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기다리는사람들

기다림에 대하여

은바리라이프 2008. 9. 8. 09:39

'기독논단'기다림에 대하여
송태근 목사(강남교회)
1999년 06월 16일 (수) 12:00:00 송태근
새 천년을 앞둔 세계는 온통 나름대로의 준비로 부산하다. 무엇인가를 향하여 움직이고 활동하고 모색하고 쉽게 예측하고…, 한마디로 야단법석이다. 목회현장을 예견하는 책들도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름대로의 정보와 통계를 근거로 다음 세기를 말한다. 그러나 인류는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이 분명한 사실일 뿐이다. 이러한 정보와 통계 그리고 예측들이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참고는 될지언정 역사에 별로 이바지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이나 교회나 이 문제에 관한 한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오늘의 이러한 위기는 다른 데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교회의 영성문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러한 전환기일수록 교회는 바른 영성을 통하여 세상 앞에 바른 방향표시가 되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 해답은 물론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인류역사에 오늘의 세기말보다 더 극적인 세기말 전환기를 꼽으라면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직전의 세상이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의 말씀처럼 『때가 차매』라고 하신 것처럼 극적인 전환기의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전환기를 앞둔 몇 사람의 자세를 통해서 우리는 오늘의 세기말에 처한 교회가 그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중심으로 우리는 다섯명의 사람들과 만난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마리아, 시므온, 안나 등. 이들은 예수님의 탄생이란 역사적 사건을 앞둔 시점에서 어.게 그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태도에서 우리는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배워야 한다. 기다림이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기다림이란 별로 인기 있는 태도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림을 시간낭비라 말하고 비웃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철학과 문화는 근본적으로 이렇게 소리친다. 계속 무엇인가 하라, 무엇인가 다른 것을 보이라, 고. 이러한 분위기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다림의 상실은 목회 전반에 세균처럼 번져있다. 무엇이든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보다 기다림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결과를 바라본다. 과정 없는 결론이 있을까. 성급한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다. 땀 흘리고 기도하며 여유를 가지지 않는다. 교회가 인맥을 연결하는 광장으로 전락한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그 인맥이 때로는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고 다수의 희생자를 만드는 모습도 보아왔다. 기다림의 상실이 빚은 파행인 것이다.
교육 없는 우리의 목회문화 역시 기다리지 못하는 속성에서 비롯됐다. 교육이란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철저히 과정이 중요시 된다. 그럼에도 목회현장에선 백년대계인 교육을 한 해 두 해에 결단내려 한다. 숫자가 늘지 않으면 질타하고, 그러다보니 사람 모으는 일이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성장지상주의란 결국 기다림 없는 목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기다리지 못하는가. 그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인류가 저질러 온 시대적인 불신앙의 모습이다. 이 불신앙이 커질수록 기다림은 더욱 힘겨워진다. 그러나 누가복음 초기에 세기말적 전환기를 앞둔 다섯명의 사람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기다리고 있었고 마리아도 그랬다. 시므온과 안나도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약에도 하나님의 일을 맡았던 그 시대의 리더들은 한결같이 기다리는 훈련을 예외 없이 통과했다. 모세도 40년을 광야에서 기다리는 훈련을 마친 후에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 갈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기다리지 못해서 오는 실패였다. 이 기다림은 하나님이 일관되게 사용하신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방법이었다.
그 어느때보다도 우리 시대의 교회는 이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예측하고 예단하고 추측한다 할지라도 교회가 함께 장단을 맞춰서는 안된다. 이제는 고요히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경은 한 시인의 기다림의 노래를 기록해 우리들 마음을 울리고 있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교회도 성도도 하나님의 약속에 깨어 있을 때 그 기다림은 가능하다.
송태근 목사(강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