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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황제가 있었다 | W [중세사]

은바리라이프 2008. 6. 23. 11:37
미국에도 황제가 있었다 | W [중세사]
전체공개 2008.04.06 18:25

    미국의 황제 노턴 1세

 

 

미국의 황제 노턴 1세가 배를 타고 여행을 하려 했다. 그런데 황제를 알아보지 못한 선장이 무엄하게도 돈을 내지 않으면 태워줄 수 없다며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곧 샌프란시스코 거리에 다음과 같은 포고문이 나붙었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황제요 멕시코의 보호자인 노턴 1세는 기선 회사가 새크라멘토 항해를 거부했기 때문에........ 반항하는 이 회사가 짐의 명령에 따를 때까지 새크라멘토 강을 봉쇄한 것을 선언하노라. - 1866년 2월 8일 샌프란시스코 노턴 1세

 

 

이 선언을 전해 듣고 크게 놀란 기선 회사는 곧바로 황제에게 평생 승선권을 기증했다. 황제를 거부한 이래 선장에게 죽음을 선고하지 않고 다만 명령에 따를 때까지 강을 봉쇄한 미합중국의 황제는 참으로 너그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이 드는 것이 있다면 이 것일 것이다. "미국에도 황제가 있었나?"

 

조지 워싱턴 이래로 미국은 줄곧 대통령제였다. 물론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황제 노턴 1세는 19세기 말 샌프란시스코에 분명히 존재했다. 다만 여느 황제와 다른 것은 스스로 황제라 자칭하고 나선 가난한 남자였다는 점이다.

 

즉위 선언에서 그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미합중국 시민 다수의 간절한 요청과 소망'을 물리칠 수 없어 황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더구나 새 황제는 역사상 뭇 영웅들이 그러했듯이 미국 영토에 만족하지 않고 '멕시코의 보호자'까지 자임하고 나섰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이 선언에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이 중년 사나이의 깨끗한 매너와 너무도 진지한 태도에 눌려 황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황제가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았으므로 황제의 뜻에 따르기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레스토랑 주인은 그가 주문하는 대로 요리를 내주면 되었고, 그가 총애하는 신하인 두 마리의 개에게도 머이를 주면 되었다.

 

인쇄소 주인은 황제의 주문에 따라 '국채'를 인쇄해 주었고, 상점 주인이나 은행은 황제가 발행하는 국채를 사줘 황제의 '재정'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황제는 결코 국채를 남발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에 꼭 필요한 작은 액수만 발행했고, 더구나 그 액면가도 25센트나 50센트의 저가였다. 그리하여 노턴 1세는 다른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손수 직업을 갖지 않고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황제는 그 국채를 어떻게 갚았을까? 상환 일자는 1880년의 어느 날이었는데, 다행히도 황제는 그 며칠 전에 '승하'하셨다.

또한 황제는 국제 정세나 정치에도 큰 관심을 드러내 의회가 열리면 반드시 참석해 귀를 기울였다. 물론 방청석 맨 앞자리에서, 그리고 의회가 끝나면 어김없이 기자 회견을 갖고 의견을 발표했고, 그의 의견은 신문에 실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를 모르는 자는 없었다. 극장표도 기차표도 모두 무료였다. 황제는 유난히 산책을 좋아했는데, 길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깍듯이 인사를 했다. 언제나 황제를 따르던 신하 '바머'가 죽었을 때는 몇천명이 모여 황제와 함께 애도의 뜻을 표했을 만큼 그는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바머'는 황제를 따르던 애완견의 이름이다.)
욕심이 없는 이 황제에게 부족한 것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에게 황후와 황태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근세의 입헌 군주제에서 가장 이상적인 황제 상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아마도 노턴 1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황제였을 것이다.
그러하면 노턴 1세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본명은 조슝 노턴. 1819년에 영국계 유대 인으로 태어나 어릴 때 남아프리카로 이주했다. 일찍이 상업에 종사해 돈을 조금 모은 뒤 브라질을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흘러들어왔다. 당시 골드러시로 한창 번성하던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는 부동산 투기로 큰 돈을 모았지만 곧 파산해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갑자기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라졌다가 1859년에 불쑥 다시 나타나 황제에 등극했다.
물론 상점이나 레스토랑에서 그를 반갑게 맞이한 것은 노턴 1세의 유명세가 광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골드러시로 번성한 샌프란시스코의 각박한 분위기에서 노턴 1세의 존재는 신성한 청량제기 때문이다. 돈벌이에 급급한 시민들이 뭔가 따뜻한 낭만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1880년 1월 8일, 노턴 1세는 비 내리는 길가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황제가 죽자 백만장자에서 가난뱅이까지 모두들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노턴 1세가 죽은 뒤 한 전기 작가는 그의 전기를 남겨 후세에 전했다.'
 
출처 - 교과서에서 절대 가르치지 않는 세계사
참고로 덧붙이자면, 네이버나 다음에 '노턴 1세'를 검색하면 '미합중국 황제'로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출처 뉴스 > 서울경제 2008-01-07 23:51 - 네이버 뉴스 기사를 들어가 보면 '노턴 1세'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