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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비공개| 08.07.08 15:09 1

은바리라이프 2008. 12. 4. 19:25

새벽기도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비공개
| 08.07.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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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내용

외국에서도 새벽에 기도를 하는 종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처럼 집단적으로 새벽에 기도를 하는 모임을 갖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께서도 일찍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기도를 했다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길선주목사가 처음으로 시도를 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새벽기도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1. 한국 새벽기도의 유래
1906년 가을, ‘길선주’장로의 주도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하였다. 이 새벽기도회는 1907년 평양에서 촉발된 한국기독교 부흥의 시발점이 되었다. 길선주장로는 국가가 어려운 상황(당시 일제 강점기)에 놓여 있는 것을 걱정하여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였고, 이에 많은 교인들이 호응하여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300-500명에 이르는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길장로는 새벽기도회의 규모가 커지자 당회에 정식허가를 얻어 공식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 성령의 불이 떨어짐으로 많은 사람들이 통회자복하고 예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이는 영국의 저명한 신문인 [더 타임즈(The Times)]에 기사화가 될 정도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2. 길선주목사(1869. 3. 15.-1936.11.26)
‘조선기독교의 아버지’ 또는 ‘가장 위대한 한국개신교 인물 중에 한 사람'인 [길선주(吉善宙)] 목사는 평안북도 안주에서 길봉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일찍 학문을 시작하였고, 열 한 살이 되었을 때에 결혼하였다.
길선주는 한 때 병을 얻게 되어, 병도 고치고 도(道)도 닦을 겸, 한국 무교종파 중 하나인 관성교(關聖敎)에 심취하였으나 어떤 영적 만족도 얻을 수 없게 되자 21세부터 선도(仙道)수련에 몰두하였다.
길선주의 종교편력은 다양했지만, 영적인 갈증은 점차 더해져 갔다. 1893년 미국선교사 마펫(Samuel A. Moffett)이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길선주의 친구 김종섭이 마펫과 교분을 가지면서 길선주에게 여러 가지 기독교 교리서을 가져다 주었다. 학문적 탐구심이 강한 길선주는 그 책들을 탐독하면서 차차 기독교 진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를 기독교로 이끈 결정적인 책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었다.
그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알기 위해 기도를 하는 중에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1897년(29세) 장대현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면, 그래함 리(Graham Lee)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1902년에 장로로 임명되었으며 190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고 1907년 졸업하여 평양장대현교회의 목사로 임명되었다.
그가 주도한 새벽기도회는 이후 한국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사실 그가 새벽 기도회를 시작한 것은 그의 종교편력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전통무교에서 새벽에 수련시간을 갖던 것에 익숙하였던 그는 기독교로 귀의한 이후에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였다. 그러나 이전과 명확히 구별되는 점은 이제 드리는 그의 기도는 정확히 예배를 받으실 분을 향한 것이었다.

3. 복음서에 나타난 새벽기도

흔히 새벽기도는 한국교회의 특징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이 전통은 세계교회에서 한국교회를 구별되는 특징임에는 틀림없지만, 실제적인 새벽기도의 기원은 예수님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마가복음 1:35).

-세계기독교역사상 유래없는 한국교회의 부흥의 원인중 하나가 '새벽기도'로 분석되자, 다른 나라교회에서도 새벽기도회를 여는 곳이 있으며, 현재 한국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기 때문에 새벽기도는 더 이상 한국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새벽기도의 시초는 길선주 목사님이 불교의 새벽예불을 따서 만든 것은 좀 알아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 한국적 풍속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는 개인적으로 원하는 사람들이 따로 이른 아침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건 있어도 공적으로 하는 새벽기도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외국의 신앙거장의 서적을 봐도 새벽기도를 잘 해야 된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새벽에 기도했다는 표현도 마가복음 1:35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 시간이라는게 번역성경에선 이른 아침, 좀 어두울때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말한 시간이 정확히 어느 시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구요.

이 구절은 꼭 새벽시간이라는 그 시간이 특별하고 중요하다는  의미를 얘기하기보다, 늘상 사역으로 쫓기셔 시간이 없으신 예수님이 시간을 내서 기도하시고, 특히나 복음 선포라든가 제자선택같은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기도로써 임했다는 모습에 강조점이 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고자 하시면 새벽뿐만 아니라, 밤 늦게도 기도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실례를 들지요. 마태복음 14:23절에 보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시다 날이 저물때까지도 계셨고, 누가복음 6:12절에서는 열두제자들을 뽑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다고 나옵니다. 또 십자가고난을 당하기 위해 끌려가기 전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구요.. 그런 말씀들을 종합해 볼때 새벽이든 밤이든 기도하는 그 시간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나 베드로가 지은 서신서에서는 새벽에 기도하는 것에 대해 아예 나오지 않구요. 바울은 에베소서 6:18에서 무시(無時)로 성령안에서 기도하라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형식도 때론 필요하겠지만, 우리 신앙의 내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다만 새벽이라는 시간이 사람의 정신을 맑게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라서 필요한 측면은 있겠죠. 그렇다면 새벽에 교회에서 기도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집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찬양을 하고 기도하는 것도 어떤 신자들에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벽시간이라는 그 시간을 절대적 가치로 생각하고, 시간단위에 매인다면 그건 은혜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의 유전과 율법적 신앙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신자들에게 반강제적이고 제도화시키는 문화가 되는 것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사람의 유전과 종교적 열심으로 서민들을 얽어맨 문화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시간이 다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새벽기도는 진리의 문제도 아니고, 그 사람의 신앙이 좋다는 절대적 척도도 될수가 없으며, 새벽기도를 하고 안하고를 신앙의 정죄기준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도움이 되고, 맞으시는 분은 계속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시키거나 자랑거리로 삼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떤 유명교회에선 새벽기도를 제도화시켜서 마치 그것에 참석안하면 이방인취급하고 죄인취급한다고 직접 그 교인에게 들었습니다. 얼마나 그것이 우스꽝스러운 교회의 모습입니까?

 

로마서 10:1-3까지의 내용을 봤을때 신앙은 열정자체와는 다른 것입니다. 분별력없고 무식한 열심은 신앙이 아닙니다.

 

유대인들도 열심히 제단을 쌓고 제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열심을 보고 예뻐하셨습니까? 아니요 그 반대였습니다. 결국은 다른 나라를 통한 징계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모르고, 자기 이익과 유익만 추구하기 위해 제멋대로 열심히 제사하고 기도 열심히 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이 이런 유대인들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무리일까요? 

그렇게 기도를 많이하고 부흥대회를 많이 한 한국교회의 이 사회와 국가속에서의 오늘날 현주소가 어떻습니까?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근본이 바뀌지 않는 열심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는 젊은 청년들이 신앙에 대해 보다 넓은 안목과 관점으로 분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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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새벽기도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08.07.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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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새벽기도의 시초는 길선주 목사님이 불교의 새벽예불을 따서 만든 것은 좀 알아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 한국적 풍속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는 개인적으로 원하는 사람들이 따로 이른 아침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건 있어도 공적으로 하는 새벽기도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외국의 신앙거장의 서적을 봐도 새벽기도를 잘 해야 된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새벽에 기도했다는 표현도 마가복음 1:35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 시간이라는게 번역성경에선 이른 아침, 좀 어두울때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말한 시간이 정확히 어느 시간이라고 말할 수도 없구요.

이 구절은 꼭 새벽시간이라는 그 시간이 특별하고 중요하다는  의미를 얘기하기보다, 늘상 사역으로 쫓기셔 시간이 없으신 예수님이 시간을 내서 기도하시고, 특히나 복음 선포라든가 제자선택같은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기도로써 임했다는 모습에 강조점이 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고자 하시면 새벽뿐만 아니라, 밤 늦게도 기도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실례를 들지요. 마태복음 14:23절에 보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시다 날이 저물때까지도 계셨고, 누가복음 6:12절에서는 열두제자들을 뽑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다고 나옵니다. 또 십자가고난을 당하기 위해 끌려가기 전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구요.. 그런 말씀들을 종합해 볼때 새벽이든 밤이든 기도하는 그 시간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나 베드로가 지은 서신서에서는 새벽에 기도하는 것에 대해 아예 나오지 않구요. 바울은 에베소서 6:18에서 무시(無時)로 성령안에서 기도하라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형식도 때론 필요하겠지만, 우리 신앙의 내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다만 새벽이라는 시간이 사람의 정신을 맑게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라서 필요한 측면은 있겠죠. 그렇다면 새벽에 교회에서 기도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집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찬양을 하고 기도하는 것도 어떤 신자들에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벽시간이라는 그 시간을 절대적 가치로 생각하고, 시간단위에 매인다면 그건 은혜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의 유전과 율법적 신앙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신자들에게 반강제적이고 제도화시키는 문화가 되는 것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사람의 유전과 종교적 열심으로 서민들을 얽어맨 문화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시간이 다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새벽기도는 진리의 문제도 아니고, 그 사람의 신앙이 좋다는 절대적 척도도 될수가 없으며, 새벽기도를 하고 안하고를 신앙의 정죄기준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도움이 되고, 맞으시는 분은 계속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시키거나 자랑거리로 삼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떤 유명교회에선 새벽기도를 제도화시켜서 마치 그것에 참석안하면 이방인취급하고 죄인취급한다고 직접 그 교인에게 들었습니다. 얼마나 그것이 우스꽝스러운 교회의 모습입니까?

 

로마서 10:1-3까지의 내용을 봤을때 신앙은 열정자체와는 다른 것입니다. 분별력없고 무식한 열심은 신앙이 아닙니다.

 

유대인들도 열심히 제단을 쌓고 제사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열심을 보고 예뻐하셨습니까? 아니요 그 반대였습니다. 결국은 다른 나라를 통한 징계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모르고, 자기 이익과 유익만 추구하기 위해 제멋대로 열심히 제사하고 기도 열심히 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이 이런 유대인들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무리일까요? 

그렇게 기도를 많이하고 부흥대회를 많이 한 한국교회의 이 사회와 국가속에서의 오늘날 현주소가 어떻습니까?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근본이 바뀌지 않는 열심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는 젊은 청년들이 신앙에 대해 보다 넓은 안목과 관점으로 분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