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2/메모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은바리라이프 2008. 8. 21. 16:27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


[그림-유디트1]
1905년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예술가동맹 2차 전시회에서 이 그림은 <살로메>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었다. 1909년작인 <유디트 2>역시 '살로메'로 불리곤 했다. 이런 오해가 빈번하다보니 도리어 클림트가 제목을 잘못 붙였다는 비난까지 나왔다고한다.
그러나 클림트는 모두 그림의 제목을 유디트 1, 2 라고 했을뿐 다른 해설이나 대답을 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살로메는 패배자다. 세례 요한에게 매혹되어 그를 소유하고자 했지만 그는 그녀가 가질수 없는 남자였다. 최후 수단으로 남자를 죽여 그 목을 끌어안고 춤을 추었지만, 이 엽기적인 춤은 사랑의 춤도 승리의 춤도 아니다. 처절한 패배의 춤이다.
하지만 유디트는 승리자다. 그녀는 증오하는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해치웠고, 그녀의 행위는 신과 민족의 이름으로 숭고하고 애국적인 행위로 칭송되었다. 살로메는 남자들에게 살해되었지만, 유디트는 남자들의 숭배를 얻었다.


[그림-유디트2]
그런데 이상하게도 클림트의 유디트는 승리자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유디트 1>에서 여자의 목과 허리에 두르고 있는 황금빛 밴드는 그녀가 무언가에 묶여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허리 밴드와 똑같은 것이 그녀의 목을 칭칭 감고 있음은 무었을 뜻하는가.
손에 피를 묻히면서 힘들게 자른 남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지만 승리의 쾌감은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남자의 머리카락처럼 사라져버린다. 남는 것은 욕망뿐. 그녀는 자기 요망 속에 갇혀 있다.
클림트는 유디트를 되살리면서 그녀가 지녔던 공격성을 무디게 만들고 변형시켰다. 살로메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면 헤롯이 굳이 그녀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디트는 어떤 위협도 받지 않았지만 자기 욕망속에서 무력하게 박제가 되었다.
클림트의 유디트는 주인공이 아니다.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가 적장을 살해한 영웅도 아니고, 자신의 성적 감흥과 관능적 욕구에 사로잡혀 남성을 죽인 능동적인 여자도 아니다. 주인공은 그녀 속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욕망이다. 이 욕망은 그녀의 머리 뒤로 자라난 황금빛 나무들처럼 그녀 머릿속에 쏙쏙 돋아나서 결국에는 그녀의 목과 허리를 칭칭 감으며 그녀를 관능에 사로잡힌 노예로 만들었다.

여자들에게 칼을 쥐어주고 남자의 목을 베게 한 것도, 그 여자들에 대해 떠들썩하게 숭배의 미사를 올리거나 혐오의 불길을 피워 올린 것도 다 남자들이다. 아담은 초라하고 서글픈 자기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브와 뱀이 필요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민족의 정당성과 신의 권능을 위해 유디트를 필요로 했듯이 말이다. 살로메 역시 헤롯에게 세례 요한을 죽일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칼을 손에 쥔 여자들을 보니 무서워졌을까.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움을 주는 여성이 뿜어내는 독기에 취한 남성들, 상처 입은 그들의 격력한 욕망은 여성을 전멸시킬 꿈을 꾼다.

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뻐하는 축제가 끝난 다음 사람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유디트도 베툴리아로 돌아왓다. 그녀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청혼하는 남자도 많았다. 게다가 재산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역사의 뒷길로 물러나 줄곧 혼자서 고독하게 살았다. 거인 골리앗과 싸웠던 다윗과 대조되는 결말이다. 몹시 쓸쓸한 이야기다.> - 클림트, 황금빛 유혹 (신성림 저) 발췌-

아.. 취하게 하는 그림이다.. 끝없는 자기애와 도취가 느껴지는.

by 해변의카프카 | 2004/08/26 03:15 | 책. 그림. | 트랙백 | 덧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