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요압… 공로도 퇴색시킨 ‘자기중심의 순종’

은바리라이프 2009. 2. 12. 18:38

요압… 공로도 퇴색시킨 ‘자기중심의 순종’  

요압은 수리야의 세 아들 중 둘째였다.아비새 요압 아사헬 3형제는 장군의 기질을 가진 유능한 장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요압은 더 뛰어난 사람으로 군대장관이 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왕에 의해 선택받아 다윗 왕과 함께 평생을 지낼 만큼 측근에서 일한 사람이다.

요압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세운 나라를 다윗이 세운 나라에 통합하여 다윗왕국을 건설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었다. 그 후에도 에돔 암몬 수리아 라마 등을 무너뜨리고 정복하는 데에도 크게 공헌했다. 그 외에도 다윗을 도와 그림자처럼 참모로 일한 다윗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요압은 능력을 갖춘 행운아였다.

그러나 요압이 다윗에게 항복하고 귀순하여 돌아오는 아브넬을 죽인 것은 큰 잘못이었다. 아브넬은 사울 왕의 충신이었고 사울 왕이 전사하자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왕으로 세운 사람이다. 그러나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국운이 다윗에게 기울어지고 이스보셋과의 불화가 생기자 다윗 왕에게로 돌아왔다.

그때에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요압이 아브넬을 정적으로 여기고 또한 위협적인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살해했다는 해석이 많다. 요압이 그런 이유에서 아브넬을 살해했다고 하면 큰 인물을 역사에서 제거시킨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 역사의 흐름을 막아서도 안되고 역사의 방향을 그르쳐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선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협력자가 되어야 하고 나라와 민족을 돕고 보호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개인의 욕심을 위해 역사에 상처를 남겨도 안되고 역사를 부정하게 만들어도 안된다.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되 필요하고 소중한 인물이라면 더욱 보호해야 한다. 요즘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하고 섭섭하기까지 하다.

공작정치는 예사고 거짓말이라도 강하게 밀어붙이고 덮어씌우면 승리한다는,질 나쁜 방법이 국회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이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일인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싹트겠는가. 이 책임을 생각해봤는지 정말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요압과 같이 자기를 위해 남을 죽이는 일은 하지 말자.

이 사건을 통해 요압에게서 더 큰 실수를 찾는다면 다윗 왕이 용서한 아브넬을 요압이 죽였다는 사실이다. 신하가 왕에게 바치는 충성은 자기 중심의 충성이 아니라 왕이 바라는 충성에 최선을 다하는 순종이어야 한다. 요압이 생각하는 충성의 표현과 다윗이 바라는 충성의 기대가 분명 다르다.

요압은 자기 생각대로 다윗을 섬기려는 자기 주장을 앞세우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헌신이나 봉사도 이와 같다. 내 생각대로,내 판단대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요구하고 소망하는 그 뜻에 자신을 잘 적응시켜야 한다. 열심히 일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어떤 목사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목사의 생각으로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주의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 생각했다.

그러나 “네가 좋아 네 일을 한 것이지 네가 내 일을 한 것이냐?”고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 순간 그가 깨달은 메시지는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더 원하신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교가 하나님의 일보다 그 목사에게는 더 필요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순종은 많은 사역보다 더 유익한 것을 깨닫게 된다.

다윗이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명하자 요압은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하기를 원하나이다…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대상 21:3)라고 하였다. 이 말은 요압이 다윗 왕에게 목숨을 내놓고 권고한 참으로 위대한 사역이었다. 요압이 많은 전쟁에서 큰 전과를 거두어서 나라를 크게 번영시키는데 공헌한 만큼이나 버금가는 귀한 일이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은 다윗에게 선지자 갓을 보내어 3년 기근과 3개월 적에게 쫓기는 일과 3일 온역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자 다윗이 3일 온역을 택하여 7만명의 백성을 잃게 되었다. 이 큰 실수에 대한 뜨거운 회개를 통해 다윗은 자기 일생을 통해 영적으로 크게 경성하는 기회를 삼게 되었다. 이때에 하나님의 위엄 다음으로 다윗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사람으로 두고두고 다윗은 요압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러한 인연이 요압과 다윗 사이를 평생 조력자로 묶는 큰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일생동안 사명은 하나일지 모르지만 사역과 봉사의 방법은 다양하게 마련이다. 그 중에 요압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소중하게 아끼는 사람에 대해 꼭 전해야 할 말을 전달하는 것만큼 소중한 일도 없다. 상대방이 윗사람이요,내가 크게 섬기는 사람이라도 필요한 직언은 반드시 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의 표현이고 그를 위한 최선의 예우일 수도 있다. 더욱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받은 하나님의 음성이라면 충성되고 정직하게 충언해야 한다.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주변에서 이렇게 영감을 통해 돕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지도자의 눈과 귀를 막고 자기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양심을 파는 사람들이 대를 잇는 것 같다.

요압이 압살롬을 환궁시키기 위해 드고아 여인의 두 아들의 비유를 든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해 압살롬을 데려왔으나 압살롬의 모반으로 다윗 왕은 씻을 수 없는 정치적인 시련을 겪게 되었다. 압살롬의 난으로 전쟁중일 때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요압이 창으로 그를 찔러 죽였다.

이때에 다윗은 또 한번 아들을 잃는 마음의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요압의 계획대로 압살롬이 돌아왔는데 요압의 손에 압살롬이 죽게 된 결과가 되었다. 요압이 압살롬의 환궁을 계획한 것은 다윗 왕과 왕실을 위한 화해를 이루는 값진 일이었다.

그 일이 성사된 것도 요압의 분명한 공로였다. 물론 요압의 정치적 이익 때문이었은지는 알 수 없으나 다윗 왕실을 위해서 공헌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압살롬의 생각과 그의 의도는 전혀 달랐던 것을 알아야 하겠다. 여기서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생각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 편에서 사람과의 친교도 분별해야 한다.

사람과 사귀는 일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생각없이 가까이 했고 영적으로 거르지 않은 채 사람을 사귀었다가 큰 실수와 피해를 입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을 가까이 할 때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내게 접근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하겠다. 요압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요압을 통해 얻는 교훈>

요압은 다윗에게 있어서 누가 뭐라고 해도 일등공신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그는 좋은 머리를 가졌고 통솔력도 좋았으며 종교적인 영감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그에게 고쳐야 할 점이 있었다면 자아가 너무 강한 것이 흠이었다. 그러므로 때로는 요압이 다윗의 생각을 앞지르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었다. 항상 하나님의 영감이나 말씀을 앞세워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요압이 다윗왕에게 인구조사에 대한 잘못을 권고한 것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사람은 친분이 두텁고 신임도가 높을수록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따라야 한다. 나를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영혼을 위해 그를 사랑하는 하나님 중심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꼭 해줘야 할 말이나 권고를 하는 것도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병돈 <서울 은평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