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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홍수 (12) - 언약의 시작

은바리라이프 2008. 6. 3. 19:36
노아홍수 (12) - 언약의 시작
 이재만
한국창조과학회 LA지부장
지질학, 과학교육학, 구약학 석사
전 미국 ICR 연구원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8)

의인 여덟 명에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세우셨다(established). 성경전체에서 언약이라는 단어가 처음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 구절이다. 언약(covenant)는 그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관계(relationship 또는 bond)'를 내포한다. 즉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수 이전에 말씀하신 이 언약은 홍수가 끝난 후 무지개를 싸인(sign)으로 보여주신다.

언약은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한 조건 없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이 세워지기 전에 그의 언약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사람들은 어떤 조건을 완수해야 한다. 노아가족이 하나님을 향한 순종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노아홍수에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가지가 대립되어 있다. 바로 '홍수'와 '방주'이다. 하나님께서 홍수는 심판의 도구로, 방주는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홍수는 하나님의 엄하심을 추호의 여지없이 보여주는 반면, 방주는 그 크기, 재료, 제작과정부터 꼼꼼하게 챙기시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보여주신다. 바로 은혜를 입어(6:8) 노아가족이 타게 될 구원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관계가 형성된 방주에 있던 자들을 그 심판의 기간 동안에도 권념(remember, 8:1)하셨다.

그러므로 노아홍수는 성경 가운데 심판과 구원에 관하여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바로 심판과 구원에 대하여 실례를 들기에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언약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들에 대한 차이도 첨예하게 나타난다. 방주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은 홍수로 인하여 지면에서 쓸어버림을 받아(6:7)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했으나 방주에 탔던 노아의 여덟 가족은 방주에 승선해 구원을 얻게 되었다. 이 여덟 명에 대해서는 베드로 전서에 '그들은(홍수로 죽은 자들)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3:21), 베드로 후서에 '옛 세상(홍수 이전의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2:5) 라고 오직 여덟 명뿐이심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 여덟 명은 하나님께 순종했으며, 의를 전파했으며, 경건했던 바로 언약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셨다. 그런데 그 언약은 이전의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guarantee)라고 했다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새 언약의 싸인으로는 성찬을 주셔서 우리는 성찬을 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을 기억한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mediator)로써 첫 범죄부터 해결하시며 하나님의 관계를 완전히 이어주셨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히 9:15). 또한 그의 피와 죽음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히 13:20).

노아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의 싸인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 드렸을 것이다. 우리는 노아시대 언약관계가 없는 자들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 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피를 흘리시고 이로 인하여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어 주시고 영원히 회복된 하늘나라의 소망을 갖게 되었다. 노아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바로 새 언약의 싸인 성찬에 참예할 때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