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바울서신

로마서 요약 후반부

은바리라이프 2009. 1. 23. 16:54

로마서 요약 후반부


하나님의 의와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9:1-11:36)

1.하나님의 의는 이스라엘의 불신과 모순되지 않음

1)이스라엘을 위한 근심

하나님의 의와 이스라엘의 불신의 관계를 논하기 전,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구원문제에 관심이 있음을 알렸다. 바울은 복음 전도자이면서 애국자였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특권적인 선민을 뜻한다. 이스라엘은 특권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 훌륭한 조상들이 있었고 그리스도도 이스라엘인이다.

바울이 근심하는 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받은 이같은 특권들 때문이다.

 

2)약속의 자녀만이 진정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던 약속은 어떻게 되는가? 약속이 폐하여 지는가? 바울은 단연코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있으며, 야곱의 자손 전부가 선민이 아니라, 단지 택함받은 자만이 진정한 이스라엘, 진정한 선민이다. 남은 자가 돌아 오리라.(사7:3 등)

 

3)약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짐

에서와 야곱은 같은 부모의 자식이지만 하나님의 취사선택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니 인간이 시비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은 ‘긍휼히 여기는 자’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4)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이 시비할 사항이 못됨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자인 하나님께 말대꾸를 할 수 없다. 토기장이는 같은 재료로 어떤 것은 품위있게, 어떤 것은 천하게 만들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 이처럼 하나님도 자신의 통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속사의 과정에서 인간을 다양한 용도로 자유롭게 지명하신다. 인간은 오직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 아니라 영광받기로 예비된 ‘긍휼의 그릇’이 되길 소망할 뿐이다.


5)부르심을 입은 자들만이 약속의 자녀임

이사야는 유대인 중에서도 구원받지 못할 자가 있다고 했고, 호세아는 이방인 세계에도 구원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듯, 이스라엘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구원은 타락의 풍조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견지한 소수의 ‘남은 자’에 국한될 것이다.

   

6)믿음에서 난 의는 건재함

이스라엘은 의를 구했으나 의에 이르지 못했고, 이방인은 의를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의를 얻었다. 이방인들이 의를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방법인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새 언약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오해하여 새 언약, 곧 그리스도는 저들에게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이 됐다. 그러나 이를 바르게 깨달아 아는 이들에게 그 언약은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돌이 됐다.

2.이스라엘의 거부는 이스라엘의 의도적인 불순종에 기인한 것임(10:1-21)

1)하나님의 의가 지니고 있는 인간의 책임과 자유성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데 유대인은 이를 알지 못했다. 유대인은 계시에 의한 완전한 지식이 아닌, 인간적이고 유전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골몰함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을 저질렀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이루었으므로 인간은 그저 적용만 하면 된다. 모세가 말한 율법의 용이함은 믿음에서 난 의의 용이함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예수는 실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했다. 우리는 마음의 믿음과 입의 시인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됐다.


2)이스라엘의 의도적인 불순종

하나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우상을 좇는 이스라엘에게 많은 예언자를 보내 ‘내게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셨다. 그러나 유대인의 불신앙은 무지 탓이 아니라 불순종 때문이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는 노력을 태만히 한 유대인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믿을 수 있는데도 믿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듣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는 유능한 종들이 있었지만 듣지 않았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의도적인 불순종은 이미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하신 바다.    

3.이스라엘의 거부는 부분적이며 일시적

1)이스라엘의 거부는 부분적임

유대인이 예수를 죽인 죄로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 위에 머물러 있지만, 역시 유대인인 바울을 들어 쓰시는 것을 볼 때 유대인이 완전히 버림받지는 않았다. 엘리아 때에 ‘남은 자’ 7000명이 있었던 것처럼 유대인 중에도 구원 받은 자가 있다.


2)이스라엘의 거부는 일시적임

이스라엘이 실패했다 해도 그 실패는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실패이며, 회복의 가망이 있는 실패다.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라도 구원을 거부한 것은 구원이 이방인에게 향하게 하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불신을 전용하여 이방 전도의 기회로 삼고, 이방인의 신앙을 전용하여 유대 전도의 기회로 삼으신다.

유대인이 버림 당함으로 이방인의 구원이 초래되었다면, 유대인이 다시 회복됨으로는 마지막 날의 부활 밖에 초래될 것이 없을 것이다. 이방인의 충만, 유대인의 충만은 합하여 세상의 화목을 이룩하고, 그리하여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3)택함받은 이스라엘의 회복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 선택을 받은 민족이다.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 번 착수하신 일은 끝까지 이루신다. 조상들로 말미암아 언약의 자손된 이스라엘은 종래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이상근).

이방인도 한 때 불순종하다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되고, 유대인도 지금 불순종 하지만 장차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순종치 아니하다가 긍휼을 받게 되는 셈이다.


4)송영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를 논하던 바울은 드디어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 앞에 찬탄과 감격을 금치 못한다. 구원사의 절정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박한 영광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판단의 밑바닥을 측량할 수 없고, 방법의 끝을 더듬을 수도 없다.

하나님은 만물의 기원, 경로, 목표가 되시며, 그는 실로 만물의 근원이며, 그 생성 발전의 주관자 되시며, 그 궁극적 목적이시다. 부요와 지혜와 지식의 깊음은 영원토록 하나님만의 것이며 하나님은 영광 중에 계신다.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12:1-15:13)

1.일반적 권면(12:1-13:14)

1)서론

그리스도 윤리의 대장정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것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것’ ‘영을 좇아 행함’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함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듯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뜻’대로 사는 것이다.

2)교회생활에서의 사회적 윤리

교회의 구성원들이 복음의 빛 아래에서, 동료 신자에 대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며, 각자 맡은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받은 하나님의 은사에 대해서 ‘믿음의 분량대로’ 자신을 온전히 드려야 한다.    

3)인간관계에서의 사회적 대원리

모든 은사의 활용은 사랑의 동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은 기독교 윤리의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리킨다. 이는 신적, 하향적, 자기희생적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엔 거짓이 없다. 하나님이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원수에게조차 이런 ‘거짓 없는 사랑’을 해야 한다.

4)국가에 대한 의무

그리스도인은 천국 시민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 시민이다. 그는 현세를 초월해 있으면서 현세에 속해 있다. 내세는 현세 속에 이미 와 있고, 현세를 통과한 후에야 온전한 내세를 맞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현세를 경멸하거나 도피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도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순복해야 하며, 국가를 사랑해야 한다. 국가가 잘못한 경우에는 선으로 악을 이기듯 선한 방법으로 국가에 대처해야 한다.     

5)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율법의 성취로서의 이웃사랑

이 세상에서 어떤 빚도 지면 안되지만 사랑의 빚을 지우고 또 지는 일은 아무리 많이 해도 좋은 일이다. 사랑의 빚은 남을 용서할 때 생겨나며 ‘피차 사랑의 빚은 지라’는 말은 ‘피차 용서하는 일을 많이 하라’는 말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므로, 사랑하게 되면 율법을 다 이룬 자가 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바로 ‘사랑’이다.


6)재림에 대비한 각성

‘자다가 깰 때’(13:11). ‘잠’은 헬라 철학에서 이성의 거절, 무활동, 약함을 뜻하며, 유대 사회에서도 부정적인 것으로 여겼다. 현세와 육신의 일에 도취되어 신령한 일을 등한히 하는 상태다. 따라서 ‘깸’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재림을 대비하며 믿음과 행함에 충실한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낮이 이미 이르렀으므로 그리스도인은 ‘빛의 갑옷’을 입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단정히 낮의 행실을 행해야 한다.   


2.특수한 권면

1)서로 비판치 말 것

당시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 간에 서로 갈등이 심화되어 하나 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우상숭배에 바쳐진 고기를 예로 들어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치 말며, 먹는 자는 먹지 못하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 것을 권면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라’(14:3). 생사의 목적이 주께 있을 때는 먹어도 안 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심판과 결산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2)갈등과 차이를 사랑으로 해결할 것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서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한다. 둘 중 어느 하나에만 치중하면 병적인 것이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충실하고 사람과의 관계에 등한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나 모두 올바른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므로 신자가 힘쓸 일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이다.

3)그리스도의 본

그리스도는 남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아니한 삶의 모범이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한, 자기 비하와 희생, 절제의 최대 본이시다.


결어(15:14-16:27)

1.회고

‘선함’과 ‘지식’. 영적 성숙의 2대 요소다. 선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며 지식 없는 선은 악에게 이용당한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기 전, 이미 영적으로 높이 성숙해 있었다. 로마 교회가 잘 하고 있지만 더 잘하도록 바울은 편지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있다. 

바울은 또,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왕래하며 복음을 두루 전한 것을 회고했다.


2.전망

바울이 로마에 그토록 가고자 한 것은 서바나 전도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서바나는 오늘날 스페인으로 당시 로마 세계에서 땅 끝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바울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는 주의 명령을 실행코자 한 것이다.

바울은 서바나로 가는 길에 로마에 들러 서로 은혜를 나눈 후 피차 만족과 위로를 받고자 했으며, 로마 교회를 서바나 전도의 선교 기지로 삼아 물질적인 원조도 받고자 했다.


3.기도의 부탁

바울은 기도를 일종의 경기나 싸움으로 생각했다. 얍복강변에서의 야곱과 천사의 씨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의 고뇌가 배경이 될 수 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신자들이 열심과 절박함과 인내심을 갖고 바울의 기도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4.평강의 기원(15:33)

평강은 마지막 구원을 포함하는 모든 참된 축복을 가리킨다. 특히 사람 사이의 화평을 의도하고 있는데, 바울은 로마교회 내에서 예상되는 어떤 분규를 염려하면서 ‘평강의 하나님’의 은총을 특별히 기원하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은 참된 축복의 근원이시며, 시혜자로서의 하나님, 끝까지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5.뵈뵈의 천거(16:1-2)

바울은 문안에 앞서 겐그레아 교회의 뵈뵈를 추천한다. 뵈뵈는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 성도의 이름이다. 바울이 뵈뵈를 추천하는 이유는 그녀가 본서의 전달자이기 때문이며 이 부분은 뵈뵈를 위한 일종의 추천장이다. 겐그레아는 고린도 동쪽 9마일 지점에 있는 고린도의 외항이다. 


6.문안

바울은 그의 편지의 상례를 따라 늘 수신자들에게 문안 인사를 했다. 그러나 이 로마서의 경우, 바울 자신이 문안하기보다 공동체에게 서로 문안하라고 한다. 바울이 열거하는 이름은 무려 26명이나 된다. 제일 먼저 소개된 이름은 브리스가라는 여성이며 아시아의 첫 신자 에배네도, 헤롯 가문과 관련된 헤로디아, 구레네 시몬의 아들 루포 등의 이름이 보인다.

‘거룩한 입맞춤’. 그리스도인의 입맞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 의식을 나타내는 예배의 일부로 행하는 의식이다. 입맞춤 자체는 원래 동방 풍습이며 교회에 들어와 그리스도인의 관습이 되고, 더 나아가 서양 사회의 관습이 됐다. 

7.거짓 스승에 대한 경고

바울은 문안을 하다가 갑자기 거짓 스승을 경고한다. 거짓 스승은 성도를 미혹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도를 참소하며, 교회 내에 분쟁을 일으키고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는 자로 사단의 앞잡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성도들의 발 아래서 상하게 될 존재이다.

8.축도

바울 자신이 친필로 하는 마지막 축도이다. 당시 예배는 일반적으로 축도로 마쳤고, 바울은 자신의 편지가 예배 시에 읽혀질 것을 기대했다.

9.동역자들을 문안

바울과 함께 있는 동역자들이 문안하는 대목이다.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으로 바울의 충실한 동반자, 믿음의 아들이다.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빌레몬서 등 여섯 편지에서 바울의 공동송신자로 등장했다. 그 외 로마서의 대서자 더디오, 누기오, 야손,  가이오 등이 문안했다. 


10.송영

이 송영은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송영의 위치가 사본에 따라 각각 다르고, 바울이 늘 축도로 글을 마치는데 비해 송영으로 마치면서 그 내용이 매우 길고 장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송영의 내용은 본서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바울은 지금까지의 복음에 대한 모든 주장을 이 송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함으로 마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