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신화다’를 반박한다] “예수는 있는 그대로의 검증된 역사”
국민일보
2002.10.11, 15:07
디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의 공저이며 1999년 영국에서 출판된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는 논쟁적인 책을 공신력이 있는 동아일보사가 번역하여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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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검증된 내용이 아니라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3세기의 영지주의자들의 저작들을 일방적으로 해석하여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현저하게 왜곡하여 기독교 신앙을 호도하는 것으로 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의 역사적 생애는 오시리스 신화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수의 생애와 고대 이집트의 신화적인 인물 오시리스(Osiris)의 생애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는 이유로 예수를 오시리스와 같은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형태적 유사성만 부각하여 본질적인 상이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궤변이다. 물과 기름이 액체로서 유사하다 하여 둘이 같다고 하는 논리를 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의 극치는 예수의 역사적 생애를 왜곡하려는 의도와 오시리스 신화의 본질에 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의하면 오시리스는 땅의 신 게브(Geb)와 하늘의 신 누트(Nut)의 아들로 누이동생 이시스(Isis)와 결혼하였는데 후에 형의 지위를 노린 아우 세트(Seth)에게 살해되고 그의 시신은 14조각으로 토막나 온 나라에 흩어져버린다. 이시스는 그 시체 조각을 다시 찾아 맞추어 최초의 미라를 만들고 그의 성기(性器)를 살려내어 관계하여 아들 호루스(Horus)를 낳았다.
그리고 오시리스의 소생을 위한 의식을 거행한 결과 그가 소생하여 죽은 자들의 사후 세계의 왕이 되고 호루스는 산 자들을 통치하는 현세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오시리스 신앙은 농경문화와 결합되어 해마다 춘분이 되면 겨울에 죽었던 식물들이 되살아나는 것과 관련시키는 재생의식으로 지켜졌다.
종교학자 R 내시는 오시리스 재생 신화와 예수의 부활 신앙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①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죽는다는 점 ②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위해 죽는다는 점 ③단 한번의 죽음이지 반복된 죽음이 아니라는 점 ④역사적 실제사건으로 처형당해 죽는다는 점 ⑤자발적인 죽음이었다는 점 ⑥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다는 점이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1세기의 유대땅 나사렛 사람 예수와 기원전 4500년께의 이집트의 신화적 인물 오시리스를 동일한 신화적인 인물로 여기는 것은 복음서와 고대 역사가들의 예수에 대한 기록과 오시리스의 신화를 이중 왜곡하는 것이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화적 인물인 예수를 3세기의 기독교가 역사적 인물로 각색한 것이 아니다
바울마저도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인물로 보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지배자의 종교로 공인되자 3세기의 유세비우스라는 역사가를 시켜 오시리스 신앙의 신화적인 인물인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각색한 것은 ‘거대한 음모의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바울의 생애와 유세비우스 시대의 역사를 저자들이 마음대로 각색한 ‘웃기는 음모의 결과’이다.
바울은 로마서 서론에서 예수를 가리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신(generatio) 분이며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resurectio) 분”(로마서 1장 3∼4절)이라고 하였다. 예수는 오시리스 신화처럼 가현적인(doceo) 인간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다. 그리고 오시리스처럼 해마다 반복하여 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단 한번 부활하신 분임을 분명히 하였다.
서기 70년을 전후하여 예수의 역사적 생애를 기록한 4복음서 외에도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서기 76∼79년 사이에 쓴 ‘유대고대사’와 ‘유대전쟁사’나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서기 55/56∼120년쯤)가 쓴 ‘연대기’에서도 유대 총독 빌라도에 의해 나사렛 사람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서기 170년께 헬라의 풍자 작가인 루시안도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현자(賢者)”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을 부정하고 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주장하는 만용에 통탄할 일이다.
예수의 부활은 죽은 자의 부활이며,산 자의 영적 부활(해탈)이 아니다.
저자들은 1946년 나그 함마디에서 발굴된 영지주의자들의 문서들을 인용하면서 예수는 고통을 겪지도,피를 흘리지도,죽지도 않았으며 따라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적고 있다. 특히 영지주의 문서인 ‘빌립 복음서’에 기록된 “먼저 죽고난 다음에 다시 살아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틀렸다…죽고 나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부활해야만 한다”는 영적 부활론을 기독교의 본래적인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영적 각성을 통한 영적 재생은 미스터리아 신앙의 핵심이며 득도나 해탈과 같은 선불교적 특징과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동서양의 가장 보편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내에도 이러한 영적 부활론자들이 존재하여 부활신앙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킨 것을 질책하였다.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합니까?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장 12∼13절)고 하였다. 저명한 신학자인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한국신학연구소?1979)이라는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미스터리아 신앙과 영지주의의 신관과 성서의 하나님 신관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신은 고난과 죽음을 겪지 않는 ‘무감정의 신’(God of Apathos)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하감하시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고난당하는 백성과 함께 하시는 ‘인정이 많으신 하나님’(God of Pathos)이다.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시므로 그 고난과 죽음을 극복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부활신앙이 아닌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적인 것도 아니고 감히 신앙이라고 일컬을 수도 없다”고 단언하였다.
허호익 박사 (한국교회언론위원회 학술위원,대전신학대학교 교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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