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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기독교에 새 바람이 불고 있는 걸까?

은바리라이프 2008. 10. 21. 23:09

북한기독교에 새 바람이 불고 있는 걸까?  

<사진설명: 무소속 대변지 <통일신보>에 실린 칠골교회 헌당식 소식(92.11.28일자). 90년대 이후 북한의 기독교정책은 많은 변화를 보였다>

북한 기독교에 새 바람이 불고 있는 걸까? 적어도 최근의 모습만보면 그런 것 같다. 김정일 위원장의 종교인 초청 발언에 이은 평양방송과 중앙방송의 기독교관련 보도등은 예전과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방북한 박지원 장관에게 "목사님이나 스님들도 (북한에) 오셨으면 좋겠다"면서 "(북한실상을)보고 나서 기도도하고 불공도 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이후, 언론사 사장단 방북때도 종교인들의 방북에 관심을 표명했고 기독교계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등이 거론됐다고 한다.

또 북한의 기독교는 최근 북한 방송에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위상 변화를 감지케 하고 있다. 평양방송은 15일,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와 가정예배소등지에서 평화통일 예배가 진행됐다"는 이레적인 보도와 함께 설교내용, 공동기도문, 상찬식 등의 순서를 상세히 보도했다. 중앙방송도 16일 '정부·정당·단체 연합대회'행사 소식을 전하면서 강영섭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위원장 참석소식을 전했다. 중앙방송에 따르면 이날 강영섭 위원장은 북한의 주요 정부, 정당인사들과 함께 주석단 서열 21번째로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다른 행사에 비해 사회단체 인사들이 많이 참여한 행사였다는 점에서 평소 서열로 보기는 힘들지만 어쨋든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은 북한교회 위상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우선 볼 수 있는 것이 북한기독교가 북한사회의 공적인 영역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사회에서 갖는 위치로 볼 때 그의 발언이 반기독교정서의 이완에 미칠 영향은 충분히 짐작된다.

문제는 이같은 변화양상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 조짐은 80년대 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양의 방북. 이둘의 방북은 기독교인하면 '친미주의자' 내지는 '반공주의자'로 생각했던 북한 사람들의 도그마에 일대 충격을 가한 사건이었다.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간 만남이 북한 전역에 생중계 됐고 임수경양의 일거수 일투족이 보도되면서 '통일을 위해 몸을 던지는 기독교인들도 있구나'라는 새로운 종교인상을 심어놓았던 것.

이 때부터 김일성 주석의 기독교적 배경이 북한 사회에 공론화되기 시작했으며 북한 천주교인협의회 존재사실이 알려져 옛 천주교 신자들의 문의가 잇따랐다한다. 한 북한의 고위인사는 임수경양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고 전해진다. 홍동근 목사는 문익환 목사 한사람의 방북이 삼백명의 선교사와 맞먹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후로 북한기독교에는 전에 없던 변화가 이뤄졌다. 88년 북한의 첫 교회인 봉수교회 건립과 함께 89년 김일성대내 종교학과의 설치, 성경찬송가의 재판발간, 92년 칠골교회의 건립 등 가시적인 조치들이 이어졌던 것.

이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동반됐다는 사실이다. 91년 북한사전의 종교용어 풀이가 획기적으로 변했는가 하면 92년도에는 헌법의 반종교 선전의 자유 조항이 삭제되기에 이른다. 한예로 북한사전중 성경에 관한 풀이의 변화를 보자.

<현대조선말사전: 81년판> 예수교의 허위적이고 기만적인 교리를 적은 책.
<조선말대사전: 91년판> 종교의 교리를 적은 책

이렇듯 모든 종교용어의 풀이가 가치중립적으로 변했던 것.

더 나아가 주체사상이 기독교의 긍정성을 서서히 인정하기 시작했고 김일성의 기독교적 배경이 북한 사회에 공론화되기도 했다. 80년대말부터 진행된 북한사회의 이같은 인식변화는 북한의 기독교가 그 명맥을 유지하는데 공헌하는 커다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또 최근의 변화양상도 이런 변화양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여진다.

이를 간단히 도표화 한다면 다음과 같다.
평양신학원 건립(72년)-->성경, 찬송가의 발간(83·84년/92년)-->교회의 건립(88년/92년)-->김일성대 종교학과 신설(89년)-->북한사전의 종교용어 풀이의 변화(91년)-->헌법의 '반종교선전의 자유' 조항 삭제(92년)-->주체사상의 기독교 긍정성 인정-->김일성의 종교적 배경의 공론화

자료출처: CBS 백 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