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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전과 실용주의에 울린 경종, <워낭소리>

은바리라이프 2009. 2. 21. 23:56

속도전과 실용주의에 울린 경종, <워낭소리>
<오마이뉴스> 창사 기념 단체 영화관람을 다녀와서
  이성한 (twinstarh)

  
▲ 워낭소리 '인디스페이스' 극장에 걸린 워낭소리
ⓒ 이성한
워낭소리

내가 생각하는 '소'라는 동물은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인 동물이며, 가장 생태적인 동물이다. 소는 살아있는 평생 동안 자신을 그저 먹여주기만 하는 주인(인간)을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기꺼이 바친다. 

 

봄날의 소는 한 해 농사를 위해 농토를 일구는 농부의 손에 이끌려 겨우내 척박해진 메마른 밭을 갈고, 거칠고 질척해진 논을 수행의 자세로 묵묵히 뒤집는다.

 

여름날의 소는 논두렁, 밭두렁에 무성하게 자라 주인의 낫질에 베어진 꼴을 먹는다. 들과 산에 베풀어진 자연이 준 너그러운 식사를 먹고, 튼실한 새끼를 낳아 궁핍한 주인의 살림살이에 넌지시 보탬을 준다.

 

가을날의 소는 햇살에 영근 풍성한 곡식과 과실을 수확한 농부에게 기름값 걱정 안 들게 하는 무공해 수레이자 무거운 짐을 거뜬히 나르고 옮겨주는 힘 센 아들이 된다.

 

겨울날의 소는 눈 쌓인 시골길에 아이들을 태워 학교에도 가고, 늙은 주인을 태우고 마실 가는 마을버스이자 달구지가 되고, 겨울나기 땔감을 가득 싣고 집으로 향하는 착한 배달부도 된다.   

 

그렇게 소는 사시사철 그저 밥만 먹여주는 주인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아무 저항 없이 순종하는 표정으로 운명처럼 한다.

 

소의 평균수명은 약 20년이라고 한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약 80세라면 소라는 동물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고작 20 평생 단명의 생을 사는 셈이다. 그렇지만 소는 억울해하지도, 불평하지도 않는다. 다만 때가 되면 조금은 겁먹은 표정으로 순 하디 순한 눈을 껌뻑이며 주르륵 눈물 한 방울 주고 떠나갈 뿐이다.

 

나는 어제(2/16) 아내와 함께 ‘오마이뉴스’ 창간 9주년 기념<워낭소리> 특별단체관람을 하고 왔다. 단체관람 이벤트에 당첨되지 못하고 예비대기자 명단에 두 번째로 올라있던 나는 양보해 주신 다른 분들 덕택에 예상치 못한 뜻 깊은 문화생활을 누린 셈이다.

 

  
▲ 영화 티켓 2장 '예비대기자'였다가 운 좋게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 이성한
영화 티켓

 

나는 아내와 함께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숨죽이며, 때론 박장대소하며, 시종 눈길을 뗄 수 없도록 나의 감정을 빨아들이고 있는 아름다운 영상에 몰입했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나는 순간순간  영화 속 최원균옹께서 마치 무욕의 성자처럼 간간히 허공에 뱉어내신 뼛속을 파고드는 말들을 잊을 수 없다.

 

"이 소는 사람보다 나~아요!"

"이 소가 죽으면 내도 죽을 깁니다."

 

"사람은 살아있을 때 움직이야지, 죽으믄 모하잖아!"

"뭐 뭐, 살아있으면 일을 해야지… 죽으믄 그만이지 뭐!"

 

"농약 치믄 소는 뭐 먹일라고? 농약 치믄 안 된다. 소 죽는다."

 

이 밖에도 할아버지께선 때론 독백처럼, 때론 중생들을 깨우치는 법어처럼, 관객들의 심장을 파고드는 듯한 깊고 순결한 울림을 시종일관 건네셨다. 담배연기처럼, 컬컬한 만성 기침처럼 거칠었지만, 원초적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맑고 투명한 할아버지의 말씀은 나의 가슴을 한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기계와 농약, 새 것과 쉬운 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철썩 같이 굳은 심지를 가진 고집쟁이 늙은 농부였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을 통해 이 시대의 나를, 우리를,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를 잠시 바라볼 수 있었다. 오로지 경쟁에서의 승리와 그로 인한 편리적 삶과 성장을 한국적 자본주의의 희망이라 설파하는 정권의 본심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다수 국민의 뜻과 동떨어진 '속도전과 실용주의'라는 60년대식 슬로건을 강요하며, 오로지 효율과 성장만을 부르짖는 정권의 몸서리쳐지는 물신주의를 생각했다.

 

늙은 소를 헐값에 팔라는 '소'장수의 흥정에 꿈쩍도 않고, 온당치 않다 생각되면 "안 팔아! 안 팔아!"라고 짧고 단호하게 소리치는 할아버지. 소 먹일 풀을 베고 쇠죽을 쑤는 일이 힘들어 사료를 사 먹이자는 할머니에게 "안 돼! 사료 못 먹여!"라며 또 소리치는 할아버지. 김매기가 힘이 들어 제초제를 뿌리자는 말에도, 병충방제를 위해 농약을 치자는 말에도, 낫보다는 기계로 벼를 베자는 말에도 할아버지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고집으로 우악스럽게 ‘안 된다!’고 호령하셨다.

 

무식하고 보잘 것 없는, 장애를 가진, 제 몸 하나 가누기 쉽지 않은 고집쟁이 늙은 농부 최원균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쉽고 편리하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셨을까? 그야말로 늙고, 무식하고, 무지하기만 해서였을까?

 

나는 무엇인가,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단호히 반대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던져 자신의 것을 끝내 지키는 강건한 삶의 원칙을 볼 수 있었다. 말이 아니라 직접 필사적으로 온 몸을 던져 피와 땀으로 보여주고 가르쳐주신 할아버지의 헌신을 접하며 사뭇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더욱이 느리더라도, 힘이 들더라도,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주변을 해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우직한 소의 고귀한 성품을 보았다. 나는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워낭이 이 시대의 난폭한 위정자들에게 울리는 순결한 경종의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 이충렬 감독 '워낭소리' 특별단체관람을 마치고 관객들과 이충렬 감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 이성한
워낭소리

 

40년을 쉼 없이 함께 일해온 시골 늙은 농부의 자식 같은 동반자 늙은 소. 자리에 누워 "아파! 아파!" 신음하면서도 늙은 소가 가끔씩 울리는 워낭소리를 들으면 순간 눈을 뜨는 할아버지.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소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소가 아닐까?"라는 찰나의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노쇠하고 늙은 소를 임종한 후, 마침내 죽은 소에게서 코뚜레와 워낭 묶은 줄을 가위로 잘라 떼어주며 이승에서의 고단한 인연을 해방시켜주는 할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을 기억하며 극장 문을 나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와 늙으신 홀어머니에 대한 불효자식으로서의 그리움과 죄송스러움이 사무쳐 흐르는 강물처럼 마음속으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월요일(2/16) <오마이뉴스> 창사 9주년 기념 특별단체영화관람을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