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강의에서,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세상 권세와 의식주(衣食住) 문제, 곧 ‘돈’과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의식주도, 세상 권세도 버리고 죄 짓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간단하게 답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먹고, 자고, 입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어느 사람도, 무인도(無人島)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사회적 경제수단인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육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육신의 욕심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인간이 모든 생존여건으로부터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오직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는 자연과학적 지식이나, 사회현상이나 인생에 대한 깨달음(覺)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8)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죄를 짓지 않으면, 인간은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從)”(요 8:34)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최초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고 사탄의 종, 곧 죄와 사망의 종이 된 것과 반대로,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죄를 범하지 않고,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죄를 짓지 않고 살수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 세상 인간 중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즉 이 세상에 의인(義人)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9-1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갚아주시면, 우리는 비록 의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죄의 값을 모두 지불했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값없이 의롭게 되는 <칭의론>(稱義論) 입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3절 이하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필자가 다시 풀어서 기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비록 죄를 범하여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 있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도 못하고, 영생하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고난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 대신 죄 값을 지불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고 인정받게 되어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칭의,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인정받은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 때만 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더불어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목 박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 하게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그래서 예수님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 눌린 자를 자유롭게”(눅 4:18b)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음을 증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킨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인류를 죄와 사망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신앙은 해방, 곧 자유를 고대하는 신앙입니다.(제9-2강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