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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과 십일조

은바리라이프 2009. 1. 2. 16:38


기독교계에서 가장 잘못 인식되어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십일조와 헌금에 관한 것이다.뿐만 아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교회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 가는데에 있어서 십일조와 헌금에 대한 부분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십일조가 무엇이며 올바른 헌금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1.십일조의 유래

최초의 십일조는 율법 이전에 살았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소돔성이 전쟁으로 망하고 거기에 살고 있던 조카 롯이 잡혀가게 되자 롯을 구하려고 318명의 가신(家臣)을 데리고 가서 롯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서 떡과 포도주를 받고 축복을 받은 후에 아브라함이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던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세기 14장 18∼20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 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브리서 7장 1∼3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드렸던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감사의 헌금을 드리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데, 여기서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히 7 : 3), 떡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타내고(마 26 : 26∼28),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위해 복을 빈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심(엡 1 : 3)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아브라함이 드렸던 최초의 십일조는 율법에 의해서 드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자기를 이기게 하심과 멜기세덱으로부터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함으로 드려진 것이다. 즉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너 복을 받았으니 내게 십분의 일을 바쳐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아브라함은 그의 축복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자발적으로 드렸던 것이다. 여기서 십(10)은 전체를 의미하며 그 중의 하나(1)를 드림으로써 전체가 모두 하나님의 것인데 그중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감사를 표시한다는 의미가 십일조의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드리는 십일조나 헌금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헌금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드려지지 않고 습관적으로 드려지는 것은 유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초의 십일조가 축복을 받기 위해 드려진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은 사람에 의하여 감사함으로 드려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큰 축복을 받았기에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야곱도 벧엘에서 돌단을 쌓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 : 22)고 십일조를 드릴 것을 서원한 사실이 있다.

야곱은 그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도주하던 중 생명의 위협을 받는 절박한 상황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언약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위로와 약속에 감사하여 십일조로 자신의 감사를 표시하였던 것이다.

율법이 있기 400년 전에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나 그의 손자 야곱이 벧엘에서 서원한 십일조의 의미는 모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경험한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십분의 일을 드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리기 전에 먼저 당신은 구원받은자인가?  가 전제되어야 한다.또한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2.십일조의 용도


하나님은 선민인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임을 구별하는 언약으로 율법을 주셨다.(느9 : 13∼14) 또한 그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게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는 토지의 소유자이시며 땅의 소산을 주시는 분임을 알게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있음을 상기시키게 하였던던 것이다."땅의 십분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 27 : 30)

그런데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에는 기업이 나누어졌지만 성막에서 제사의 일을 담당한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이 주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그들의 기업이었다. 그래서 11지파가 각자 십분의 일을 레위인들에 주어 그들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하게 하였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 자손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의 영원한 율례라 【민수기 18장 21∼23절】

또 제사장의 몫은 레위인에게 주어진 것에서의 십분의 일을 주어 그들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다. "이스라엘에게 받은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 돌리되...."(민 18 : 28)

따라서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로 생활하면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십일조는 매년 드린 것뿐만 아니라 매 삼년 끝에도 소산의 십분의 일을 내어 레위인을 포함한 고아와 과부를 돕게 하였고 객들에게도 주어졌다. 이처럼 십일조의 쓰이는 용도는 대부분이 성전에서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일을 하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기업으로 주어졌고 구제하는 일에도 쓰여졌으며 십일조를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산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쳤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신명기 14장 28∼29절】

3.온전한 헌신에 실패한 이스라엘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죄악 가운데 행할 때에는 항상 주변나라에게 점령당하여 멸망하는 모습들을 보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므로 당연히 십일조를 드리지 않게 되었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 제사장들이 성전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고 육신의 살 길을 찾아갔기 때문에 백성들은 더욱 죄악 가운데 빠져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그 믿음이 회복될 때에는 먼저 레위인으로 제사장을 세우고 백성들로 하여금 십일조를 드리게 하여 마땅히 레위인들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전념케 하였다. 히스기야 왕 시대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할 때에 그리하였으며 (대하 29장∼31장),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70년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느헤미야 시대에는 성전 제사를 회복하고 레위인들로 성전의 일을 전념케 하기 위하여 백성들로 십일조를 드리게 하였다.

내가 또 알아 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내가 모든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뇨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그 처소를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느헤미야 13장 10∼12절】

구약 말라기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고 하셨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흠있는 것을 바치고 자신은 좋은 것을 취하는 생활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시는 것에 감사하는 생활에서 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말 1 : 8)

이러한 행위를 하나님은 사기를 치는 행위이며 저주를 받을 행위라 하였고,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말 1 : 14)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행위라고 책망하셨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의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장 8∼10절】

맹목적으로 십일조를 강요하려는 종교적인 사고로 이 말씀을 사용해서는 안되겠지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 버린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 자신들의 종교적인 노력으로 자기 의를 쌓아갔으나 그 역시 실패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헌금과 십일조를 드린 것에 대한 댓가로 재정적인 보상을 얻게 되리라는 기대로 드리는 종교적행위가 되어서는 안된다. 십일조는 율법의 요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보상에 대한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 드리거나 하나님이 상을 주시거나 벌을 주시기 때문에 십일조를 내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또한 십일조가 짐이되어서는 안된다. 은혜로 살아가는 이 시대에 율법적인 사고 방식으로 드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4.신약성경에 언급된 십일조


신약에서 십일조는 3번 언급되어 있다.
첫번째는 마태복음 23 : 23이며 이것의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11 : 42이다.
마태복음 23 : 23에서 우리는 그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이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식의 율법생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그들의 위선을 공격하셨음을 발견할 수 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 :23】

이것은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저버리고 외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으로 율법을 행한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말씀이다. 이는 율법은 형식과 내면이 일치되는 모습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두 번째는 누가복음 18 : 9∼14인데 두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소득의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믿는 바리새인보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세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함을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드렸던 율법으로서의 십일조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도구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셨으며 행위로 드리는 십일조와 같은 율법적인 제사보다는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순종을 원하셨던 것이다.

세 번째는 히 7 : 5∼24로 레위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바친 십일조는 상징적으로 레위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도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레위계통의 제사직분으로 온전함을 얻을 수 없기에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웠으므로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 없는 율법을 폐하고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구원에 이르게 된 경위를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은혜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율법의 요구로서의 십일조를 드리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이전의 아브라함과 야곱이 하였던 그 은혜의 십일조는 헌금의 참된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5.헌금의 의미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벧전 2 : 9)이며, 성도 자신이 먼저 드려져야 하는 산 제물(롬 12 : 1)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받는 분이 아니라 도리어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행 17 : 25)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려 오시지 않았고 섬기려 오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 : 45)

그러므로 헌금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의 축복을 받은 성도들이 그 몸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롬 12 : 2)

따라서 헌금(연보)의 진정한 의미는 내 소유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를 누리고 살면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에 드려져서 쓰이게 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유를 받으시기보다는 우리를 소유하셔서 하나님의 뜻에 쓰시기를 원하신다.

 
헌금에 대한 종교적인 기준은 무엇을 얼마나 드렸는가 하는 것이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외형적인 헌금의 종류나 액수를 보시기 보다는 얼마만큼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지를 우리들의 삶속에서 보고 계신다. 예수님은 종교적이고 습관적인 헌금보다는 구차한 중에 가진 것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믿음을 칭찬하셨다.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마가복음 12장 41∼44절】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은 성도들이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졌음을 나타내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헌금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삶을 진단해 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연보궤 앞에서 부자들과 과부의 연보를 보셨던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행하는 헌금에 대해서도 그 중심을 보고 계실 것이다.


6.헌금을 드리는 마음가짐


①헌금으로서의 십일조

 

그리스도인들의 헌금은 율법의 십일조에 매여서 드려져서는 안된다.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 이전에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그 감사함으로 십일조를 드렸던 것을 볼 때 확실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기쁨으로 십일조를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헌금하는 모습을 보면 십일조보다 더 많은 것을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보고 배웠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한 후부터 예루살렘에서 교회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 당시 그들은 복음이 전해짐과 동시에 복음전파를 위해 소유를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고 한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사도행전 2장 44∼45절】

사도행전의 복음의 역사를 보면서 그들의 소유를 팔아서 날마다 모이는데 (행 2 : 46)와 핍절한 사람이 없도록 (행 4 : 34) 구제하는 데에 사용했는데 이러한 때에 성도들은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 : 33) 고 되어있다.

사도들도 그 재물을 자신들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행 3 : 6) 그것을 맡아서 나눠주는 일을 하였고 후에는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을 전무하기 위하여 일곱 집사를 세워 구제하는 일을 전무하게 하였다. (행 6 : 1∼6)

초대교회 시대에 성령의 역사는 돈이 없어도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크게 하셨지만 성도들의 돈에 대한 가치를 세상에 욕심을 두지 않고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에 쓰이게 하심으로 더욱 믿음 안에서 부요하게 하시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으로 드려지는 헌금은 복음의 역사에 크게 쓰임을 받았지만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기 위하여 드리는 돈은 거절하였을 뿐 아니라 그러한 행위에는 파멸이 예고 되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사도행전 8장 18∼20절】

교회 시대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의 돈은 교회 안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살 수도 없을 뿐더러 돈으로 사려고 한다면 망하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돈으로 종교에서의 어떤 지위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돈으로 구원을 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②믿음으로 드려라.


헌금에 대한 실제적인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고린도후서 8∼9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아가야(고후 9 : 2)지역의 성도들의 헌금하는 믿음의 모습들을 소개하면서 헌금에 대한 믿음과 그 은혜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린도후서 8장 1∼5절】

이들은 오히려 극한 가난 가운데서 후한 연보를 하였는데, 이는 먼저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 연보를 하는 믿음의 행위가 은혜로운 것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고후 8 : 6),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고후 8 : 7)하였다. 연보가 은혜의 일이라 함은 믿음으로 행하여 질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누리게 되며 믿음을 행함으로 인하여 기쁨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으로 헌금의 목적인 성도를 섬기는 일에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헌금에 대하여 여유가 있고 불편함이 없을 때에 잘 드려지는 것인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환란의 많은 시련과 가난함 속에서 풍성한 연보가 되어졌음을 통하여(고후8 : 2) ,과부의 두 렙돈에 대한 교훈을 통하여(막12:41-44) 그리스도인들의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충만한 삶은 성도 개개인이 구원의 기쁨과 자신의 생활 가운데서 주님의 인도하시는 기쁨을 체험하며 영원한 천국의 소망에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의 믿음에서 부터 헌신은 자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③인색함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없는 것을 받으시지 않으시며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고후 8 : 12) 억지로 드리기를 원하시지도 않으신다.

" 이는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9장 6∼8절】

주님의 말씀처럼 돈을 사랑하여 마음이 빼앗기면 재물은"일만 악의 뿌리"(딤전 6 : 10)가 되며 "우상 숭배"(골 3 : 5)가 되지만 주님에게 소유된 우리의 신분을 분명히 알고 자신을 위하여 피 흘려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돈을 주님께 드릴 때에는 복음이 전해지는데 쓰여지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쓰여지며 영원한 하늘에 쌓아두는 믿음의 보화로 바꾸어지는 것이다.

환란의 많은 시련과 가난한 가운데서도 힘에 지나고 넘치도록 하나님의 뜻을 좇아 헌금한 믿음을 칭찬 하셨듯이 자신을 위하여 다 쓰고 나머지를 드리는 믿음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넉넉한 믿음을 주께서 칭찬하실 것이며 분명 그러한 성도에게는 풍성한 은혜가 넘치게 하실 것이다.

헌금의 방법들은 다양했음을 알 수 있는데 초대 교회에서처럼 일년 전부터 준비하여 드린 경우도 있으며 "매 주일 첫 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는대로 저축하여 두어서"(고전 16 : 2)라는 말씀처럼 일주일에 한번씩 드린 경우도 있다.

현 시대에는 한 달을 주기로 하여 생활이 되어지므로 한 달을 주기로 십일조를 하는 것이 합당하리라 여겨지며 특별한 경우 1년이나 아니면 그 이상을 예비하여 헌금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헌금을 할 때에 일반적인 종교에서는 헌금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며 또 경쟁이라도 시키듯이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그 이름들을 적어두고 하는데 이는 분명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며 그러한 행위를 하는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남을 입지 못하였다면 그 모든 행위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아도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두 렙돈을 연보한 과부를 칭찬하셨듯이 주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으로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마 6 : 4) 하는 것이 믿음을 보시는 주님 앞에서 행하는 참다운 헌금일 것이다.

④헌금을 드리는 장소


 
성도를 섬기는 일과 구제하는데 드려지는 헌금은 반드시 교회를 통하여 행하여지도록 하여야 한다. 초대 교회 시대에는 모든 헌금은 각자 개인이 쓴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이 그 헌금으로 핍절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여지도록 하였다.또 사도행전 6장에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구제에 누락되므로 문제가 되었기에 교회는 일곱 집사를 세워서 헌금을 관리하게 하였고 공평하게 구제하도록 일을 맡겼다고 되어있다.

또 고린도후서 8∼9장의 말씀도 헌금이 교회를 통하여 관리되고 쓰여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데,바울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선한 일을 하는데도 조심하기 위하여 헌금을 가지고 성도를 구제하러 가는 길에도 교회에서 택한 일꾼으로 하여금 그 일을 살피도록 동행하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헌금은 각 성도가 마음에 정한대로 믿음으로 하나님앞에 드리는 것이고, 교회는 그 헌금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일에 써야 할 것이다. 간혹 이러한 방법에 의하지 않고 자신이 정한 헌금에서 일부는 헌금하고 그 중 일부는 자신이 성도를 돕는데 쓰고 또 그 중 일부는 다른 작정된 일에 나눠 쓰는 모습은 올바른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헌금은 분명 교회를 통하여 관리되고 쓰여져야 하며 헌금이 아닌 명목으로 교회 안에서 작정되어진 돈들이 있다면 분명 헌금과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⑤진심으로 드려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분께서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가난한 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헌금을 드리지 않는다면 지역 교회들은 살아남을 수도, 잘 될 수 도 없을 것이다. 너무 많은 예물로 인해 그 일을 중단시킨 아름다운 이야기가 성경에는 기록되어(출 36 : 4∼7)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