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화해라는 이름의 대적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2-27 |
사탄이 화해의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며 당당히 도전을 하게 될 정도로 하나님께서 수모를 당하신 이유는 바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람 때문이었다. 사탄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천사장이었던 사탄은 하나님의 약점 몇 가지를 더 알고 있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약점이 있으시다니 사람과의 사랑에 빠지신 그 약점 말고도 또 다른 약점이 있으셨단 말인가.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점에 대해서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첫번째 약점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온갖 거짓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할 때에도 그에 대해서 똑같이 거짓말로 대항하실 수가 없다. 사탄은 이것을 잘 알기 때문에 마음놓고 하나님을 거짓말로 공격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두 번째 약점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바꾸실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므로 그분의 말씀은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뿐만 아니라 사탄에 대한 명령도 바꾸실 수가 없다. 에스겔 2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완전한 인을 주었고 지혜와 능력과 재능을 주셨으며 그를 측근의 천사로 임명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곧 사탄이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피조물의 불법을 감시하도록 위임을 받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를 유혹할때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찼으므로 그 세상은 자신의 손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 4:5-7) 바로 이 권리는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주신 권리였고 그래서 예수께서도 그 주장에 반박하지를 않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그 교만으로 인하여 죄 없는 예수를 처형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할 때까지 기다리셨고 마침내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의 악을 포용할 수 없으시며 죄를 범할 수도 없으시다는 약점이 바로 그것이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면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합 1:13) 사탄은 본래 거짓말쟁이이나 거짓말이 아닌 모든 것도 끌어다가 자신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다. 훌륭한 인격자들의 교훈이라든가 세상 모든 족속들의 체험에서 나온 지혜라든가 심지어는 성경의 가르침들까지도 모두 가져다가 거짓말로 꾸며낸 자기의 이론과 혼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의 교훈은 때로 똑똑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식으로 사탄은 자꾸만 남의 것을 가져다가 자신의 논리를 보충하기 때문에 사탄의 경전은 팔만대장경처럼 그 부피가 커지는 것이다. 최근에 논쟁이 되었던 성경과 불경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예수를 깎아 내리려는 어떤 사람들이 예수가 30세 이전에 인도에 가서 불경을 배웠다고 주장했고, 그런 책들이 서점가에 나돌아 호기심 많은 자들을 미혹한 적이 있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내세운 근거는 예수의 가르침 중에 불경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것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불경의 기본은 본래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경은 세상의 좋다는 교훈들과 가르침들을 다 모아다가 그 속에 넣어놓았다. 그 속에는 물론 인도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솔로몬에게 와서 배워간 지식들과 구약성경의교훈들도 상당히 섞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의 말씀만 전했지 자기의 말로 가르치지 않았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요 7:16) 즉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씀들만 가르치고 해석해 주셨으니 그 가운데 불경에 나오는 것고 비슷한 것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남의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것으로 가르치며 하나님은 없으니 인간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으라고 한 것은 사탄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므로 한국 불교 조계종의 이성철종정이 '사탄은 본래 부처'라고 선언한 것은 매우 정직한 고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한 모든 세상 종교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오히려 배타적이라고 비난한다. 왜 다른 종교들은 포용적이고 화해적인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배타적이냐고 묻는 것이다. 심지어는 기독교 내부에서도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타종교를 인정하고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시인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으로 하나님은 난감하게 되셨다. 이 점에서만은 하나님께서 관대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사탄은 모든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진리 아닌 것을 받아들이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진리 아닌 것을 받아들인 진리는 이미 진리가 아닌 것이며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하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악수를 하자며 화래론으로 공격을 가한다. 사탄은 적극적으로 화해를 제의하는데 왜 여호와는 화해를 거부하는가 하며 몰아세우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이성철 종정도 이러한 하나님의 약점을 조롱하며 자신의 초월적이고 포용적인 화해의 철학을 휘둘렀다. "장엄한 법당에는 아멘 소리 진동하고 화려한 교회에는 염불 소리 요란하다······." 이것은 루시퍼와 여호와의 화해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운 히람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 노승도 히람처럼 두 세력간의 화해를 촉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히람의 두 기둥이 사실은 화해가 아닌 도전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50년 수도했다는 이 노승의 법어는 법당을 장엄하다고 표현한 반면 교회는 화려하다고 야유함으로써 아직도 그 심중에 번뜩이고 있는 적의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사탄이 조롱을 한다 해도 하나님은 결코 사탄의 세력과 화래를 하실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히려 스스로 고통을 당하시는 방법으로 배신한 연인이 마음을 돌이켜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의 제물로 주신 일이었다.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그러므로 사탄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배신한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화목을 회복하는 길을 자신을 제물로 드려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는 방법뿐인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지 않고서 화해의 길은 없다. 하나님께 화해를 강요하며 스스로 관대하다고 선전하는 사탄의 주장은 오직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한 음모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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