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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는 습관 ‘간절함’

은바리라이프 2008. 5. 23. 18:30
꿈을 이루는 습관 ‘간절함’
알르레기 비염 전문, 평강한의원 이환용 원장의 무한 도전이야기 上
2008년 05월 22일 (목) 12:44:10 박민정 기자 power9182@allthatnews.co.kr

내신 꼴찌로 고등학교를 졸업해 무면허 돌팔이 한의사 노릇을 했던 내가 한의사가 된 것도 감사한데,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까지 공부하게 될 줄이야. 터무니없는 성적을 가지고 한의대에 가겠다고 8년 동안 재수생활을 했고, 석사와 박사도 여러 차례 낙방했다.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나에겐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꿈 하나뿐이었다.
-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中 -

   
▲ 이환용 원장
한의원과 한의사의 유명세에 비해, 직접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동네 자그마한 병원 같았다. 33만㎡의 식물원을 병행하고 있는 한의사라 기대 반, 호기심 반이었는데 한의원은 60㎡ 남짓 돼 보였고 이환용 원장도 병원만큼이나 소박한 인상이었다.
이 원장은 이름은 하난데 따라다니는 별명은 여러 개다. ‘노량진 학생의사 ’ ‘괴짜한의사 ’ ‘7전8기’ 등. 그 별명들의 진상을 찾기위해 이 원장을 만났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

“도대체 너는 직업이 뭐고 정체가 뭐냐. 간첩이냐. 재수도 1~2년이지.”
이 원장은 무려 7번의 고배를 마시고 8수만에 동국대 한의대를 입학했다. 4수할 때쯤이었다. 이 원장의 어머니가 목장 감독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할 수 있다며 목장 일을 권유했다고 한다. 가족들조차 다른 길을 권유하는데 주위 친척들은 오죽했을까. 길어지는 입시공부에 누구보다 초조했겠지만 이 원장은 그래도 한의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해냈다. ‘명의가 되리라’는 굳은 믿음과 신앙으로 끝까지 싸운 것이다.

이 원장이 포기하지 않았던 또 하나는 중환자실에 있었던 이 원장의 어머니다. 이 원장은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4남매를 혼자 키우며 평생 일만 하셨던 어머니이신데 산소 호흡기에만 의지한 채 한 달이 넘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었다” 며 “중환자실에서 어머니를 뵐 때마다 기도와 통곡으로 울부짖기 일쑤였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절망적인 말에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할렐루야. 우리아들”이라며 항상 반갑게 전화를 받으셨던 어머니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아 견디기 힘들었단다. 하지만 이 원장은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살려주실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결국 그의 믿음처럼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왔고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

노량진 학생의사
이 원장은 노량진에서 재수하던 시절부터 ‘노량진 학생의사’로 이름이 잘 알려져 있었다. 이불 하나 들고 노량진의 한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학생들에게 침을 놔줬다. 고향에서 배운 침술이었다. 조금씩 소문이 나자 생활비를 벌 만큼 됐다.

학생들이나 강사들뿐만 아니라 노량진 주민들도 찾아왔다. 중풍에 걸린 어느 하숙집 할머니에게 침을 놔 드렸더니 그 할머니께서는 동네의 아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 소개시켜줘 이 집 저 집 다니며 침을 놔 주기도 했다. 그는 군대에 가서도 같은 부대 사람들에게 침을 놨다.

이 원장은 최선을 다해 돌봐드렸고 그분들이 생선 한 두 마리 놓고 가시거나 1000원짜리 몇 장 주시면 고맙게 받고 그것도 못 주시면 그만이었다. 궁핍도 알고 가난도 아는 그였기에 정성으로 돌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의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도 전에 환자들을 만나며 상담했고, 그때의 그 경험들은 이 원장의 한의학 공부에 엄청난 기반이 됐다. 남들은 한 명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임상 경험을 이 원장은 수없이 많이 한 셈이다. 또한 비염치료약인 ‘청비환’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재수시절 만났던 한 할머니 덕분이었다.

알레르기 비염환자 ‘모여라’

재수시절 유달리 친하게 지내던 한복집 할머니께서 콧병을 치료하는 약이라며 나무껍질을 팔기에 다려 먹었는데 효험이 있었다고 전해줬다. 참느릅나무 뿌리였다. 이 원장은 이 약재의 효능을 경험하고 참느릅나무 뿌리에 다른 약재를 첨가해 알레르기성 비염, 축농증, 체질적으로 호흡기가 약한 사람들을 위한 약을 개발했다. 바로 ‘청비환’이다.

약효를 확신하고 있던 중 한 잡지사에서 이 원장의 일생과 청비환을 취재해갔다. ‘7전8기 한의사, 30년 된 콧병도 치료했다’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린 것이다. 기사가 나간 후 신문사, 방송국 등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고 취재를 해갔다. 한의원은 콧병을 앓는 환자들의 방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지금도 코 전문 한의원으로 이름나 전국각지에서 환자들이 찾아온다.

이 원장은 한의원을 찾아오는 환자가 크게 늘면서 빚을 다 갚고도 남을 만큼 돈을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전세방에서 살고 있다.

이 원장과 인터뷰를 마치며 그의 별명들을 다시 봤다. 단연 눈에 들어오는 것이 ‘괴짜 한의사’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괴짜일지도 모르겠다. 무모한(?) 도전의 달인이니까.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는 '괴짜'가 아니라 말씀대로 믿는 ‘신앙인’이었다. 그의 무모한 도전도, 간절한 바램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 바램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믿고 가는 거다. 그게 차이다. 덩그런 책상의 유리 밑에 빌립보서4장6~7절의 말씀성구 카드가 유난히 돋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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