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여호와 앞에서 | ||||
[성경본문] | 창 10:8-14 | |||
(창 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창 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 10: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 10: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창 10: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창 10: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창 10: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 ||||
[본문내용] | 11430K bytes |
창10:8-14 스위스의 법학자이며, 철학자인 칼 힐티(Carl Hilty, 1833-1909)가 쓴 저서 중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유명한 책을 읽어보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10년 전에 ‘행복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 "인생 최대의 행복은 하나님 곁 가까이에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가 77세에 일기로 세상을 마칠 때, 그의 책상 위에는 성경과 그의 최후의 논문 "영원한 평화"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성경과 영원한 평화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는 성경에서 참된 행복과 영원한 평화를 발견했던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믿게 된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 신 10:13 -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렘 29:11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행복과 평화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가? ‘칼 히티’의 말대로 ‘인생의 최대행복과 영원한 평화는 하나님’에게 있다. 모든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하나님 앞에서 - 이것이 바로 인생의 실존이다.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행복과 평화가 있지만, 하나님을 멀리하면 불행과 전쟁이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멀리 하면 악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오늘 본문은 노아의 셈과 함과 야벳 - 세 아들을 통해서 백인, 흑인, 황인 - 세 인종으로 온 인류가 번성하고 국가와 나라가 세워진 것을 말씀하고 있다. 세 인종으로 번성하는 인간은 크게 두 종류의 삶을 살아간다. 여호와 앞에서 -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멀리 하는 사람 -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있는가? 하나님에게 있는 행복과 평화와 생명을 누리고 있는가? 왜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평화와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가? 왜 이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서로 죽이고 땅을 빼앗고 있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독도 문제’로 나라가 들끓고 있는데 왜 이런 영토 분쟁이 일어나는가? 오늘 본문 5절, 20절, 31절에 보면 -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노아의 후손은 하나님의 축복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행복하고 평화스럽게 살게 되었다. 야벳의 후손들은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고, 함의 후손들은 시날 땅 바벨지역에 머물렀고, 셈의 후손은 메사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에 머물렀다. 야벳과 함과 셈의 후손들은 여러 백성으로 나누어지면서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 문제는 저주 받은 함의 후손들로부터 인간의 행복과 평화가 깨어지지 시작했다. 6절부터 함의 아들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함의 아들 중에 큰 아들이 구스였는데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다. 8절 -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9절 -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니므롯은 - 대적자, 반역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영걸 - 깁보르 - 용사, 강력한 자, 폭군, 영웅, 지도자 특이한 - 깁보르 - 사냥꾼 - 짜이드 -'추격' 역시(그렇게 해서 취한)'사냥함'(일반적으로) 이 세 단어를 종합하면 니므롯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가 있다. 니므롯은 하나님은 대적하는 강력한 용사였다. 사냥꾼이라는 말을 추격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단순히 동물을 사냥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고대 전쟁 영웅들을 가리켜 ‘사냥꾼의 제자’라고 일컬었던 관습과 당시 사냥을 전쟁을 대비한 훈련의 일환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 사냥꾼은 사람을 추격하여 사람을 죽이는 용사를 의미한다. 니므롯은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강력한 힘을 가진 용사요, 폭군이었다. 니므롯은 자신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켜 땅을 빼앗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폭력으로 통치하였다. 11절 -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깃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 니므롯은 최초로 한 국가를 건설하고 다스린 폭군임을 알 수가 있다. 니므롯은 강한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람을 죽이는 폭군이었다. 니므롯은 인류역사상 전쟁을 일으켜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깨뜨리는 최초의 사람이었다. 니므롯 이후 인류역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파괴하는 폭군들이 끊이없이 등장하였다. 인류역사를 전쟁사라고 할 정도로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계속되어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행복과 평화를 상실한 채 비참하게 살아왔다. 성도 여러분! 노아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대마다 니므롯은 존재하였다. 니므롯이 존재하는 한 인류역사는 전쟁이 그치지 않은 것이며, 인간은 결코 참된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시대의 니므롯은 누구인가? - 히틀러, 후세인, 김정일 혹 내가 니므롯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가? 니므롯의 속성을 가지고 - 하나님을 멀리 하고 있지는 않는가? -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 자신의 힘과 능력을 내세우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 다른 사람의 행복과 평화를 깨뜨리고 있지는 않는가? 정말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라는 인생관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인류역사는 달라진다. 이 시간 나의 삶에 니므롯의 속성을 있다면 회개하자. - 하나님을 멀리 하고 살아온 죄를 회개하자. -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한 죄를 회개하자. - 자신의 힘과 능력을 내세우며 살아 잘못을 회개하자. - 다른 사람의 행복과 평화를 깨뜨리고 행동을 회개하자. 그리고 철저하게 여호와 앞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나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파님’ - 대면하여, 호의를 베풀다, 에 대한 두려움, 섬기다, 하나님 앞에서 - 하나님을 대면하여,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니므롯이 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고 사람을 사냥하는 폭군이 되었는가? 니므롯이 왜 전쟁을 일으켜 사람의 생명을 무참하게 죽이는 전쟁광이 되었는가? 니므롯이 왜 사람들이 행복과 평화를 빼앗아 갔는가? 1)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용맹하고 힘이 세고, 영웅이라 할지라도 자신은 신이 아닌 -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 전능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아무리 뛰어난 장군이나 영웅도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 앞에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한 니므롯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자가 되었다. 자신의 나라를 세워 신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폭군이 되었다. 2)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면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위대하신 하나님, 인류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힘과 용맹으로 전쟁영웅이 된 니므롯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다. 시 36:1 -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니” 롬 3:18 -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람이 누구를 두려워하겠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못할 짓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니므롯은 -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하였다. - 불의를 행하고 사람의 행복과 평화를 깨뜨렸다. - 전쟁과 폭력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두려움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하나님은 두려워할 자이시다. 시 76:7 - “주 곧 주는 경외할 자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경외 = 두려움 주는 경외할 자시니 - 라는 말씀은 주는 두려워할 자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행한 대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한 번 노하시면 누가 주의 목전에 설 수 있겠는가?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다(시 143:2) 주의 앞에 우리는 우매무지한 짐승이다(시 73:22) 우리가 불의한 인생, 우매무지한 짐승같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있다. 우리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가? - 공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가 되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이 세상에 불의와 악은 사라지고 의와 선으로 가득한 세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될 줄로 믿는다. 하나님 앞에서 온 인류는 한 가족이다. 오늘 본문은 노아의 세 아들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9:19 -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의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졌다. 1-5절 : 야벳의 후손 - 6-20 : 함의 후손 21-32 : 셈의 후손 본장에 70개의 족속이 나타나 있지만, 그 조상은 노아이다. 본문은 사실적 혈통에 근거해 인류를 분류하고 있다. 왜 혈통적인 근거로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가? - 이 세상에 많은 족속과 나라들이 있다할지라도 땅에 있는 모든 열국은 한 조상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행17:26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신32:8 -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종을 분정하실 때, 민족들의 경계를 정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주거지의 경계를 경정하시고 그 경계에 따라 살게 하신 것은 자신의 지역에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니므롯은 어떻게 하였는가? 교만해진 니므롯은 자신의 힘과 용맹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켜 남의 영토를 빼앗고, 자신의 다스리는 왕국을 이루려고 하였다. 왜 그런가? - 인류의 모든 족속이 한 혈통이라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국가는 약 220개의 국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약 24000개의 종족이 존재하며, 그 절반인 12000개의 종족은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였다. 우리가 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아직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게 생명을 걸고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 온 인류가 다 한 혈통이요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온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의 후손들이다.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후손들이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에서 온 인류는 한 가족이다. 그러므로 온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 사랑하며 행복을 누리며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국가와 인종과 종족을 초월하여 한 가족이라는 가족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앞에서 - 어떤 사고와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인류역사는 우리 인간의 책임아래 놓여 있다.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 지구촌은 사랑과, 행복과 평화가 공존하는 세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 가족이라는 의식이 없으면 - 이 세상은 폭력과 전쟁과 파괴가 그치지 않을 것이며, 온 인류는 끊임없는 고통과 불행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전쟁에서 인하여 재산 피해액은 5조억불이고, 희생자수는 36억 4천여명, 전쟁회수는 14,515회라고 한다. 평화롭고 지낸 연수는 주전360년부터 지금까지 불과 292년뿐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전쟁의 역사에서 어떻게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가 있겠는가? 유명한 시인 단테가 어떤 수도원 대문 앞에 멍청하게 서 있었다. 문을 지키던 신부가 세 번이나 누굴 찾느냐고 물었다. 단테는 한참 후 맥이 풀린 음성으로 말하였다. - "난 평화를 찾고 있습니다." 인류의 행복과 평화는 바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온 인류가 하나님의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한 가족 공동체로 살아갈 때, 이 세상은 다툼과 전쟁이 그치고, 진정한 행복과 영원한 평화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줄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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