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요압의 리더십

은바리라이프 2009. 2. 12. 18:34

요압의 리더십


유방의 부하로 들어간 한신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웁니다. 유방을 황제로 등극시킨 일등 공신이었지만 결국 역적죄로 몰려 유방의 손에 목숨을 잃습니다. 유방은 학문이나 전쟁 지략, 국가 정세에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신은 몰락한 귀족 출신으로 국가 정세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병법에 탁월했습니다. 항우의 막강한 군사도 한신의 특유한 병법으로 섬멸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유방은 한신을 제거합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유방의 마음을 미리 읽고 항상 앞서갔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며 하고자 하는 일을 미리 해주는 한신이 고마운 게 아니라 목숨을 노리는 적보다 더 두려운 존재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더구나 유방의 군사지략을 폄하하고 자신을 내세우던 한신을 유방은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압은 사사로이는 다윗의 누나의 아들입니다. 다윗이 역적으로 몰려 망명생활을 하는 마당에 그 역시 다윗과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하튼 그는 망명생활을 하던 때부터 다윗의 최측근으로 있으면서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다윗은 항상 요압의 존재에 부담을 느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다윗은 요압을 노골적으로 견제했습니다.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충신을 왜 다윗은 제거하려고 했습니까?
요압은 다윗에게 충성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명령이 자기의 유익에 부합되면 생명을 걸고 지켰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유익에 부합되지 않거나 직책이나 위치가 불안해지면 다윗의 명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요압이 다윗에겐 항상 목의 가시처럼 여겨졌습니다. 다윗은 무리하면서까지 요압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아브넬이 백기를 들고 합병을 청해 왔을 때 다윗은 요압을 제거할 좋은 기회로 삼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속임수를 써서 아브넬을 살해합니다. 요압을 대신하여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를 기용하지만, 아마사 역시도 요압의 손에 죽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소년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요압은 그를 무참하게 살해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던 다윗에게 요압은 우리의 승전을 부끄럽게 했다고 협박합니다.
물론 일련의 사건은 다윗의 지나치게 편파적이고 감정적인 조치에서 발생된 실수였습니다. 다윗이 원하는 대로 인사조치가 단행되었다면, 다윗의 원대로 압살롬이 살고 다윗이 죽었다면 이스라엘은 정치적 소용돌이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압은 다윗의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슬퍼할 수 있는 권한까지 박탈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터집니다. 다윗이 나이 많아 거동이 불편해도 왕자리를 물려주지 않자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임을 자처합니다. 서열로 보면 압살롬 다음이기에,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도 아도니아에게 합세했습니다. 다윗의 영향력을 무시한 요압은 다윗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아도니아 시대가 열리는 것을 보면서 합세하여 차기 정권의 공신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방향은 요압의 예측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히 일어날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자기 목숨을 잃게 될 줄이야 요압 자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간 부와 권세를 누렸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아주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척박한 땅에 묻힙니다.


다윗과 요압의 관계를 담임 사역자와 부 사역자의 관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한다면서, 대부분 하나님께 충성하면서도 요압처럼 완전히 충성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윗이 요압을 보듯 하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물론 저 자신도 감당하기 매우 어려운 말인데, 요압의 비참한 모습을 거울삼아 우리 하나님께 충성합시다. 하나님 앞에선 99.99%의 충성이 없습니다. 100%가 아닌 충성은 충성이 아니라 불충성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기왕에 주님의 사역을 맡은 우리, 충견처럼 주인님께 끝까지 최선을 다해 충성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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