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분별/영 분별

에스겔의 막대기

은바리라이프 2009. 3. 4. 15:36


케이스 에이치 메저비

모든 선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성구를 인용해 왔다.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에스겔 37:16-17)  

후기성도들에게 이 성구는 말일에 주님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것을 돕기 위하여 요셉의 막대기, 즉 몰몬경유다의 막대기, 즉 성경이 합치게 될 것을 에스겔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사실 교회내의 성경 해석자들은 에스겔이 말하고 있는 “막대기”가 무슨 막대기인지 두루마리인지 또는 홀인지, 의견의 이견이 있지만 교회에서는 교리와 성약 27편 5절의 말씀을 빌어 각 막대기는 경전을 뜻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계속 반박을 받아 오고 있다. 교회 밖의 성경 학자들은 “막대기”를 지팡이 또는 홀이라고 해석한 전통적인 기독교 해석은 에스겔이 말하고 있는 뜻에 더 잘 부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막대기에 관한 예언 바로 다음에 나온 주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내세우고 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간바 열국에서 취하며...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찌라”(에스겔 37:21-22)   

나무판과 같은 책을 옮기는 사람을 묘사하고 있는 조각 그림.
"책"의 "등"은 실제로 판에 있는 경첩이다.(바레쿰의 돌기둥, 베르린에 있는 국립 박물관인 포더라디스티쉐스 박물관의 허가를 받아 사진을 게제함)

 그들은 아주 분명하게 이 두 종족의 홀이 합치는 것이 나뉘어진 지파들의 재결합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짓고 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해석은 이러한 내용과 다르고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평가들은 후기성도들의 해석을 “반경전적”-어떤 점을 증경하기 위해 전후 관계에서 벗어나 성구를 해석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종류의 비난을 고려하여 헤롤드 비 리 회장은 1968년에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열린 신학 연구원 중등부 및 대학부 교사 모임에서 행하신 말씀에서 교회의 해석에 관해 다음과 같이 재확신 시켜 주셨다. “보고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요셉의 막대기가 몰몬경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밝히고 있는 교리와 성약 27편 5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중에 누구도 그와 같은 교리를 가르치거나 진리를 알고 간증이 있는 여러분의 설명도 없이 그것을 가르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거인의 관점“ 브리감 영 대학교, 1968년 7월 18일, 신학 연구원 중등부 및 대학부 발행)  

최근에 몇 가지 흥미로운 것들이 발견됨으로 인해 1830년에는 불가능했던 방법으로 조셉 스미스의 해석이 정확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몇 가지 언어적인 말을 살펴보기로 하자. 에스겔서의 이 부분에서 사용된 히브리어인 etz의 근본 의미는 목재이다.  

etz이란 단어는 구약전서에서 약 300번 나온다.

주전 3세기에 유대인들이 사용하기 위해 번역한 70인역을 살펴보면 etz란 단어를 목재(ksylon)란 말로는 249번이나 번역되어 있지만 나무(dendron)이란 말로는 단지 15번밖에 번역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번역자들은 히브리어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모국어에 대한 예감이 있었다. 분명히 그들은 etz의 첫째 의미를 목재로 보았다.  

가장자리가 높은 나무판, 이라크에 있는 사용되지 않는 우물에서 발견됨.(런던 영국 박물관에서 케이스 에이치 메저비가 찍음)

  그런데 이 70인역 번역자들이 그 중요한 37장에서 목재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지팡이(rabdos)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특별히 이상한 것은 전체 구약전서에서 etz를 지팡이(rabdos)로 번역한 곳은 이곳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오늘날, 대부분의 해석가들이 이 유일한 70인역을 통해 이 문장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중요하다.  

학자들은 번역자들이 민수기 17장 2-3절에 있는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주님께서 모든 족장에게 그들의 이름을 그의 지팡이(rabdos)에 쓰고 그것을 회막 안에 밤새 두게 하셨다. 에스겔서 37장의 끝부분에는 왕국의 재결합에 관한 예언이 있다. 이 설명의 결점은 민수기에서 지팡이로 번역된 단어는 etz가 아니라 matteh란 단어인데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지팡이를 뜻하는 완전한 히브리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그런 의미를 나타내려 했다면 왜 matteh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배경에서 이라크에 있는 고고학자들과 언어 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새로운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오늘날의 이라크 국가는 고대 앗수르와 바빌로니아 왕국의 모국인 메소포타미아의 거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주전 593년에 에스겔이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느브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잡혀 온 많은 유대인들과 함께 유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를 걸으면서 전형적인 서기관들이 쐐기 모양의 철필로 축축한 진흙판에다 우리에게는 쐐기(설형)문자로 알려진 복잡한 글자를 새기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파피루스, 양피지, 나무판과 같은 다른 종류의 기록을 만들고 있었음을 알아냈다. 비록 진흙판만이 수천년 동안 남아 있지만 기록자들은 진흙판에서 다른 필기 재료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가까이에서 본 경첩이 달린 기록하는 판의 그림(엠 이 엘 맬로원, 님르두와 유적들,[런던:콜린즈] 153, 이라크에 있는 영국 고고학 학교의 허가를 받아 사용함)

 현대의 고고 학자들은 파피루스와 양피지의 소재는 알아냈지만 나무판은 찾지 못했다. 설형 문자를 어떻게 나무에 기록할 수 있었을까? 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설형 문자를 나무에 그렸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샌 니콜로가 남 바벨론의 우룩에 있는 애너 신전의 기록 보관소에서 두 개의 진흙판을 발견함으로 인해 바뀌고 말았다. 하나는 주전596년, 다른 하나는 주전 582년으로 되어 있다. 그 기록자들은 모두 그들의 나무판을 채우기 위해 신전 창고에서 밀랍( 및 샌 니콜로가 알지 못한 몇 가지 다른 재료)을 얻은 것에 관해 말하고 있다. 채운 다는 것은 무엇인가? 샌 니콜로는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이 기록을 할 목적으로 가장자리를 잘라 얇게 밀랍을 입혀서 나무 밀랍판을 만든 것을 기억했다. 기록자들은 밀랍 위에 기록한 것이다. 볼록 튀어 나온 가장자리는 두 판을 함께 놓을 때 기록한 면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  

바벨론 사람들도 이와 같이 했었을까? 샌 니콜로는 상형 문자를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철필로 밀랍 위에 적는 것은 진흙 위에 적는 것과 거의 같았을 것이며 반면에 나무판 위에 그리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바벨론 사람들이 사용한 나무 기록판은 밀랍 기록판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1948년에 학계에 그의 견해를 발표했다. 그는 그런 밀랍판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그 판들이 쓉게 썩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5년뒤에 놀랍게도 고고 학자들은 고대 앗수르의 영토에서 그것을 발견했으며 그것은 그의 이론이 문자 그대로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이것은 고고 학자인 멕스 멜로원의 지휘 아래 성경에서는 갈라로 알려진 님루드시에 있는 우물 안 깊은 침전물 층에서 발견되었다. 첫 번에 발견한 것은 가로, 세로 150센티미터 넓이에 12센티미터 두께로 되어 있는 편평하고 깨어진 상아판이었다. 그날 안으로 일꾼들은 이 깨어진 판의 다른 반쪽을 찾아 내었다. 그들이 작업을 마칠 때까지 그들은 두 세트의 완전한 판을 만들 수 있는 조각을 찾아 내었는 데 하나는 상아로, 다른 하나는 호두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각각은 16개의 판으로 되어 있었다. 두 세트 모두 330×152×12센티미터인 같은 크기의 판으로 만들어졌다.

경첩이 달린 기록하는 판을 사용했음을 묘사하는 고대 자료의 또 다른 예. (런던 영국 박물관에서 케이스 에이치 메저비 찍음)

 판의 모든 표면은 2.5센티미터 가량 오목하게 들어가 있으며 12센티 미터 넓이로 가장자리가 튀어 나와 있었다. 낮추어진 표면은 밀랍으로 채웠는데 이 얇은 조각들이 여전히 팔에 부착되어 있거나 다른 침전물에 섞인 상태로 발견되었다. 침전물로 대부분의 기록들이 닳아 없어졌지만 증명할 만한 것은 거기에 있었으며 한조각에 있는 상형문자는 읽어볼 수가 있었다.  

겉 표면을 밀랍으로 채우지 않은 표지판에는 양쪽에 경첩 자국이 있는데 이것은 각 세트의 16개의 판들이 한때는 한국에 병풍처럼 함께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 모든 판에는 멜로원씨가 그것을 가장 오래된 책의 예로써 발표한 만큼 광범위한 기록이 담겨 있었다.  

그는 실험 분석에 의해 채운다는 것에 관한 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밀랍 4에 비소의 황화물 1의 비율이었다. 비소의 황화물은 샌 니콜로가 진흙판에서 읽었지만 알 수 없었던 바로 그 재료였을 것이다. 그것은 밀랍을 부드럽게 하여 철필로 그 위에 분명하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표면이 밝은 노란색이 되게 했다. 하나의 밀랍 조각에 보존되어 있는 작고 정교한 기록은 매우 빽빽하게 쓰여 있기 때문에 30개의 기록판에는 거의 7,500행을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나무판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적혀 있었다. “앗수르의 왕이오 세상의 왕인 사르곤의 궁전에 사르곤 왕은 Eumna Anu Enlil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말을 상하로 된 판에 새겨 그의 궁전인 두르 샤루킨에 보관하게 하였다.” 주전 705년에 사르곤이 죽었을 때 궁전은 빼앗기고 판들은 여러 갈래로 쪼개지게 되었는 데 이것은 아마도 금으로 만들었을 판에 달린 경첩을 떼어 가면서 그랬을 것이며 “가치가 없는”찬들은 우물에 던져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발견으로 인해 샌 니콜로의 가정은 증명되었다. 학자들은 is le'u에 관련된 상형 문자를 통해 나무판을 고대 바벨론 왕국에서 주전 1700년부터 사용했음을 알아냈다. 또한 1,000년 후에 나무판들은 종교적인 교재, 의식, 보고서, 및 왕의 명령을 기록하고 호구 조사를 하고 토지 관계를 기입하고 선적한 물건의 영수 관계를 기록하고 기름 배급게 관한 기록을 하기 위해 앗수르에서 사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인의 기록하는 판의 재건, (런던 영국 박물관에서 케이스 에이치 메저비 찍음)
사진 제공자: 지 콘티뉴 manuel d'Archeologie Orientale[Paris picard] 2215, 그림 1244, 허가를 받아 사용함.)
이 기록하는-"막대기"-에는 지금도 약간의 밀랍과 비소 황아물이 남아 있다. 비소 밀랍을 부드럽게 해주었으며 밝은 노란색을 띠게 했다.

 학자들은 이전에 발견된 벽에 조각된 그림에서 앗수르인들이 나무판을 사용했다는 시각적인 증거를 얻게 되었다. 또 한 북 메소포타미아의 아랍인들의 고대 유적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헽 족속에 관한 예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샌 니콜라는 헽 족속도 상형 문자를 사용했으며 그들은 그들의 기록 중 몇 가지를 나무에 기록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기록한 기록자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 학자들은 오랫 동안 그리이스인과 로마인들이 밀랍판을 사용했다고 알고 있었다. 사가랴는 그의 어린 아들의 이름을 침례 요한이라고 그와 같은 판에 적었다.(누가복음 1:63)그 판들은 적어도 주후 14세기 무렵까지 유럽에서 계속 사용되었다. 요컨대 기록을 하기 위하여 밀랍판을 사용하는 것은 수천년에 걸쳐 (주전1700년부터 주후 1400년까지)많은 문화 속에서 실시되어 온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에스겔서에 나타나는 그 구절에 관해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는가?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에 대한 지식과 일치해야 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예언의 경위와 맞아야 할것이라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배경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에스겔서의 배경은 바벨론의 관습과 관례를 갖고 있는 바벨론 시대이며, 언어는 바벨론의 자매어인 히브리어이다. 바벨론어인 is는 히브리어 etz와 좋은 어원이며 둘 다 나무를 뜻한다. 상아판이 아카드어 원전에서는 shin piri로 만든 is leu-코끼리 상아로 만든 나무판, 이것은 불합리한 모순처럼 여겨지지만-라고 불리운다는 사실은 is leu가 “나무판”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지간에 “기록하는 판”은 뜻함을 나타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라틴어로 책이라는 단어인 liber는 원래 “나무 껍질”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서관 직원이 나무 껍질 전문가는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에스겔서 37장 15-17절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이 번역은 에스겔의 언어와 문화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일치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번역은 주요 개신교 교회들과 영국에 있는 성경 학회 후원으로 번역한 새 성경 영문판에 나와 있다. 그러므로 막대기를 “기록”으로 보는 것에 관해 반감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실 막대기를 홀로 또는 다른 것으로 해석한 사람들은 그것을 해석하면서 문화적인 배경과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야만 한다.  

멜로원이 고대 우물에서 발굴 작업을 펴서 나무판을 발견한 후 곧 우물이 붕괴되어 줄을 타고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이 거의 묻힐뻔 하였다. 멜로원은 운이 좋게 판을 구한 것과 우물이 붕괴되기 전에 일꾼이 우물 밖으로 나온 것 이외에 판들을 모두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그의 느낌을 적고 있다.  

“우물 밑 바닥에 있는 유기물들이 그대로 보존된 것은 거의 기적처럼 보이지만 특별한 침전물의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행운으로 우리는 한때 서아시아의 수많은 도시에 있었지만 지금은 오직 한곳에만 남아있는 기록의 종류를 잃어버리지 않게 되었으며 서기의 기록과 비슷한 형식임에 틀림이 없는 가장 오래된 증거 자료를 갖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행운인가? 기적인가? 19세기 초 뉴욕 변경의 미개척지에 살았던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성경상의 구절을 논리적이고 관례적인 해석에 반대하여 20세기에 이루어진 발견으로 인해 증명된 그러한 방법으로 해석했었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조셉 스미스의 짧은 성역 기간 동안에 이와 같은 세세한 것들이 회복된 복음 전체를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며 다시 한번 영감의 영역이 얼마나 길고 넓은가를 보여 주고 있음을 참으로 인상적이다.  

막대기를
"기록"으로
보는 것에 관해
반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자료원 : 성도의 벗(리아호나), 198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