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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를 반박한다―허호익] ‘기독교의 역사성’영지주의가

은바리라이프 2008. 6. 30. 12:23
[‘예수는 신화다’를 반박한다―허호익] ‘기독교의 역사성’영지주의가 훼손 

 
 
디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가 지은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는 기독교인들의 신앙관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허황된 주장을 담은 영지주의적 서적이다.

영지주의는 본래적 기독교가 아니라 영지주의에 입각하여 기독교를 왜곡한 것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미스테리아(密敎) 신앙’이 고대 유럽의 민중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신앙이 기독교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역사적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독교 신앙을 미스테리아 신앙과 혼합하여 영지주의 기독교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영지주의가 역사적 기독교를 영적 기독교로 왜곡한 것이지,기독교(저자들의 용어로는 문자주의자들)가 영지주의를 문자주의로 왜곡한 것이 아니다. 영지주의의 주장을 조금만 살펴보면 저자들의 가설이 전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3세기의 기록으로 보이는 영지주의 문서인 ‘도마복음서’ 25절에는 예수가 “형제를 여러분의 영혼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보다 2세기 이전에 복음서에서 기록된 “네 이웃을 네 몸(육체)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19장 19절 병행)는 말씀을 왜곡한 것이다. 육체로 말미암아 고통과 죽음이 유래된 것이기 때문에 육체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영혼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제멋대로 왜곡한 것이다.

심지어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서 외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구절을 영지주의적으로 해석한다. 아람어 엘(El)은 보통명사로서 신(神)이라는 뜻일 뿐만 아니라 영(靈)을 뜻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예수의 영(神)이 인간의 육체를 빌려 마치 유령처럼 이 땅에 나타났다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인간의 육체적 가면을 벗어버리고 다시금 영적 존재로 되돌아가려고 하자 예수의 가현적인 육신이 “나의 영이시여,나의 영이시여 어찌하여 나(육체)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초대 교부들은 영지주의의 해악을 반박하는 많은 글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신약성서 요한2서 1장 7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 즉,영지주의자들을 가리켜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하였다. 이처럼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고난도 죽음과 함께 당하지 않는다고 왜곡한 것을 바울은 “다른 예수,다른 영,다른 교훈”(고린도후서 11장 4절)를 가르치는 것으로 분명히 거부하였다.
 
기독교 신앙은 영지주의자들의 은밀한 미스테리아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선포된 사도전승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신앙의 핵심은 영육이원론이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온갖 고난을 당하고 마침내 죽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육신의 감옥에 갇힌 영혼을 해방시킴으로써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다. 구원의 구체적인 방식이 비밀스러운 영적 지식(gnosis)을 깨닫는 것이며 이 영적 지혜는 소수의 선택된 영지자들에 의해 비밀스럽게 전승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스테리아 신앙은 밀교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종교학자들은 종교를 밀교(密敎)와 현교(顯敎)로 나눈다. 밀교는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이중적이다. 공개되는 부분과 비공개적인 부분이 있다. 통일교가 이러한 밀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핵심적인 교리와 제도,의식은 핵심 내부인들에게만 은밀히 알려져 있다. 외부의 직접적인 비난이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처음부터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에서 공개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못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려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었다”(사도행전 2장 23∼24?36절)고 선포하였다. 바울에 의하면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지내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살아나셨다”(고린도전서 15장 3∼4절)고 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신앙에 대한 최초의 기록에 해당하는 이 내용은 “내가 전해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는 것”(고린도전서 15장 1절)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초대교회 이레네우스는 ‘이단반박’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공개적인 사도전승’이지만 영지주의의 영지(gnosis)는 ‘은밀한 비밀전승’이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밀교는 그 은밀한 비공개성 때문에 황당무계한 신앙을 저마다 제멋대로 전수하였고 이러한 모순된 신앙에 대한 객관적 이성적 비판과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다.

기독교는 적대적인 정부와 종교가 지배하는 체제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의 진리성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기 때문에 엄청난 비판과 도전과 박해를 당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앙의 진리성 때문에 역사적인 종교로 세계화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밀교는 불교처럼 엘리트적인 소수만의 득도와 수행을 통해 영적 각성에 이르는 것을 우월한 것으로 여겼다는 점도,예수가 가난하고 무지하고 병들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구원을 위한 대중적인 신앙을 표방한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예수는 신화다’의 저자들의 주장은 명확성과 일관성이 부족하고 상호모순 투성이다.저자들의 주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논리적 일관성이나 명확성이 부족하며 자체 모순이 가득 차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 하나만 들어보자.

서기 3세기의 한 부적의 그림을 근거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예수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이교도 신인인 오시리스?디오니소스였다”(102쪽)고 했다가 그 다음 페이지에서는 “최초의 십자가상에 나타난 예수는 곧 오르페우스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영지주의 문서인 ‘옹호자 도마의 책’을 인용하면서 예수와 모든 점에서 닮은 “예수의 쌍둥이 형제가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211쪽)고 주장한다. 그리고 몇 페이지 뒤에는 영지주의 문서인 ‘위대한 세트 신의 두번째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은(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구레뇨 사람 시몬이다”(215 쪽)고 하였다. 그렇다면 진짜로 십자가에 죽은 자는 누구인가?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이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문자 그대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하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에 대해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저자들의 지적 수준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도의 한심한 책을 읽노라면 왜 이런 책을 민족정론을 표방하는 신문사가 분별없이 출판하였는지 그 자질과 의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허호익 박사 (한국교회언론위원회 학술위원,대전신학대학교 교수)

 

허호익
  SBS가 기독교에 대한 왜곡이 담긴 저서 『예수는 신화다』를 중심으로 “신의 길과 인간의 길”이란 4부작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가 기반하고 있는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는 영국의 신비주의 연구가 디모시 프리크(Timothy Freke)와 고대 이교신앙 연구가인 피터 갠디(Peter Gandy)가 공동으로 쓴 저서를 2002년 동아일보사가 번역한 것이다.

당시 한국교회언론회가 필자를 위의 글을 통해 반박하였고 그 후 [국민일보]에 연재된 내용을 여기에 다시 실는다.

출처 : 수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