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삼하 18:28-33

은바리라이프 2009. 2. 12. 16:33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삼하 18:28-33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29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30 ○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아히마아스와 구스 사람의 보고를 받은 다윗은 비록 왕의 자리를 탐한 아들이지만 자식의 죽음을 인지하고 매우 슬퍼했습니다.

아히마아스의 보고(28-30) 아히마아스의 보고는 두 가지 보고였습니다. 첫째는 국가적 승전에 대한 사실적 보고입니다. 하나님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인도하셨다는 신앙적 고백이 포함된 보고였습니다. 둘째는 다윗이 기대하는 아들에 대한 보고를 아히마아스는 ‘주를 대적하는 자들’이란 말로 직접적 보고를 회피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다윗은 직선적으로 아들 압살롬의 안부를 질문합니다. 그리고 아히마아스는 압살롬에 관한 사실을 ‘크게 소동하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이미 요압이 염려했던 것으로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로의 아픔을 전달해야 하는 부담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압살롬에 대한 보고는 결코 왕과 모든 신하들에게 있어 즐거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왕으로서 국가의 안전과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다윗의 관심은 오로지 배반한 아들에게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구스 사람의 보고(31-32) 요압이 이방인이었던 구스인을 사용한 이유를 본절에서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가 본문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데 사용된 것을 보면 그는 노예이거나 천한 사람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요압은 구스인을 보면서 좋지 않은 예감을 가짐으로 직접적인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 추측대로 구스인은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란 대답으로 인해 왕의 마음을 매우 슬프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대답은 전혀 전쟁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솔한 대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스인은 이 전쟁과 왕의 심정을 이해할만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습니다.

다윗의 슬픔(33)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대표가 자식의 죽음만 생각하고 한없이 슬퍼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묵상도우미

심히 아파(33) 떨다, 전율하다는 뜻임.

“죄는 사람이 짓고 용서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아직 권하지 못한 사람이 주변에 있습니까?


기독교인이 된 식인종
영국의 한 백작이 오지의 어느 섬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수개월 전에 그 섬의 추장이 기독교인이 된 것을 알고 추장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위대한 추장이지만 선교사들의 말에 넘어갔다는 것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오. 요즘 같은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이 어디 있소? 이렇게 사람들은 자유로워지는데 오히려 당신은 그렇지 않군요.” 그러자 추장은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글쎄요. 당신은 내가 기독교인이 된 것을 감사해야 될걸요? 만일 지금 내가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당신을 맛있게 요리해 먹었을 것이요.” 기독교인이 된 증거는 변화된 삶입니다. 단정하고 의롭고 선하게 변화된 삶이 있을 때 참 기독교인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