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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에 빠진 한국, 범람하는 미신문화

은바리라이프 2009. 1. 2. 11:42

점에 빠진 한국, 범람하는 미신문화
   2008-01-16 13:19:06     
 교회안엔 점술신앙 … 두번 죽는 길 되고 있어

 

 지금 우리나라가 점에 빠져들고 있다. 연말연초에 신년운세를 보는 것은 물론 사소한 일에도 점을 보는 ‘점술중독’이 점차 늘고 있다. 최근 한 취업회사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심심할 때나(24%), 승진, 이직 등을 앞뒀을 때(18%), 미래가 불안할 때(10%) 등 수시로 점을 본다. 이제 점은 어디서나 쉽게 접할수 있다. 인터넷과 핸드폰, 전화운수 등을 포함한 전체 점술 온라인 서비스가 수만개에 달한다. 점집은 사주카페나 이동형부스로 변형돼 대로변 길거리로 나왔다. 과거엔 나이든 여성들이 주로 점을 보았지만 지금은 2,30대의 젊은층에까지 넓게 자리잡았다.

 

 사주나 궁합 등의 범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녀 연애법, 진로 가이드, 재테크 운세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사소한 부분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점술은 한국인의 일상생활처럼 되어가고 있다. 작년말 결혼정보회사(비에나래, 온리유, 12월 25-31일)가 초 결혼을 앞둔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점이 결혼행태까지 바꾸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혼의 35%가 “신년 결혼운세가 나쁘면 그해 결혼을 포기한다”고 답했다. 

 

 작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뉴욕타임스는 “IT강국인 한국에서 무속신앙이 부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군사정권하에서 무속인(무당)들은 ‘사기꾼’으로 몰려 시골로 쫓겨갔으나,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어 한국인들은 무속신앙을 한국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특히 “기독교 신자든 불교 신자든 가리지 않고 올해 같은 선거철에는 무속인과 점집을 찾는 정치인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차이나데일리는 한국의 점습관을 국민성에 빗대 함께 비꼬았다. “전세계에서 점을 보는 관습이 있지만 한국처럼 무슨 일만 생기면 점집으로 달려가지는 않는다”면서 “한국인들은 빨리빨리를 좋아해서 문제가 발생하면 빨리 해결하려 안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과거엔 미신으로 여기며 감추었지만 지금은 양지에 나와 점술 확산에 불을 붙였다. 이젠 제도권 교육의 영역으로까지 들어왔다. 동국대, 공주대, 경기대 등 전국 10여개 대학에 역술 관련 학과가 봇물 터지듯 개설되었다. 석박사 전문과정이 생기고 대학내의 사회교육원이나 평생교육원, 언론사와 백화점 부설 문화센터의 교양강좌까지 역술 공부는 이제 누구나 맘만 먹으면 바로 곁에서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점술인(역술인+무당) 수는 적게 잡아 40만명,많게는 50만명에 달한다. 19세 이상 성인인구 80명당 1명꼴이다. 국내 점술 산업 규모가 4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시장규모가 2조에 달한다며 점술의 확산에 놀라던 때가 불과 2년전 일이었다. 특히 오늘날 젊은이들이 점을 친다는 것은 극도의 혼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의 반증으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점술 의존은 지금의 불행을 운세나 남의 탓으로 돌리게 한다. 미래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는 의지 박약의 사회를 만든다. 전문가들은 “종교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점집 등이 번창하게 된다”며 “종교의 순기능이 활성화돼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어떤가? 교인도 마찬가지로 신앙이 있노라 자랑하면서 점은 점대로 치는 교인들이 늘고 있다. 교인이 하나님과 점술을 동시에 의지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복신앙은 교회안에 번지는 대표적 점술신앙이다. 한국갤럽이 2005년 발표한 종교의식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기독교인들의 60% 이상이 마음의 위로나 복을 받기 위해 교회에 다닌다고 답했다. 삶의 의미나(6.7%)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22.7%)라는 응답은 소수에 불과했다.

 

 교회 내에 점술신앙의 행태도 만연하고 있다. 최근엔 성경을 점치기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송구영신예배에서 ‘하나님이 새해에 나에게 주신 말씀’을 뽑기하는 교회들이 있다 좋은구절, 복을 준다는 구절들을 추려놓고 그 안에서 뽑기를 한다. 어떤 교회는 아예 성경 뽑기통 앞에 헌금통을 놔두고 ‘새해소원 기도제목’을 기록하게 한 헌금봉투를 나눠 준다.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았던 과거 카톨릭과 지금 성경구절을 파는 교회는 다르지 않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우리의 삶을 왜곡시키며 우리를 진정한 신앙의 길에서 이탈시킨다.

 

 우리의 삶을 죽이고 영혼을 죽이는 두번 죽는 길이 된다. 북이스라엘이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노를 격발케 하였으므로”(왕하  17:17) 멸망하고야 말았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삶과 역사에 대한 주권자가 되신다. 교회와 민족이 살기 위해서 먼저 교회에 물든 점술신앙을 스스로 벗어내고 현 세태와 같이 사술에 물든 거짓된 사회의 구원자 역할을 능히 할수 있어야 한다(행 19:19,20).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복신앙, 점술신앙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첫째, 구속사의 줄기 안에서 성경을 보자. 그 속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경륜과 섭리로 역사하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원칙을 발견하고, 어떻게 진리안에 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말씀으로 우리 삶의 지표를 삼아야 하는 것이 성경이다.

 

 성경 속의 예언이란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미래에 관한 경고며 심판이며 또는 희망이며 은혜이다. 지금의 현실에 발딛고 있는 나의 행위와 아무 상관없이 어떤 신이 일방적으로 내 미래를 결정하거나 복을 주거나 화를 주는 점술적 예언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기 위한 것이지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며 예언의 해답은 철저히 말씀속에 있다.

 

 둘째, 신앙인은 철저히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한분만 의지해야 한다.

 

 세째, 오직 미래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의해서 섭리됨을 믿자. 신앙의 궁극적 목표를 회복하자. 우리 신앙의 이유는 현세의 축복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을 가진자는 고난이 있지만 불안하지 않다. 없는 자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교회는 영혼의 친구며 구원의 주를 바라보게 하는 영적 공동체임을 잊지 말자.

 

 이제 우리는 오직 말씀과 구원의 믿음으로 무장해야 한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