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증거/성경의 증거

이집트 왕자에서 미디안 목동으로

은바리라이프 2008. 5. 20. 23:25

이집트 왕자에서 미디안 목동으로


1)[육적 불안정] 모세의 미디안 체류 - 지도1)


1a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①이집트 왕자는 폭력과 살인으로 추락한다. 그는 도망자가 되어 나그네 살이한다.

그는 왕궁생활에서 시골 사람으로 변신한다. 모세는 옷이 다르고, 말이 다른 곳에 적응한다.

그는 도망자 신세로 미디안에서 이방인과 결혼하고 목동으로 전락한다.

모세는 미디안 사제에게 더부살이로 얹혀살며 무료한 목동생활이다.


②[Nothing] 모세는 미디안에서 새로운 훈련을 받고 있다.

그는 양떼를 몰고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로 다니며 양의 필요를 채워준다.

모세의 미디안 체류기간에 양치기 훈련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수업이다.

모세는 자신이 양치기하는 의미를 알까? 그가 하나님의 계시를 알까?

실제로 하나님은 자신을 감추고 숨어 있는 하나님으로 활동 - 작업하시는 분이다.


③모세는 양떼의 인도자, 보호자, 공급자이다.

알퐁스 도테의 「별」이 생각난다. 모세는 누구와 말하나? 무엇을 먹나? 어디서 잠자나?


모세는 밤에 사나운 짐승이 양떼에 접근하면 어떻게 하나? 이것이 양치기 리더십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 부재의 현실 속에서 오히려 신의 살아계시고 현존하시는 역설이다.


2)하나님의 산 호렙은 어디 지역에 있을까?


1b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①모세는 양 떼를 인도하여 풀과 물을 찾아 시나이 반도(?) 호렙 산까지 왔다.

모세가 다시 이집트 땅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어떻게 국경선을 넘어 올 수 있을까?

* 벗어날 수 없는 공포 -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의 생존자들2)

신영순씨 - 불을 끈다며 고함을 지르고 다녔다. 6개월 폐쇄병동에서 전기치료를 받았다.

컴컴한 것을 싫어해서 빈방에도 불을 켜놓고 지낸다. 지하철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김남수씨 - 현재 자신이 어디 사는지 사고 전에 어디 살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제일 겁나는 것이 지하철 타는 것이고 캄캄한 것도 못 견딘다.

황천호씨 - 사고 2년이 지나면서 많이 좋아졌지만 지하철 근처도 가지 않는다.

* 안타까운 죽음 - 연천군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와 가족들

* 아무리 오래되어도 PTSD는 있다. - 종군 위안부 황금자 할머니

할머니는 부근의 고등학교 학생 두 명이 10년 동안 할머니를 성폭행하고 괴롭힌다고 한다.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협박까지 한단다.

덩치가 크다며 학생들의 모습까지 구체적으로 말한다.

그래서 서럽고 기막히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며 그 학교를 상대로 보상비를 요청하겠다.

아이들이 무서워서 저녁에는 문을 꼭 잠궈놓는다. 할머니는 PTSD를 앓고 있다.


②[미디안 - 시내산] 목동이 양 떼를 이끌고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인가?

미디안 땅에도 얼마든지 초원이 있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풀과 물이 없을까?

미디안에서 이집트 국경을 넘어 수천 리 거리인 시내산에 오르는 것은 상식인가?

나는 고대 관습, 지도, 모세의 심리, 시내산의 황금보물 이야기 등 연구할수록 수수께끼다.


③시내산 부근에는 고대 이집트의 터키옥 광산과 구리 광산지역이다.3)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 40년을 살았다. 그래서 이집트의 내부 정보에 정통하다.

[왕자-목동] 예로부터 광산이 있는 곳에는 군인들이 철통같이 지키기 마련이다.

왜 모세는 파라오가 지명 수배했는데 기름을 들고 불로 들어가나?


④[勿驚] 그렇다면 하나님의 산 호렙은 어디인가?

A.D. 4세기 전, 시내산은 미디안 즉 아라비아 지방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4)

B.C. 2세기에 번역된 그리스어 구약성서는 출애굽기의 미디안을 ‘미디인 도시’로 표기한다.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요벨서8:19에도 시내산이 아라비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A.D. 1세기 유대인 철학자 필로는 모세의 부인 십보라를 ‘아랍 여인’으로 기록한다.

아라비아에 선교차 들른 바울도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갈4:25) 언급한다.

A.D. 100년경 이스라엘 민족의 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 도착하기 직전에 머물렀던 광야가 나바티아 민족의 수도인 ‘페트라’라고 언급하면서 시내산은 마디아네(미디안) 지방의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기록한다.

이러한 유대인 기록에 영향을 받아 오리게네스, 유세비우스, 제롬 등의 초대 기독교 교부들은 시내산을 아라비아 광야의 미디안 도시 근처로 여겼다.


⑤이러한 기독교 전승은 A.D. 622년 이 지역이 무슬림들에 의해 정복되면서 사라진다.5)

로마 교황청은 A.D. 527년에 시내산 순례 성화로 무사산에 케더린 성당을 세운다.

교황청은 성지를 급조하여 이집트의 ‘무사산’ = 모세의 산 = 시내산으로 명명, 공포한다.6)


⑥혹시 ‘6일 전쟁’이라고 기억하시나요? 모세 다이안 장군의 지휘력을 아시나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의 석유 수입 경로를 차단하여 1967년 6월 5일 아침 8시에 침공한다.

시나이반도는 6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외부의 침략, 점령을 당한 적이 없다.

이스라엘은 개전 4일만에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여 자국영토의 4배-시나이반도를 차지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관심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1967-1982. 4. 15. 까지 시나이 반도를 다스렸다. 지질조사, 군사훈련을 한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시내산에서 출애굽 사건의 고고학적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15년간 시나이 반도를 샅샅이 탐사하고 연구하였다.7)

하지만 결과는 의외로 실망이었다.8)


⑦고고학자, 지질학자, 문화인류학자 등 동원하여 바둑판 쪼개듯이 면밀하게 조사한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들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무사산을 시내산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에 이른다.9)

시내산이 확실했다면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그 할배가 와도 반환하지 않았을 것이다.


⑧그러면 모세가 양 떼를 몰고 간 하나님의 산 호렙은 어디인가?

김승학, 『떨기나무』- 미디안 땅의 시내산을 찾아, 그 7년의 기록, 서울:두란노, 2007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고고학 지역’이라는 단어가 심장에 박힌다.

관심은 “고고학 지역, 관계자 외에는 왕명에 의거하여 출입을 금한다.”10)는 경고판이다.

나는 아랍어로 “앗뜨랏뜨(Atrat) = 고고학 지역”11)이란 단어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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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ivine Spark] 떨기나무 - 하나님의 불꽃


2a   거기에서 주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①하나님은 400 +40년 동안 침묵하셨다.

그래서 이집트에 사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부재하는 하나님이다. 얼굴을 돌리셨나?

하나님은 파라오의 히브리인 인종말살정책에도 침묵하신다. 부재하는 신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집트 파라오의 강수, 악수, 초강수에도 침묵하신다. 무능한 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오랜 세월의 부재를 마감하고 현존하실까?(출2:23-25)


②그 부재하시던 하나님께서 ‘키 작은 관목류의 가시덤불’에 임재하신다.

떨기나무는 호렙 산 주변의 시내 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스네”라는 가시덤불이다.

이 가시덤불은 아주 연하고, 약하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쓸모없는 나무다.

연약함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불이 붙었다면 삽시간에 타버리는 연약한 나무다.

우리나라의 목수라면 “나무 취급”도 하지 않을 쓸모없는 나무다. 그 나무가 누구인가?


③그가 이집트 왕자일 때는 곧고 굵게 자란 백향목이다. 우리나라의 적송이나 춘향목이다.

그 곧고 굵은 나무는 왕궁 건축에 쓰이는 木材다. 도편수는 그 목재를 보고 감동한다.

그 목재를 베고 운반하기 위해 죽어야 하는 지저분한 떨기나무류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④그런데 ‘주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이다.

하나님의 천사는 그 초라한 나무에 임재하신다. 그것도 불꽃으로 현현하신다.

이 연약한 나무는 모세의 절대적 좌절의 삶을 한 장면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왜 하나님은 쓸모없는 나무에 임재하시나? 그런데 왜 그 연약한 나무는 타지 않는가?


2b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⑤그 가시덤불-‘스네’에 불이 붙는다면 1-2분 정도이면 불에 타서 사그라지고, 재가 된다.

이상한 현상은 가시덤불에 불이 붙어서 활! 활~ 타오르는데 그 떨기나무는 그대로 있다.

지금 자연 속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태양을 먹은 새’의 실존이다.

모세는 절대적 포기의 삶 속에서 가시덤불의 존재를 본다. 그가 연약한 나무를 본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접촉점, 촉발점, 발화점, 출발점이다.


2. [divine Spark] 평범한 날에 비범한 사건


1)초자연적 현상 - 왜 떨기나무는 타지 않는가?


3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①모세는 무료하고, 지루하고, 단순한 삶의 반복이다.

그런데 40년 만에 깜짝 놀라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상탈출의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일반 상식에 따르면 불이 붙은 나무는 타서 숯 검댕이가 된다. 산불 현장을 보라.

모세는 놀라운 광경을 자세히 보고 싶다. 그 “스네” 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선다.


②모세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 지쳐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따분한 일상에 던져졌다.

그는 40년 동안 대화할 상대도 없다. 이집트의 학문과 지혜가 아무 소용도 없다.

그런데 모세에게 연구하고 싶은, 흥미진진한 사건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는 경이적인 사건 - 곧 하나님을 만나고 이해하는 갈망이 점화한다. 불타오른다.


2)모세의 소명체험 - “모세야, 모세야”


4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①모세의 눈에 “스네”에서 불꽃이 타오르는데, 그 연약한 “스네”가 소멸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기이한 장면, 그 경이로운 광경을 보려고 다가온다.

모세는 “불타는 스네”를 보려고 오는데, 하나님은 누구를 보고 계신가?


②하나님은 “스네” 가까이 다가온 모세에게 “불타는 스네” 가운데서 부르신다.

하나님은 “불타는 스네”에 집중하는 모세에게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신다.

모세는 얼마나 놀랐을까? 모세가 그 불꽃 가운데 누가 있으리라고 상상했을까?


③모세는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자기 이름을 부를 때 얼마나 당황했을까?

모세는 나무를 보려고 가는데 그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있고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그 ‘연약한 스네’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현존하신다. 그러면 ‘연약한 스네’는 타지 않는다.

모세는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④이 모든 현상은 평범한 날에 비범한 사건이다.

왜 하나님은 가장 연약한 가시덤불에 임재하시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그 보잘 것 없는, 전혀 쓸모없는 그 연약한 스네에 임재하시나?

그런데 왜 하나님은 활! 활~ 타오르는 불꽃인가? 그리고 왜 모세를 부르시나?

하나님은 어떻게 나를 아시나? 왜 나를 부르시나? 나는 무엇인가?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하나님의 현현 장소는 바로 연약한 ‘스네’ 한가운데 이다.


3. 살아계신 하나님의 부르심, 그리고 자비와 긍휼의 명령


1)절대자의 금지명령 -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5a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①잘 보세요. 사람이라면 그 불 속에서 나와서 모세와 악수하고, 대화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방법의 독특함이 여기에 있다.

사람과 사람은 차원이 같다. 그러나 창조주와 피조물은 차원이 다르다.


②모세가 가까이 간다고 차원이 다른 분을 육안으로 볼 수 없다.

하나님과 인간은 일정한 거리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넘어 설 수 없는 곳에 현존하신다.

하나님은 인간과 일정한 간격으로 동행하신다. 즉 하나님은 주권자, 통치자이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될 때 교만한 마음이 생긴다. 그것이 패망이다.


2)하나님의 제안 - “거룩한 땅과 생명관계”


5b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①하나님은 호렙 산의 땅을 거룩하다고 하신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래서 호렙 산은 하나님의 산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땅이다.


②하나님은 왜 실내도 아닌 산에서 “너는 신을 벗어라.”고 하시는가?

신을 벗어야 하는 이유는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땅에 접촉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는 것은 맨발로 땅을 밟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는 거룩한 땅과 직접관계가 되어야 한다. 곧 하나님과 직접관계다.

예수님의 비유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생명관계”다. 그러면 열매를 맺는다.

바울의 비유로는 “몸과 지체의 생명관계”다. 그러면 말씀에 순종이다.


4. 하나님의 자기소개 - 역사를 움직이는 힘


1)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모세의 두려움


6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①하나님은 불꽃 속에서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다.”고 소개하신다.

하나님은 이전부터 모세의 조상들과 관계를 맺어 온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소개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역사의 연속선이다.


②모세가 레위 자손으로서 히브리인의 조상들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도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고, 축복하시고, 그 후손에게 그 언약을 성취하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자기 선언을 듣고 두렵다, 그는 얼굴을 가린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2)기도 - 역사를 움직이는 힘


①하나님은 불꽃 속에서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왜 하나님은 오랜 세월 동안 똑똑히 보시고, 알면서 스스로 구원하시지 않으실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기록이다.


②하나님은 창조의 일에는 사람을 동원하시지 않는다. 인간은 창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작업 방식은 창조의 일 외에는 반드시 사람을 부르시고 그와 함께 일하신다.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공동 작업 = 공동 작품”을 만들기 원하신다.


③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할 ‘동역자’(fellow-worker)를 부르신다.

하나님은 그 동역자와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일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건이 있다. 하나님은 동역자를 세우기 위해 조건을 기다린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그 조건이 무엇일까?


7    주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④여기에서 [보고], [듣고], [알고]라는 세 동사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은 동역자를 구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신다. 언제까지 보고 계실까?


⑤하나님은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인간의 기도이다.

하나님은 이집트 파라오의 억압으로 괴로울 때,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움직이신다.

그 때 하나님은 먼저 동역자를 부르신다. 그 동역자는 ‘스네’같은 연약한 인간이다.

사랑하는 지체 여러분! 하나님은 교만한 인간이 아닌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3)하나님의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심의 궁극적 의도와 목적


8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①하나님은 “이제 내가 내려가서”라고 하신다.(창11:5, 7)

하나님은 40년 [보고] + [알고]는 기다리신다. 그러나 [듣고] + [알고]는 내려오신다.

그 때도 하나님은 동역자를 선택하시고 내려오신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면 “공동 작업 = 공동 작품”을 만드신다.


②하나님 하강의 목적 :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심은 “하나님 백성의 해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구원]과 [복지] 사역이다.


③[약속과 성취]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 가려고” 공동 작업하신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이렇게 설명하신다.

㉠아름다운 땅이다.

㉡넓은 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최고로 좋은 땅에 여섯 이방 족속이 살고 있는데 그 땅으로 인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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