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 천국보다 낯선 이름
예술영화시장 위축, 장기적이고 정책적인 대안은 있는가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랭킹 10위에 오를 만큼 한국인의 영화광 취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이는 한국을 세계의 주요 영화시장의 하나로 만들었다.” 96년 2월에 열린 베를린영화제에서 발행된 <무빙 픽쳐스>는 <희생>의 한국 흥행실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논평을 실었다. 사실 한국은 세계에서 <희생>의 관객을 가장 많이 동원한 나라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쥐고 있다. 그때만 해도 국내 영화시장에 찾아온 예술영화 바람은 파죽지세를 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예술영화 시장은 죽었다!’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할리우드 반대편의 예술영화, 예술영화시장
예술영화라는 말은 널리 쓰이긴 하지만 어떤 영화가 예술영화인지를 말하는 건 쉽지 않다. 예술영화=작가영화라는 등식을 정립한 프랑스 뉴웨이브 비평가들이 당대 최고의 상업영화 감독이었던 알프레드 히치콕에서 작가를 발견했듯, 특정 연구가가 예술영화로 보기 힘든 <타이타닉>에서 작가성을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술영화는 작품의 예술성이라는 절대적 기준에 의해서보다는 할리우드영화의 상대어로 쓰인다. 오늘의 영화들은 대중영화를 대표하는 할리우드영화 혹은 할리우드적 영화와, 그에 상반되는 미학적 기준을 택하는 영화들이 경향적으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비할리우드적인 소재와 스타일 및 형식을 택하는 영화들이 흔히 예술영화로 불리고 있는 셈이다. <영화사전>에서 수잔 헤이워드는 '영웅 부재', '불확실한 주체성', '시간과 공간의 불안전한 구성' 등을 예술영화의 특징으로 열거하고 있다. 70년대 중반 블록버스터 전략을 택한 이래 할리우드 영화의 성격이 전시대에 비해 훨씬 단순화, 보수화하면서 예술영화의 반할리우드적 성격은 더욱 강하게 부각돼왔다. 헤이워드는 이 기준에 따라 유럽의 작가영화 뿐만 아니라 미국의 언더그라운드영화나 퀴어영화도 예술영화의 범주에 넣고 있다.
예술영화나 예술영화시장의 존재 이유를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할리우드에 우리 시장을 내주지 말자는 민족주의적 논리와는 별개로 할리우드영화 혹은 유사할리우드만으로 이루어진 영화문화의 일원화를 경계한다는 의미다. 70, 80년대의 문화의 암흑기를 거치며 거의 할리우드영화와 홍콩영화로만 채워졌던 우리 영화문화에서 90년대 중반에 불어닥친 예술영화 바람은 그런 면에서 확실히 하나의 사건이 될만 했다. 그러나 몇년간 팽창일로를 걷던 예술영화 시장이 지난해 들어 갑자기 위축되면서 우리 영화문화의 앞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다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예술영화, 줄어드는 관객
지난해 예술영화는 많은 관객을 잃었다. 대략 추산해 보면 96년 80만명에 이르던 것이 97년에는 65만명으로 줄었고, 98년에는 여기서 다시 20만명이 빠진다. 98년 총 영화관객수가 전년에 비해 43만명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감소폭은 더욱 확연하다. 국내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인 동숭씨네마텍을 놓고 보아도 97년에 비해 관객수가 24%나 감소했다. 이로 인해 동숭씨네마텍은 개관 이래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예술영화 시장의 위축은 수입외화 편수의 급감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해 수입외화는 305편으로 96년 378편, 97년 431편보다 격감했다. 외화수입 감소는 환율 상승과 경제위기로 수입가격과 배급·마케팅 비용이 다함께 상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초부터 대기업들이 비디오 선수금을 없애면서 수입사의 운영이 더욱 힘들어졌다. 비디오 판권을 미리 팔아서 수입가를 지불하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95년 후반에 예술영화 수입·배급에 나섰던 수입업체들이 예술영화 수입을 접었다. 눈에 띄게 성공한 영화가 없는 것도 예술영화 시장을 한결 초라해보이게 했다. 지난해에는 <희생>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안개 속의 풍경>에 비견할 만한 화제작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국내에서 예술영화 수입·배급을 주도한 백두대간이 지난해 개봉작을 대폭 줄인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해마다 10편 이상의 예술영화를 배급해온 백두대간은 한국영화 제작에 힘을 쏟느라 외화배급을 4편으로 줄였다. 영화제의 융성도 또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동숭씨네마텍의 한 관계자는 “이미 영화제에서 본 관객이 많기 때문에 막상 영화를 개봉했을 때는 관객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난 한해의 결과를 두고 예술영화 시장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단견이다. 예술영화 시장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영화산업과 문화구조 전반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예술영화 시장은 한국에서 소수문화의 미천한 지위와 부박한 영상문화, 문화정책의 왜곡 등을 반성해볼 하나의 고리가 됨직하다. 거꾸로 말해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야 예술영화의 장래를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창대한 시작은 거품이었나
한국에서 예술영화는 몇몇 수입업자와 극장주에 의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수입사로는 백두대간, 극장으로는 동숭씨네마텍과 코아아트홀이 의기투합해 95년부터 예술영화를 극장에 풀기 시작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희생>은 관객이 천명도 안 들리라던 충무로의 예상을 깨고 2만5천명의 관객을 불러모았으며, 95년 11월에 문을 연 동숭씨네마텍의 개관작 <천국보다 낯선>의 좌석 점유율도 5주 내내 50%를 웃돌았다. 거듭된 복제로 화면이 문드러진 해적판 비디오로 새로운 영화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던 청년들의 발길이 극장을 향했다. 언론에서는 예술영화 흥행을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주목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면서 이 문화현상은 짧은 유행처럼 갑자기 왜소해져버린 것이다. 과연 거품이고 유행이었을 뿐일까.
예술영화의 배급은 문화적 사명감으로 무장한 한두사람의 의지로 될 일이 아니다. 예술영화의 지분이 미약하기로는 영화 선진국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나름의 배급망을 갖추고 있다. 반면 국내에는 예술영화의 유통·배급망이 전무하다. 그러다보니 예술영화도 일반 상업영화와 똑같은 배급 경로를 밟을 수밖에 없다. <체리향기>가 <타이타닉>이나 <쥬라기 공원>과 나란히 경쟁하는 형국이다. ‘크기’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수천만원의 마케팅·배급 비용이 들어가기는 예술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고도 비디오시장에서는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이며, TV방송 판권을 팔기도 어렵다. 그래서 설령 공짜에 가깝게 영화를 수입해도 적자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영화를 수입하고도 배급비용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는 일도 있다.
그럼에도 일부 수입업자는 그저 돈벌 욕심으로 예술영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들에게 예술영화는 대기업이 미처 눈길을 보내지 않은 ‘값싼 영화’이거나 떼돈을 챙겨줄 ‘행운의 주사위’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특정영화를 둘러싸고 여러 수입사가 경쟁을 벌이다 턱없이 수입가를 부풀리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렇게 들여온 영화들은 상업적 유통망을 타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연말에 개봉한 일본영화 <하나비>가 대표적인 사례. 이 영화는 예상을 깨고 5만명(영화사 추산)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예술영화 수입업자들은 이를 두고 실패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하나비>를 할리우드영화처럼 십수개의 극장에 일제히 개봉해놓고 수십만의 관객이 들기를 기대한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레퍼토리극장 오즈의 개관을 앞둔 이황림 감독은 같은 이유에서 <카게무샤>의 흥행 부진을 설명한다. “<카게무샤>는 서울극장에서 개봉될 만한 영화가 아니다. 스필버그, 카메론 영화만큼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2만∼3만명에 만족할 영화였다”라는 것이다. 지극히 상업적인 목적에서 예술영화에 뛰어들었다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수입업자들은 이내 예술영화에서 손을 뗀다. 최근 들어 예술영화 수입 편수가 줄어든 원인이기도 하다.
예술영화 개봉은 이벤트?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예술영화를 응원하지도 않는다. 정부의 지원책은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해 문예진흥기금을 환급하는 것 정도인데, 동숭씨네마텍이 유일하게 이 혜택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정부는 한국영화 제작지원을 확대했지만, 예술영화를 소개할 문화적 인프라 구축에는 관심이 없다. 비영리를 목적으로 16mm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에도 심의와 심의료를 면제받지 못한다. 지난해 동숭아트센터가 기획한 누벨바그 40주년 기념영화제에서 상영된 16mm영화에 대해서도 10분당 2만원의 심의료를 지불됐다. 기껏해야 2천∼3천명의 관객을 염두에 둔 소규모 영화제는 심의료만도 큰 부담이다.
토양이 척박하니 예술영화 관객인들 제대로 길러질 리 없다. 문화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한 상황에서 예술영화 개봉은 차라리 ‘이벤트’에 가깝다. 그러니까 예술영화에 몰린 관객의 상당수는 낯설고 새로운 이벤트에 대한 호기심에서 극장을 찾은 것이다. 이손기획의 손주연 실장은 마니아층을 5천∼8천명으로 어림잡았다. 흥미롭게도 이 수치는 바닥에 닿았다고 보이는 동숭씨네마텍의 작품별 관객수 5천∼6천명(3주 상영 기준)과 대략 일치한다. 이것이 ‘거품’이 빠진 예술영화 관객수라고 할 만하다. 이벤트에 끌렸던 나머지 관객은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자 발길을 돌렸다.
이렇듯 열악한 상황에서 다행스러운 일은 예술영화 소개에 열을 올리는 영화인들이 여전히 분주히 뛰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객운동을 주도해온 백두대간은 올해 10여편의 영화를 배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술영화 수입이 감소하자 동숭씨네마텍은 직접 영화를 수입·배급할 계획을 세웠다. 당분간은 마케팅 노하우의 한계로 한해 2편에 만족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수입편수를 늘려갈 생각이다. 계획대로라면 동숭씨네마텍은 첫번째로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사랑>을 개봉할 터인데, 이 영화는 프랑스·일본 합작영화라는 이유로 심의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또한 동숭은 ‘네오리얼리즘 영화제’를 비롯해 여러가지 소규모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3월27일에 선뵈는 레퍼토리 극장 ‘오즈’의 두개관 가운데 220석짜리 아트관에서는 세계영화사에 한획을 그은 고전들과 일본 거장들의 영화가 상영된다. 특히 오즈는 회원제와 전국 체인으로 운영될 예정이어서 주목을 끄는데, 이는 일본이나 서구에서 예술영화를 배급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황림 감독은 “서울에서 2만∼3만명이 들어주고 지방 투어 상영을 한다면 예술영화도 충분히 상업적인 가능성이 있다”라고 내다봤다. 신생영화사 미로비전은 내년에 광화문 네거리 근처에 예술영화전용관을 개관한다.
영화는 상품이자 예술
기실, 한두편의 예술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말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예술영화가 뿌리내릴 문화적 토양을 마련하는 일이다. 영화는 상품이면서 예술이기도 하다. <쉬리> 같은 영화로 시장의 규모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술영화의 꾸준한 배급으로 영화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풍요로운 영화문화는 뛰어난 영화인과 탁월한 비평가의 모태다.
이유란 기자
'기타2 >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는영화다ㆍ테이큰 대박에도 빈손 (0) | 2009.02.11 |
---|---|
외화 수입에 관한 잡담 하나 (0) | 2009.02.11 |
수입 배급과 기획 제작 (0) | 2009.02.11 |
[콘텐츠학개론]영상물 수입 통관 절차 요약-외화수입에서 배급까지 (0) | 2009.02.11 |
`영화 수입 기획자’ (0) | 2009.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