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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빈을 자살로 내 몬 것들(2)

은바리라이프 2008. 10. 2. 21:50

정다빈을 자살로 내 몬 것들(2)

모모의 진실이야기 2007/02/19 12:16 정글북

가수 유니가 자살했을 때, 그녀가 크리스천이었다는 사실에 뭔가 잘못되어 왔다고 생각했다. 또 다시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탤런트 정다빈의 자살 보도를 접하니 확실히 잘못되어 왔다는 생각이 강하게 인다.

무슨 잘못일까. 기독교의 진리는 변함 없을 진데, 기독교인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상이 자꾸 나타나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기독교인들의 현실적인 영혼의 샘터라고 할 수 있는 교회는 무엇을 말해 주었길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적 사고가 젊은이들의 의식에 터를 잡고 있는가.

혹시 오늘 날 교회가 축복과 성공, 또한 그것들 위한 적극적인 삶의 방식을 진리인 양 가르치고 있다면, 그것이 이와 같은 경악할 사건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혹시 신앙 생활의 주된 목적이 이 세상에서의 마음의 평화와 위로, 저 세상에서의 천국 삶이라는 편하고 좋은 것을 쉽게 획득하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 밖에 많은 질문을 떠올릴 수 있고, 어떤 질문을 가지고도 기독교인 자살 현상의 본질에 다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필자는 오늘 날 수 많은 교회에서 전해주는 메시지가 기독교인으로서의 올바른 삶의 진정한 길잡이가 되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임상적 사실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의 기능은 어느 시대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개인의 이기적 욕구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특성이 심화되고 있는 최근 그리고 더욱 심화될 향후 자본주의 사회에 교회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사회윤리도덕성을 중시하는 어느 종교나 지배적인 사상이 사회 정신을 이끌어야만 인류 사회는 자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끊임 없이 경쟁하며 살도록 하는 자본주의는 자체의 모순으로 종국에는 파국이 예정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태고로부터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사회의 특성 중 대표적인 것이 생명 경시 풍조이다. 구약 성경에 수 없이 나오는 이방 신들은 물질적인 풍요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신들이었다. 그 이방 신들에 대한 제사에는 어린아이나 처녀, 심지어는 족장의 아들이 제물로 바쳐졌다.

자본주의는 이라는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정부에서, 언론에서, 기업에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가릴 것 없이 온통 경제적 풍요에 관심을 쏟아내는 현 사회의 돌아가는 모습을 생각할 때, 이 상징적 선언을 자신있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 사회 상황 가운데 잇따라 발생한 크리스찬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에는 자기 부족의 물질적 풍요를 위해 물신(物神)에게 순진한 아이들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치던 고대사회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현대에 들어 많은 교회의 메시지가 개인의 구원과 함께 현세에서의 성공 물질적 풍요가 뒤따르는 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온전한 지침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공이 의미하는 것은 기독교적 시각에서 불건전함 또는 불온전함을 내포한다. 경쟁을 통해서 성공해야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온전히 자유로울 있는 크리스천이 과연 있을까. 일반 기업에서도 정직하게 처신하기도 힘든 체제인데, 하물며 연예인 세계는 어떠할까. 성공한 크리스천 연예인은 성공하기까지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부당한 아픔과 불온한 상처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 성공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기독교적인 요소를 완전히 버려야 하는 상황에 놓일 지도 모른다.

반짝 떴다 사라지는 것이 대세가 되어버린 최근 연예 스타들의 세계에서 인기 유지를 위해 치러야 할 고욕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크리스천들이 왜 고욕스런 연예인의 길을 왜 택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TV
의 영향이 크겠지만 소위 영상 세대가 생겨나면서 연예계가 아이들의 동경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온 이래, 전술한 바와 같이 성공, 그것도 인기를 동반한 성공의 길은 사회 풍조와 상술한 교회 경향의 동조 아래 거침 없는 가치관이 되어 버린 결과이다. 불행한 것은 그 성공의 모습이 기독교적 성격과 상반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이른바 구원파로 알려진 박옥수 목사의 설교 글이 조선일보 한 지면에 전면광고로 실렸다. 사이비 종교나 사이비 교단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어느 한 순간에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 지고, 그것으로 완성(완결)되어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음류의 주장을 신앙의 중심 교리로 채택한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고통스런 삶의 시간이 계속되는 고난의 삶에서 신속히 그리고 단번에 벗어나기를 희구하는 심리를 이용하는 교묘한 심리전술이 담겨 있다. 기독교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 바로 이 점이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는 잘못 알려졌거나 오해하기 쉬운 크리스천의 길과 삶의 방식에 대해 놀라운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레인 아담스는 영적인 성장과정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남태평양 지역의 섬들은 해방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에 비교한다. 먼저 앞 바다에 있는 배에서 대포를 쏘아 적의 요새를 무너뜨리고 방어선을 약화시켜 섬의 방어 체제를 흔들어 놓는다. 그 후에 소규모의 해병대원들이 상륙하여 교두보를 세운다. 이 교두보는 연합군이 통제할 수 있는 섬의 매우 작은 지역이다. 교두보가 확보되면 그들은 섬의 나머지를 해방시키기 위한 긴 과정을 수행하게 된다. 한 번에 조금씩, 결국 많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섬 전체를 정복하게 된다.

릭 워렌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 마음을 여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 삶에 교두보를 확보하시는 것이다. 교두보를 확보하신 이후 우리의 삶을 완전히 정복하실 때까지 영토를 조금씩 늘려가기 시작하신다. 고통이 계속 따르겠지만,…… 중략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결국 우리가 도착하게 될 목적지이다. 하지만 우리의 여정은 평생 계속될 것이다. …… 중략

오늘 날 우리는 지름길로 빠르게 가고, 그 자리에서 해결책을 찾고 싶어한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즉각적으로,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말씀이나 경험을 원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숙은 경험이 아무리 강력하고 감동적이라 하더라도 단 한번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한 순간에 꺼지기 십상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 곳곳에서 투기의결과로 나타나는 거품 현상과 다를 바 없다.

크리스천에게 있어 현실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도록 만드는 경기장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성품을 개발하고, 인격을 성장시키는 곳이다.

이 대목이 비록 사이비는 아닐지라도 오늘날 많은 교회가 실수하고 있거나 실수하기 쉬운 점이다. 즉시적인 문제 해결이나 축복, 성공을 원하는 크리스천들과 그것을 장려하거나 조장하는 목회자들이 주변에 널려 있지 않은가. 그들 교회가 젊은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자살에 어떤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 무리한 시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