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모세오경

멜기세덱

은바리라이프 2008. 9. 12. 14:15
예루살렘과 연관이 있는 왕이자 사제이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쳐 존경을 나타냈기 때문에 성서 전승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메소포타미아 왕들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납치되었던 조카 롯을 구해낸 이야기에 삽입된 부분에 등장한다(창세 14:18~20)(→ 멜기세덱 대신권).
그 이야기에서 멜기세덱은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떡과 포도주를 주고(어떤 그리스도교 학자들은 이것을 성찬의 전조로 해석했고, 그결과 멜기세덱의 이름이 로마 미사 전문에 들어가게 되었음)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한다. 아브라함은 그 대가로 그에게 전리품의 십일조(1/10)를 주었다. 멜기세덱은 '나의 왕은 세덱 신이다' 또는 '내 왕은 의(義)이다'(멜기세덱과 비슷한 히브리어 어근의 뜻)라는 뜻을 지닌 고대 가나안 이름이다. 멜기세덱이 왕으로 다스렸다는 '살렘'은 예루살렘일 가능성이 높다. 〈시편〉 76장 2절에서는 살렘이 예루살렘과 동의어인 것처럼 언급되며, 〈창세기〉 14장 17절의 '왕의 골짜기'에 대한 언급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사제로서 멜기세덱이 섬긴 신은 '엘 엘룐'(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으로 이 이름도 역시 가나안에 그 기원을 두며, 아마 가나안 만신전(萬神殿)의 높은 신을 가리키는 듯하다(훗날 히브리인들은 또다른 가나안식 이름을 하느님을 일컫는 호칭으로 채택했음).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사제 겸 왕의 권위와 참됨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로서 성서학에 다시 없는 일이다. 이 이야기는 다윗 왕 시대에 최종적으로 다듬어져 다윗이 예루살렘을 도성으로 삼고 사제직을 세우기 위한 구실로 사용한 듯하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예루살렘의 사제이자 왕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다윗 도성의 성소에서 일하는 예루살렘 사제들에게 십일조를 가져올 때가 있음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뒤를 이은 레위 계열 사제들과 훗날 경배대상을 히브리 신 야훼로 바꾼 사독 계열의 예루살렘 사제들 간의 투쟁을 암시했는지도 모른다. 사독 계열 사제들은 바빌로니아로 강제로 끌려가기 전까지 예루살렘 사제직을 독점했는데, 이때 레위 계열 사제들은 자기들의 주도권을 주장했다. 멜기세덱 이야기는 사독 계열이 주도권을 다시 차지하게 됨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이 이야기에는 원전상의 문제들도 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것은 그럴 듯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성서 원전의 애매모호한 기록에 대한 해석이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탈취물의 십일조를 준 뒤 자신은 탈취물에 조금도 손을 대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22~23절). 〈시편〉 110편은 다윗 계열의 미래 메시아에 대해서 말하면서 사제 겸 왕인 멜기세덱을 이 메시아의 원형으로 내비친다. 여기에 근거하여 〈신약성서〉의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저자는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을 '의의 왕'으로, 살렘을 '평화'로 번역하여 그를 참된 의와 평화의 왕인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해석한다(히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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