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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에서 확인하는 한국사회 온정주의

은바리라이프 2008. 7. 26. 16:01
<1박2일>에서 확인하는 한국사회 온정주의
[이택광의 문화읽기]
2008년 07월 23일 (수) 15:04:19 이택광 문화평론가, 경희대 교수 ( media@mediatoday.co.kr)
   
   
 
우리는 왜 <1박 2일>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걸까? 기본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건전하고 즐겁다. 이경규의 <양심냉장고>처럼 ‘착한 것’을 즐거움으로 탈바꿈시키는 위력이 있다. 선정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겠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가 원하는 게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쾌락과 도덕이 동시에 있는, 이 쾌락원칙이야말로 우리가 안전하게 쾌적한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경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것이 <1박 2일>에 있는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쾌감을 주는 근거는 연예인에 대한 탈신비화에 있다. 연예인이 우리에게 신비로운 존재로 비치는 건 연예인이라는 생물학적 유기체가 원래부터 이런 속성을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신비성을 만들어내는 요소는 자본주의의 상품구조가 만들어내는 물화이다. 물화라는 건 자율적이지 않고 의존적인 현상이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독립적인 사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객관적인 것이 아닌데 집단적인 신념이나 착오를 통해 객관적인 것처럼 변질되는 것, 이것이 바로 물화이다.

대체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이런 물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은 신비한 대상으로 출몰한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남성 연예인들은 전일적인 몸으로 재현되는 반면, 여성 연예인들은 부분 대상으로 취급 받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장동건의 몸, 조인성의 다리, 배용준의 허리, 이런 식으로 남성 연예인들을 욕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 연예인들을 욕망할 때 우리는 전지현의 다리, 이효리의 배, 김태희의 얼굴, 이런 식으로 대상을 설정한다. 이들의 몸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응시를 체현하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몸은 응시에 맞춰 왜곡되어 있다. 전지현은 항상 다리를 꼬아서 길이를 강조하고 이효리는 언제나 허리를 젖혀서 배에 하이라이트를 준다. 김태희는 어떤가? V자형 얼굴을 드러내는 표정을 짓는다.

   
  ▲ ⓒKBS  
 
부분의 대상들은 또한 숱한 모방을 만들어낸다. 전지현의 다리, 이효리의 배, 김태희의 얼굴을 따라잡기 위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결과는 뻔하다. 물화가 만들어낸 숭고 대상을 대체할 수 있는 아류는 없다. 이것이 독점의 원리이고, 한국은 이걸 아이러니하게 ‘시장원리’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직 하나, 이 대상들의 상품 가치가 떨어질 때 교체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1박 2일>은 이런 물화의 해체를 곧 오락거리로 만드는 특이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은 연예인이라는 물화 대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형식 자체에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들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들의 ‘상징 자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내용의 논리를 이루고, 이것이 곧장 형식을 구성하는 것이 <1박 2일>이다.

아무나 붙잡고 “저는 OO인데요, 부탁 좀 들어주세요”라는 형식이 <1박 2일>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발화의 구조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OO의 위치에 올 수 있는 건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 전체일 수도 있다. 이런 구조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을 확인할 수가 있다. 여기에서 한국적이라는 것은 ‘연줄’이다. 연줄이라는 것은 단순한 온정주의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물적 토대에 가깝다. 말하자면 이런 연줄은 자본인 것이지 인연 같은 수사학으로 포장될 수 있는 모호한 낭만주의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그냥 ‘강부자’나 ‘고소영’으로 똘똘 뭉치는 게 아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이 이런 연줄의 복마전이다. 물론 어떤 사회나 연줄은 있다. 이른바 인적 인프라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척결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적절한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건 이런 연줄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바꿀 필요가 이른바 ‘학벌사회’에 대한 비판을 통해 제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박 2일>은 이런 ‘연줄 사회’라는 한국 사회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자기 반영적인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한국에서는 어떤 장르보다도 이렇게 ‘코미디’가 세상의 진실을 더욱 잘 드러낸다. 이건 한국 코미디의 장점이지만, 또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극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최초입력 : 2008-07-23 15:04:19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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