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바울 주변인물

위대한 누가.

은바리라이프 2008. 8. 25. 21:47

위대한 누가.

크리스마스.
그건 언제나 듣는이 모두에게 크고작은 설레임을 주는 아주 독특한 말이다.
전나무에 장식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그 밑에 놓여있는 예쁜 선물상자들,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와 이상한 별,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동들이 들은 천사의 소리,
베들레헴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의 이야기.
크리스챤이든 아니든 이 환상적인 계절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다.
크리스마스는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지구촌의 축제다.
아무리 쇼윈도에 제일먼저 찾아와도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진 수많은 이야기들은 모두가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아기예수가 주인공 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은 선물을 가지고 올 싼타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꿈의 세계'는 거기에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 라는 고대영어가 지금의 영어로 진화된 이름이다.
cristesmasees-christomass-christmas 가 그것이다.
X-mas 로 표기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헬라어 알파벳으로는 Xristos 라고 불렀기 때문이며 christmas 로 읽어야
한다.
지금의 크리스마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가설일 뿐이다.
그중 한가지는,
로마의 역서(歷書)에 의하면 주후 336년경 로마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가
시작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고 문서에서는 이 축제가 이미 2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 된것은 로마의 저술가 이며 대립교황 이었던 히폴리투스
(170-235)의 주장으로 수태고지(受胎告知) 로 부터 아홉달을 계산하여 예수의 생일이
12월 25일 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탄생에 대한 기사들은 신학적 으로는 '탄생설화' 라고 부른다.
설화(說話) 는 전승(傳承) 되어오는 이야기들의 총칭이다.
과학적 신빙성 보다는 그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 에 더 무게가 실리는,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설화다.
그것이 아무리 고등종교라 해도 '설화' 가 없는 종교는 없다.
특히 교주의 신비한 탄생설화가 그런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사실은 모든 설화가 과학이전의 산물들 이라는
점이다.
전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에 '설화의 옷' 을 입힐수 밖에 없는, 비과학의 시대임을 이해
해야 한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당시는 크레코-로망(그리스-로마)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시대로서
신화(神話) 의 시대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예수역시 그의 탄생설화로 이들 다른신화들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
이기도 했다.

예수탄생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은 바울의 서신에서 발견된다.
신약성경중 가장 먼저 쓰여진 책인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보면,
'그러나 때가 찾을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여기서 '여자' 는 헬라어 구나이, gunai로서 평범한 아낙을 이르는 말이다.
적어도 바울은 '동정녀탄생설화' 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으며 그것은 초기 기독교
공동채에 '탄생설화' 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이기도 하다.
다음은 복음서의 오리지날인 마가복음의 기록이다.
1장 1절은,
'하는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으로 탄생설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와 마가복음은 분명히 한세대 이상의 시간적 차이를 가지면서도 '탄생설화'
를 취급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마태의 '동방박사' 와 누가의 '베들레헴 이야기' 는 어떤 필요에 의해 초대교회 후기
에 채택됐다는 의미다.
특히 이런 추론은 본문이 그 이유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마태복음 2장은,
마가와 누가에 없는 독립적인 부분이다.
동방박사의 방문, 이집트로의 피난, 나사렛에 살게되는 동기등, 모두가 구약의 메시아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 모두가 이사야서와 호세아, 그리고 신명기의 예언적인 말씀들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
졌다는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누가복음 2장의 '천사들의 환호' 와 '목자들의 기쁨' 도 마가나 마태에는 없는 독자적인
설화다.
마태와 누가의 탄생설화가 똑같이 다윗의 고을인 '베들레헴' 을 무대로 하는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도자가 그곳에서 날것이라는 미가서의 말씀이 이루어 졌다는
주장을 하기위한 것이다.
예수의 '메시아' 됨이 구약과의 연계없이는 유대인 사회에 수용될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탄생설화가 가지는 일차적인 의미가 그것일 것이다.

누가의 탄생설화가 가지는 시간적인 차이를 보면,
누가 2장의 '호구조사' 는,
가이사 아우구스트가 조사령을 내렸으며 그때 시리아의 총독은 퀴리노라고 했다.
퀴리노(cyrenius) 는 유대지방이 시리아와 합병되었던 주후 6-9년 어간에 시리아에
총독으로 재임한 인물이다.
실제 호구조사는 예수탄생보다 6년후의 일이다.
누가는 예수의 가족이 다윗의 고을인 베들레헴에 가게되는 동기로 이 호구조사를 차용
하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로마가 통치하는 지역의 모든 인구가 호구조사를 위해
원적지로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실제로도 그런일은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무대는 결국 누가의 창작이거나 다른곳의 신화를
빌려왔다는 가설을 주장할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의 초기서신과 복음서의 오리지날인 마가에 없는 '신비한 탄생설화' 는 누가가
그 시대적 요청에 의해 자기복음서에 삽입한 아름다운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우리모두는 한글로 된 번역성경을 읽고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한 학자들과 국어문장을 다듬어낸 국어학 학자들에 의해
누구나 쉽게 읽을수 있는 우리말 성경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번역성경 으로는,
특히 신약성경 헬라어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기록상의 극심한 차이를 전혀 알수가
없다.
예를들어 그리스인이 쓰는 그리스어 문장과 유대인이 쓰는 그리스어 문장은 차이가
크다.
특히 그리스어 코이네에 유창하지 못할경우 그 문장이 투박해 지는것은 어쩔수 없다.
여기에 글을쓰는 사람의 학력이나 문화수준에서 오는 차이까지 감안하면 성서원문이
가지는 서지학적 문제점들은 한둘이 아니다.
어떤책은 학생이 쓴것같고, 어떤책은 외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유대인이 힘들여 쓴
흔적들이 남아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미려하고 유창한 헬라어(코이네) 문장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20장
까지다.
누가의 문장은 그가 교양있는 그리스인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렇다면 누가(Luke)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먼저 바울의 기록들을 살펴보자.
골로새서 4:14, 사랑하는(존경하는) 의사 누가.
디모데후서 4:11, 눈가만이 나와함께 있다.
빌레몬서 24:, 그리고 나의 동료들, 마르코와 아리스타르고, 데마와 누가도 문안합니다.
이 기록들을 통해 알수 있는것은,
누가가 바울의 동역자 였으며 끝까지 바울과 함께한 의사라는 사실이다.
바울은 그를 사랑하는, 존경하는 의사라고 불렀다.
그는 바울과 함께 여러차례 전도여행을 했으며 주후66년경 바울이 순교할때도 함께
있었다.
아마도 그는 시리아 안디옥에서 출생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이름 누가(Luke-빛을준다)
로 보아 그리스인 으로서 해방노예였을 것이다.
당시 '의사' 라는 직업은 노예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기록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20장 까지로 보는게 일반적인 견해다.
그가 구사하는 수준높은 그리스어어 와 문체는 그가 교육받은 ,순준높은 교양인임을
알게해 준다.
특히 그의 의학지식은 그가 의사였음을 뒷받침 하고 있으며 항해술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제자였으며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84세에 죽은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앙의 세계는 신비로 가득찬 세계다.
그래서 이성에 바탕하는 비약이 필요한 세계이기도 하다.
인간이 철학을 뛰어넘어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는것은, 인간이 신비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종교를 문화적 현상으로 정의하는게 그런 이유다.
신약성경에서 동방박사와 베들레헴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빠진다면 딱딱한 교리의
책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 놀랍고 신비한 탄생설화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신비한 설레임과 기다림을 선물할 것이다.
그 이야기 없이는 크리스마스는 있을수 없다.
자선남비의 종이 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고,
싼타와 루돌프 사슴과 썰매의 카드가 나타나는,
흰눈이 내리는 성탄절은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받는, 차별없는 하늘의 선물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휴식과 평화와 사랑의 선물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는,
우리가 살고있는 모든땅이 베들레헴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위대한 누가.

크리스마스.
그건 언제나 듣는이 모두에게 크고작은 설레임을 주는 아주 독특한 말이다.
전나무에 장식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그 밑에 놓여있는 예쁜 선물상자들,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와 이상한 별,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동들이 들은 천사의 소리,
베들레헴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의 이야기.
크리스챤이든 아니든 이 환상적인 계절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다.
크리스마스는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지구촌의 축제다.
아무리 쇼윈도에 제일먼저 찾아와도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진 수많은 이야기들은 모두가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아기예수가 주인공 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은 선물을 가지고 올 싼타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꿈의 세계'는 거기에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 라는 고대영어가 지금의 영어로 진화된 이름이다.
cristesmasees-christomass-christmas 가 그것이다.
X-mas 로 표기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헬라어 알파벳으로는 Xristos 라고 불렀기 때문이며 christmas 로 읽어야
한다.
지금의 크리스마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가설일 뿐이다.
그중 한가지는,
로마의 역서(歷書)에 의하면 주후 336년경 로마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가
시작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고 문서에서는 이 축제가 이미 2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 된것은 로마의 저술가 이며 대립교황 이었던 히폴리투스
(170-235)의 주장으로 수태고지(受胎告知) 로 부터 아홉달을 계산하여 예수의 생일이
12월 25일 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탄생에 대한 기사들은 신학적 으로는 '탄생설화' 라고 부른다.
설화(說話) 는 전승(傳承) 되어오는 이야기들의 총칭이다.
과학적 신빙성 보다는 그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 에 더 무게가 실리는,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설화다.
그것이 아무리 고등종교라 해도 '설화' 가 없는 종교는 없다.
특히 교주의 신비한 탄생설화가 그런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사실은 모든 설화가 과학이전의 산물들 이라는
점이다.
전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에 '설화의 옷' 을 입힐수 밖에 없는, 비과학의 시대임을 이해
해야 한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당시는 크레코-로망(그리스-로마)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시대로서
신화(神話) 의 시대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예수역시 그의 탄생설화로 이들 다른신화들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
이기도 했다.

예수탄생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은 바울의 서신에서 발견된다.
신약성경중 가장 먼저 쓰여진 책인 갈라디아서 4장 4절에 보면,
'그러나 때가 찾을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여기서 '여자' 는 헬라어 구나이, gunai로서 평범한 아낙을 이르는 말이다.
적어도 바울은 '동정녀탄생설화' 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으며 그것은 초기 기독교
공동채에 '탄생설화' 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이기도 하다.
다음은 복음서의 오리지날인 마가복음의 기록이다.
1장 1절은,
'하는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으로 탄생설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와 마가복음은 분명히 한세대 이상의 시간적 차이를 가지면서도 '탄생설화'
를 취급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마태의 '동방박사' 와 누가의 '베들레헴 이야기' 는 어떤 필요에 의해 초대교회 후기
에 채택됐다는 의미다.
특히 이런 추론은 본문이 그 이유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마태복음 2장은,
마가와 누가에 없는 독립적인 부분이다.
동방박사의 방문, 이집트로의 피난, 나사렛에 살게되는 동기등, 모두가 구약의 메시아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 모두가 이사야서와 호세아, 그리고 신명기의 예언적인 말씀들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
졌다는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누가복음 2장의 '천사들의 환호' 와 '목자들의 기쁨' 도 마가나 마태에는 없는 독자적인
설화다.
마태와 누가의 탄생설화가 똑같이 다윗의 고을인 '베들레헴' 을 무대로 하는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도자가 그곳에서 날것이라는 미가서의 말씀이 이루어 졌다는
주장을 하기위한 것이다.
예수의 '메시아' 됨이 구약과의 연계없이는 유대인 사회에 수용될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탄생설화가 가지는 일차적인 의미가 그것일 것이다.

누가의 탄생설화가 가지는 시간적인 차이를 보면,
누가 2장의 '호구조사' 는,
가이사 아우구스트가 조사령을 내렸으며 그때 시리아의 총독은 퀴리노라고 했다.
퀴리노(cyrenius) 는 유대지방이 시리아와 합병되었던 주후 6-9년 어간에 시리아에
총독으로 재임한 인물이다.
실제 호구조사는 예수탄생보다 6년후의 일이다.
누가는 예수의 가족이 다윗의 고을인 베들레헴에 가게되는 동기로 이 호구조사를 차용
하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로마가 통치하는 지역의 모든 인구가 호구조사를 위해
원적지로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실제로도 그런일은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무대는 결국 누가의 창작이거나 다른곳의 신화를
빌려왔다는 가설을 주장할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의 초기서신과 복음서의 오리지날인 마가에 없는 '신비한 탄생설화' 는 누가가
그 시대적 요청에 의해 자기복음서에 삽입한 아름다운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우리모두는 한글로 된 번역성경을 읽고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한 학자들과 국어문장을 다듬어낸 국어학 학자들에 의해
누구나 쉽게 읽을수 있는 우리말 성경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번역성경 으로는,
특히 신약성경 헬라어 사본들이 가지고 있는 기록상의 극심한 차이를 전혀 알수가
없다.
예를들어 그리스인이 쓰는 그리스어 문장과 유대인이 쓰는 그리스어 문장은 차이가
크다.
특히 그리스어 코이네에 유창하지 못할경우 그 문장이 투박해 지는것은 어쩔수 없다.
여기에 글을쓰는 사람의 학력이나 문화수준에서 오는 차이까지 감안하면 성서원문이
가지는 서지학적 문제점들은 한둘이 아니다.
어떤책은 학생이 쓴것같고, 어떤책은 외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유대인이 힘들여 쓴
흔적들이 남아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미려하고 유창한 헬라어(코이네) 문장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20장
까지다.
누가의 문장은 그가 교양있는 그리스인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렇다면 누가(Luke)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먼저 바울의 기록들을 살펴보자.
골로새서 4:14, 사랑하는(존경하는) 의사 누가.
디모데후서 4:11, 눈가만이 나와함께 있다.
빌레몬서 24:, 그리고 나의 동료들, 마르코와 아리스타르고, 데마와 누가도 문안합니다.
이 기록들을 통해 알수 있는것은,
누가가 바울의 동역자 였으며 끝까지 바울과 함께한 의사라는 사실이다.
바울은 그를 사랑하는, 존경하는 의사라고 불렀다.
그는 바울과 함께 여러차례 전도여행을 했으며 주후66년경 바울이 순교할때도 함께
있었다.
아마도 그는 시리아 안디옥에서 출생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이름 누가(Luke-빛을준다)
로 보아 그리스인 으로서 해방노예였을 것이다.
당시 '의사' 라는 직업은 노예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기록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20장 까지로 보는게 일반적인 견해다.
그가 구사하는 수준높은 그리스어어 와 문체는 그가 교육받은 ,순준높은 교양인임을
알게해 준다.
특히 그의 의학지식은 그가 의사였음을 뒷받침 하고 있으며 항해술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제자였으며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84세에 죽은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앙의 세계는 신비로 가득찬 세계다.
그래서 이성에 바탕하는 비약이 필요한 세계이기도 하다.
인간이 철학을 뛰어넘어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는것은, 인간이 신비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종교를 문화적 현상으로 정의하는게 그런 이유다.
신약성경에서 동방박사와 베들레헴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빠진다면 딱딱한 교리의
책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 놀랍고 신비한 탄생설화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신비한 설레임과 기다림을 선물할 것이다.
그 이야기 없이는 크리스마스는 있을수 없다.
자선남비의 종이 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고,
싼타와 루돌프 사슴과 썰매의 카드가 나타나는,
흰눈이 내리는 성탄절은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받는, 차별없는 하늘의 선물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휴식과 평화와 사랑의 선물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는,
우리가 살고있는 모든땅이 베들레헴이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