알려져 왔던 여호와의 날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무서운 심판의 날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종말론적인 상황과 메시야와 성령의 약속을 대비시킴으로써 여호와의 날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회개하지 않고 악한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자에게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날은 구원과 은혜의 날이 아닌 무서운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수밖에 없다.

 


<해설>

1. 요엘서의 문학적 독자설

요엘서의 문학적 독자설에 대해서는 두 가지 예로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 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욜3:16)에서 나타난 사상은 분명히 암1:2보다 이전의 것이다. 왜냐하면 요엘서에서는 이 구절이 계시의 절정에서 나오는 반면, 아모스에서는 이 구절을 본문의 출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욜3:10에서 여호와는 열국을 권하여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라고 하였지만 사2:4, 미4:3에서 그 이후의 선지자들이 예언하기를 유다의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시기가 올 것이라고 하였다. 즉 이상보다 현실이 앞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유다의 적대국들(욜3장)

본 서에 열거된 유다의 원수국들은 북쪽으로는 두로와 시돈(욜3:4), 서쪽으로는 블레셋(욜3:4), 남동쪽으로는 애굽(욜3:19) 그리고 남쪽으로는 에돔(욜3:19)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는데, 이들 국가들은 9세기 후반에 앗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처음 접촉한 이후로 순서대로 유다의 적대 국가들이 되었다. 

또한 다메섹의 아람인들이 언급되지 않고 있음도 주목해야 하는데, 이들은 이스라엘의 예후와 여호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을 공격했으며, 결국 유다의 요아스로 하여금 그의 통치 말기에 무거운 조공을 바치도록 하였다(왕하12:17,18; 대하24:23,24).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적대국들은(블레셋, 두로와 시돈, 애굽, 애돔) 시대적으로 유다의 초기 적대 국가들이라는 근거에서 설명될 수 있다.

 

3. 메뚜기 재앙

예루살렘의 메뚜기 재해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록은 1915년「National Geographic Magazine」 겨울호에 화이팅(John D.Whiting)이 쓴 글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그 재앙이 그 해 2월말부터 시작하였으며, 이집트 국경에서 타우루서(Taurus)산맥에 이르기까지 전팔레스틴과 시리아 전지역에 걸쳐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이 예루살렘 재앙의 경우에서는 메뚜기 떼가 어김없이 동북 방향으로부터 와서 남서쪽으로 진행했는데, 이것은 욜2:20을 정확히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재앙의 또 다른 증인인 아론슨(Aronshon)은 메뚜기 떼가 나타난 이후 두 달이 못되어 모든 푸른 잎사귀들과 나무껍질을 뜯어 먹어서 나무들이 잎사귀 하나 없이 하얗게 해골처럼 벗겨졌으며, 초지도 남김 없이 기습을 당해 맨땅을 드러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무 그늘에 눕혀 있던 아람인 아기들이 채 울기도 전에 그 얼굴을 뜯어 먹히고 말았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악함 때문에 이 재앙이 왔음을 받아들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 당시에 엄청난 양의 메뚜기가 잡혀서 생매장되거나 저수지나 지중해로 던져졌으며 그 시체들이 해변으로 밀려나오면서 말려서 터키탕의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정부에서는 그 해 4월에 성명서를 내고 16세로부터 60세까지의 모든 남자들에게 매일 메뚜기알 5kg을 모아 담당 공무원에게 내도록 하였다.

 

4. 메뚜기떼에 대한 해석

메뚜기 떼에 대하여 가장 좋은 해석 방법은 역사적, 문자적 해석이다. 이것에 의하면 요엘서는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선지자 당시의 시대적 상황속에서 나온 실제적 사실로서 이스라엘을 소동케 한 메뚜기 재앙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만약에 시대적 상황을 버린다면 요엘서는 단지 이전의 에언 문학에 대해 박식한 소론(小論), 즉 탈무드의 미드라쉬(Midrash)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요엘이  장로들에게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욜1:2)고 엄숙히 묻는 장면, 제사장들에게"너희는 굵은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욜1:13)라고 꾸짖는 장면, 또 백성들에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2:13)라고 엄히 권면하는 장면들을 볼 때 그가 가상의 청중들에게 연설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더욱이 그가 실제의 군인들을 '용사같이'라고 묘사했다든지 실제의 기병을 '기병같이'라고 표현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욜2:4-9).

이상에서 볼 때 요엘은 사실상 군병들과 다름없는 실제의 메뚜기 떼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또한 욜2:20의'북방'으로부터 온다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1915년 예루살렘을 덮쳤던 메뚜기 떼도 바로 그 방향으로부터 날아왔었고, 다른 많은 기록들도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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