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요압

은바리라이프 2009. 2. 12. 17:58

요압

다윗의 치세에 등장하는 가장 신비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요압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은 아니었지만, 그가 없었다면 과연 다윗이 다윗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통상 스루야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그의 출신을 말하면서 왜 아버지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어머니의 이름이 등장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루야는 그의 어머니의 이름입니다. 그가 스루야의 아들이라는 말은 요압이 다윗의 조카라는 말입니다. 스루야가 다윗의 누이인 까닭입니다(대상 2.16). 대상 2.16에 보면 스루야는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을 낳았다고 되어 있고, 스루야의 자매 아비갈은 아마사를 낳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사와 요압은 어머니가 자매이므로 이종사촌지간이 됩니다. 압살롬은 왕권을 선언하고서, 아마사를 자기 군대의 장관으로 삼았습니다(삼하 17.25). 압살롬이 죽자 다윗은 아마사를 요압 대신으로 군대장관을 삼지만(삼하 19.13), 요압이 아마사를 죽입니다(삼하 20.20). 그 뒤에 다시 요압이 군대장관이 됩니다.

요압이 죽인 또 한 사람의 장군은 아브넬입니다. 그는 사울의 숙부인 넬의 아들로서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다가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과 협력하여 나라를 다윗에게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넬은 전쟁터에서 요압의 형제인 아사헬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아브넬이 아사헬을 쫓아가서 죽인 것이 아니라, 자기를 추격하는 아사헬을 어쩔 수 없이 죽였습니다(삼하 2.19-23). 그것은 전쟁터에서 발생한 일이고 정당방위로 죽인 것이므로 개인적인 원한을 품을 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넬은 그 일로 요압이 자기를 죽이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다가 요압의 불의의 습격으로 죽임을 당합니다(삼하 3.27). 장군의 법도에 어울리지 않는 비열한 짓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진노했을 뿐만 아니라 요압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선언합니다(삼하 3.28-29). 그리고 그런 요압에 대한 처리를 솔로몬에게 유언했고, 솔로몬은 성소로 피신하여 제단뿔을 잡고 있는 요압을 쳐서 죽이게 합니다.

이것은 요압이 어떻게 원한을 풀지 못하는 인물인지, 때에 따라서 지극히 야비해질 수 있는 인물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가 아마사를 죽일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사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의 수염을 잡고 반가운 인사의 표시로 입을 맞추는 체 하면서 손으로는 칼을 잡고 배를 찔러 죽입니다(삼하 20.9). 서양 영화에 가끔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 곧 상대를 포옹하면서 한 쪽 손에 총을 잡고 상대를 쏘는 것 같은 장면들이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요압이 어떻게 잔혹한 성질을 가진 사람인지 짐작케 합니다. 혹은 어떤 사람들의 추측처럼, 요압이 아브넬을 잠재적인 경쟁자로 보고 다윗과의 협력을 통하여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아브넬을 미리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요압은 우리아를 죽일 때에도 다윗과 손발이 잘 맞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밀명이 떨어지자 즉시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장으로 내어 보내 즉시 죽입니다(삼하 11.6-26). 이는 다윗에 대한 그의 무조건적인 충성의 증거로 보입니다. 또한 요압은 다윗과 압살롬 사이에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합니다. 사무엘하 14장에 보면,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그술로 간지 3년이 지나자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기울었습니다. 다윗의 이런 심정을 헤아린 요압이 지혜를 내어 압살롬을 데려오게 할 뿐만 아니라, 다윗과 압살롬을 화해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하 12.26-31에 보면, 암몬 자손의 성 랍바를 쳐서 거의 점령한 요압이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만약 자기가 그 성을 취하면 그 공이 자기에게 돌아올까봐 걱정되므로, 다윗이 군사를 몰고 와서 그 성을 취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성을 취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요압이 얼마나 다윗에게 충성했으며, 그를 자기의 주군으로 모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전쟁의 공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그 공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참으로 충일한 군인정신이고 주군에 대한 충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뒤에 압살롬이 다윗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그를 살려두라는 다윗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을 죽입니다(삼하 18.14-15). 아마 요압의 마음 속에는 다윗의 왕권에 저항하는 자는 살려둘 수가 없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이 아브넬을 죽였을 때에 다윗은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대로 갚으실찌로다’고 탄식합니다(삼하 3.39).

뿐만 아니라 요압은 경우에 따라서 다윗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사무엘하 19장에 보면,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알고 슬퍼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요압은 다윗을 향하여, 만약 다윗이 지금처럼 하면 백성의 마음이 다윗을 떠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다윗은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을 충고합니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찌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삼하 19.7).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자기가 다윗에게 등을 돌리겠다는 위협으로 들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정신이 번쩍 들어서 정신을 차리고 백성 앞에 나아가 그들을 안돈하고 안정을 회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압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 할 때에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요압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삼하 24.3). 요압은 다윗의 소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음을 잘 알고 그것을 말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고 일을 추진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그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 사흘 동안 온역이 돌아 무려 칠만 명이 죽게 됩니다. 이런 일들은 요압이 때로는 다윗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말년에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다윗의 결정에 거역하여 아도니야를 지지한 것입니다. 그 결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므로 죽음은 당하지 않고 낙향했지만, 요압은 죽음을 당합니다(왕상 2.28-35). 아비아달이 축출된 후에 사독이 대제사장이 되고, 요압이 죽은 후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그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렇게 해서 솔로몬의 왕권이 견고해져 갑니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다윗 휘하에 들어와서 놀라운 용맹과 무용으로 전쟁터에서 다윗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습니다. 그는 다윗이 왕이 되기 이전에 그의 휘하에 들어와 그의 신하가 되었으므로, 햇수로 따지면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다윗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그의 청춘, 그의 삶을 전부 다윗을 위하여 바친 셈입니다. 때로는 그의 친구로, 때로는 그의 모사로, 때로는 그의 반대자로 행동하면서 요압은 다윗 왕국의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빛에 가리워 조명을 받지 못하지만, 요압의 생애는 다윗에 못지 않게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과 그의 관계는 애증이 뒤섞인 관계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기회만 있으면 요압을 자기 곁에서 쫓아내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넬과 약조를 맺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을 듯하며, 압살롬이 죽자 아마사를 불러서 군대장관을 삼은 것을 보면, 다윗은 아마사를 통해서 요압을 제압하고자 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아마사를 죽입니다. 거기에는 다윗이 총애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질투심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다윗이 정한 기한을 지키지 못한 아마사의 무능에 대한 징계의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삼하 20.5). 혹은 다윗을 섬기는 일을 다른 누구에게도 믿고 맡기지 못하는 충성심이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요압은 아브넬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힘을 믿고 왕을 좌지우지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그렇다고 느꼈지만, 아마사가 죽은 후에 결국 다윗은 다시 요압을 군대장관으로 삼고 그를 총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요압에 대한 불신과 그가 저지른 두 건의 악행에 대한 처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왕상 2.5-6). 다윗이 이것을 유언으로 남긴 것을 보면 만약 그에게 힘이 있었다면 자기 생전에 그 문제를 처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군대장관인 요압의 힘이 원체 강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런 요압도 늙고 힘을 잃었습니다. 새롭게 일어나는 솔로몬과 그의 참모들의 힘을 대항할 수 없이 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아비아달을 쫓아냈다는 소문을 들은 요압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시 알았습니다. 솔로몬이 과거를 정리하기 시작한 징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았습니다(왕상 2.28). 전쟁에서 잔뼈가 굵고 무수한 사람의 피를 흘린 맹장의 태도치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우리 동양의 풍습을 따른다면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곳을 자기가 죽을 곳으로 정했습니다.

요압이 다윗에게 바친 마지막 충성이 자기의 죽음의 빌미를 마련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다윗의 뜻을 거부하고 아도니야를 지지함으로써 솔로몬이 자기를 죽일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는 아마 자기가 그 죽음을 피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새로 떠오르는 솔로몬 휘하의 장군 브나야가 곧 올 것입니다. 그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성전 뿔을 잡고 있는 동안 요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다윗과 반세기를 함께 하고, 이제 그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어쨌든 그는 다소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