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수명
화제의 독립영화 ‘워낭소리’에서 주인공 소가 시국과 조우하는 장면은 꽤 그로테스크하다. 두통에 시달리는 할아버지를 달구지에 싣고 병원으로 터벅터벅 걷던 소. 읍내 거리에서 ‘미친 소를 막아내고 우리 한우 사수하자’는 시위대 앞에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본다. 한없이 무심한 눈빛이 화면 속 긴장감을 한순간 무력화시킨다. 그 잠깐의 ‘대치’는 뒤이어 묘한 대비를 불러일으킨다. 소의 나이다. ‘미친 소’ 논리를 내건 이들에게 건강성의 기준은 30개월령이었다. 그 기준이 넘는 소는 한물간 소, 곧 먹으면 당장 탈이 날 것처럼 공포심을 유포했다. 시위대 앞에 버티고 선 소는 그보다 16배 많은 40세, 통상 15~20년이라는 평균수명에 비하면 오래 살긴 했다. 그렇다 해도 소는 3년도 채 안되는 ‘퇴물’ 기준을 두고 할 말이 많지 않았을까. 동물의 수명은 제각각이다. 2~3년인 생쥐에서부터 60~70년은 족히 넘는다는 거북·코끼리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지만, 개·고양이·소·말·돼지·호랑이·사자 등 친근한 동물의 수명은 대개 10~20년 사이에 있다. 삶의 속도가 수명을 결정한다고 주장한 이는 독일의 생리학자 막스 루브너다. 쉴새 없이 움직이는 생쥐는 게으른 코끼리보다 생이 일찍 마모된다는 이론이다. 그럴 듯하지만 포유류보다 2배 가량 속도감 있는 조류가 3배는 더 오래 산다는 데에서 막힌다. 수명에 관한 한 인간은 독보적 성취를 이뤘다. 다른 동물에 없는 갱년기는 덤으로 얻은 생의 흔적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도 1948년 47세였던 평균수명이 80세에 근접하면서 근래 ‘100세 시대’ 금융·의료 상품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다. 수명이 짧은 동물에게 위안이 있다면 삶의 밀도다. 개·고양이 등은 생후 1년만에 인간의 14~15세 수준에 도달한 후 생애 5분의 4 동안 최고의 몸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평균수명은 지구상의 단 세 부류, 즉 인간·야생동물·애완동물에나 적용되는 사치일 뿐이다. 식용으로 쓰는 동물에게 강조되는 건 수명 아닌 효율이다. 소는 사료·체중간 한계효용이 사라지는 24~30개월, 돼지는 160~180일, 닭은 2개월 이내에 찰나의 생을 마감한다. 싸고, 푸짐하고, 맛있는 고기를 탐하는 인간의 식욕·미각에 희생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수명을 한껏 누리고 자연사한 것만으로도 ‘워낭의 소’에겐 축복인 셈이다. [[김회평 /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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