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론, '신앙인 부시' 조명(펌)
신앙인 '부시' 조명
이라크전 앞둔 부시의 보수 신앙생활 묘사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신호에서 미국 이라크 공격을 추진하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앙적인 생활을 커버스토리로 다뤄 화제가 되고 있다.
커버 페이지에 '부시와 하나님(Bush and God)'라는 제목을 달고 뉴스위크지는 부시 대통령의 하루 일과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신앙적 발언에 대해 요약했다.
기독교인으로서 눈에 띄는 부시의 가장 신앙적인 모습은 바로 성경공부다. 그는 아침에 가장 먼저 성경공부를 한다고 한다. 백악관이 곳곳에 성경공부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부시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오스웰드 체임버스 목사의 저서 '나의 모든 것을 가장 높은 곳에 계신 주님을 위해(My Utmost for His Highest)'를 매일 읽으며 동료들과 내용을 나눈다.
그의 신앙적 가치관은 연설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지난 기독교방송 언론인들의 모임에서 부시는 "테러리스트들은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보는 바 대로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싫어한다. 미국은 전 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자유를 전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조찬기도회에서는 "모든 삶과 역사의 뒤에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때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는 한 목회 사회운동가들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는 동안 자신의 술에 빠져 있었던 시절을 털어놓았다.
"내가 17년전 술을 끊지 못했더라면 지금 대통령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술을 끊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이라크와의 전쟁이라는 큰 짐을 진 부시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을 부도덕하다고 보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그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통해 역사하는 악을 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전쟁은 우리가 맞부딪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 역대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축복을 빌었다. 모든 미국 대통령들이 성경을 앞에 두고 성서적 가치관을 가지고 도덕적인 원칙을 따라 나라를 이끌 것을 약속했다. 영국의 유명한 작가 G. K. 체스터톤은 미국을 "교회의 영혼들로 구성된 나라", 대통령은 "강단 앞에 서있는 목사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신뢰한다. 보수 신앙인들은 부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이며, 내년에 지지자들의 수를 더 늘리는 일이 대통령의 정치 고문 칼 로브의 최우선 과제이다. 그는 임신 중절 합법화에 반대하는 재판 문제와 인간 복제 반대 문제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 선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한 500억 달러 프로젝트로 그의 바쁜 계획 중에 포함돼 있다. 이런 문제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시의 든든한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전쟁을 통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금 현실은 부시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전쟁은 논쟁에 휩싸여 있고, 북한 핵문제는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필리핀 군과 터키 국회는 미국 군대 수송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시의 고문들은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신앙에 눈이 먼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측근들은 대통령이 상당히 조용한 편이지만, 그의 뜨거운 신앙이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신앙은 자신감을 넘어선 그 무엇이 되고 있다. 상무부 서기 돈 에반스는 그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열정과 선과 악을 구별하는 명확한 시각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이런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이야기는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에서부터 시작된다. 옛날 코네티컷의 기독교인들은 사나운 사람들이었다. 이에 반해 1946년 조지 W. 부시가 거기서 태어났을 무렵, 그의 아버지는 감독교회(에피스코팔) 신자였는데 '의무, 명예, 국가'를 강조하는 사람이었고, 세계2차대전의 영웅이자 격식을 중시하는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은 신앙보다는 형식에 매우 철저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에피스코팔 신자들을 옛 농담으로 '하나님의 얼어붙은 백성들(God's Frozen People,-God's Chosen People을 바꿔 말함)'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48년 서부 텍사스 석유 지대로 이사를 가면서 부시 일가는 많은 동부 출신 아이비 리그 이민자들과 합세해 중부 지방의 장로교회를 다녔다. 그곳은 다른 교회들보다 안정적이고 사람들이 보다 격식을 갖추었다.
부시의 아버지는 돈을 벌며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조지'는 착실한 아들이자 교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 그가 성경 읽기를 즐겨했다고 말했다. 그가 다시 동부의 사립 고등학교로 오면서 그는 학교의 '집사'가 됐다. 그러나 그는 집사의 직분으로 신앙을 키운 것이 아니라 짓궂은 장난을 일삼았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그 탕자의 수준이 프로였을 때 더 극적이며 감동적이다. 부시는 세미 프로였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회심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1977년 로라와 결혼한 뒤 부시는 아내의 신앙을 따라 감리교회를 다니게 됐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회 안에서도 열심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심각한 대주가였다. 그는 밤낮을 가릴 것 없이 술을 찾았고, 파티에서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그의 친구들은 로라가 그의 술버릇에 질려버려 부부관계로 악화됐다고 말했다.
그가 새로운 길을 걷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바로 상무부 서기 돈 에반스에 있다. 에반스는 당시 급속도로 발전하는 석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1984년 완전히 망하자 회사 빚더미에 앉게 됐다. 그는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좌절했고 우연히 초교파적인 '커뮤니티 바이블 스터디'라는 성경 공부 그룹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조지 부시를 초청했고 1년간 신약전서를 읽으며 사람들과 토론을 했다. 2년간 이 둘은 누가가 쓴 사도행전 등을 읽으면서 2가지 결론을 내렸다. 다마스커스에서 바울이 개종한 것과 교회 개척의 이야기들과 자신을 친구로 맞아 주는 예수에 대해 부시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성경공부는 대통령의 미래를 여러가지로 바꿔놨다. 미국 유명 사립고등학교와 예일, 하버드 대학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지만, 그의 시선을 집중시킨 책은 바로 성경이었다.
수년간 아침 조깅을 거르지 않은 부시는 성경공부가 정신적 영적 수양에 가장 좋다고 생각했고, 그의 삶에 커다란 장애가 됐던 술을 끊게 됐다.
부시는 술을 끊기 위해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았지만 성경공부가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부시는 1986년 여름 술을 끊었고, 당시 친구들은 이 사건이 '굿바이 잭 다니엘, 헬로우 지저스'였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앙을 키워온 부시는 매일 성경 공부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전 7시 대통령으로서의 공식 일과를 시작한다.
이라크 개전을 앞두고 성경 공부 모임을 하는 백악관의 모습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일 것이다.
역대 미 대통령들의 신앙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개인적인 신앙을 이야기할 때마다 시민들은 그 신앙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와 정치를 연결시켜 줄 만한 단서들을 찾는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과 정치를 연결시켜 줄만한 단서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는 모두 아내가 다니는 교회를 출석했다. 두 교회 모두 감리교회였다. 그러나 이 두 대통령이 정치적으로는 매우 달랐다.
클린턴에게 있어서 찬송가를 부르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일종의 공연예술이었으며 일요일이면 성경책을 들고 거리에 나서 사교적인 모임에 한시간동안 참석하곤 했다. 이러한 클린턴을 기억하는가? 그의 임기중에 미국에서는 침례교단이 오히려 기독교계의 중심이 되지 않았던가. 부시의 경우는 이와 같은 괴리가 더욱 심하다.
이들이 주는 교훈은 한 인물이 소속된 교파는 그의 껍데기만을 설명해 줄 뿐, 그의 진면목을 말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장로교인이며 칼빈주의자인 윌슨 우드로우 정도만 가계의 종파를 보고 성품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이다. 존 F. 케네디의 카톨리스즘은 1960년대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정치적인 우세 요인이었지만 그의 생애에서 그것은 그저 유산일뿐이었다. 레이건은 탈교파적 사회에서의 첫 대통령이었다. 그는 교회에 출석한 경험이 거의 없으며 그의 종교적 웅변술만이 그가 크리스천임을 말해 주었다.
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처럼, 지미 카터는 거듭난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그의 영적 중생은 남침례교단의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형성된 통과의례적 중생이었다. 반면 부시의 영적 전환은 관례적인 교회문화로 인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고백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부시의 믿음을 다른 대통령들의 그것과 차별화 시키고 있다. 프린스턴대 로버트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내 성인 10명중 4명은 기도모임이나 성경공부 모임 등의 소그룹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그룹 기독교 신앙의 개인적 경건성은 정치적인 조직체를 통치하는데 있어서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인다. 믿음을 정치적인 원리들로 해석하는 것은 성직자들이 시도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부시의 인정많은 보수주의는 연합감리교의 자유주의적 사회 신념과 매우 닮았다. 대통령 임기 초기에 부시는 자신과 절친했던 프린스톤의 존 딜루리오 교수를 끌어들여 신앙에 기반한 주도권을 잡는데 있어 핵심측근으로 삼았다. 그는 부시에게 칼빈 신학이 이 세계 역사에 어떠한 반향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자세히 강의해 주었다. 그 자문은 물론 성경의 언어를 통해 이뤄졌고 그를 통해 부시는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최선의 종교적 웅변술을 얻게 되었다
이라크전 앞둔 부시의 보수 신앙생활 묘사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신호에서 미국 이라크 공격을 추진하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앙적인 생활을 커버스토리로 다뤄 화제가 되고 있다.
커버 페이지에 '부시와 하나님(Bush and God)'라는 제목을 달고 뉴스위크지는 부시 대통령의 하루 일과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신앙적 발언에 대해 요약했다.
기독교인으로서 눈에 띄는 부시의 가장 신앙적인 모습은 바로 성경공부다. 그는 아침에 가장 먼저 성경공부를 한다고 한다. 백악관이 곳곳에 성경공부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부시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오스웰드 체임버스 목사의 저서 '나의 모든 것을 가장 높은 곳에 계신 주님을 위해(My Utmost for His Highest)'를 매일 읽으며 동료들과 내용을 나눈다.
그의 신앙적 가치관은 연설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지난 기독교방송 언론인들의 모임에서 부시는 "테러리스트들은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보는 바 대로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싫어한다. 미국은 전 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자유를 전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조찬기도회에서는 "모든 삶과 역사의 뒤에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때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는 한 목회 사회운동가들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는 동안 자신의 술에 빠져 있었던 시절을 털어놓았다.
"내가 17년전 술을 끊지 못했더라면 지금 대통령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술을 끊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이라크와의 전쟁이라는 큰 짐을 진 부시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을 부도덕하다고 보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그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통해 역사하는 악을 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전쟁은 우리가 맞부딪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 역대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축복을 빌었다. 모든 미국 대통령들이 성경을 앞에 두고 성서적 가치관을 가지고 도덕적인 원칙을 따라 나라를 이끌 것을 약속했다. 영국의 유명한 작가 G. K. 체스터톤은 미국을 "교회의 영혼들로 구성된 나라", 대통령은 "강단 앞에 서있는 목사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신뢰한다. 보수 신앙인들은 부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이며, 내년에 지지자들의 수를 더 늘리는 일이 대통령의 정치 고문 칼 로브의 최우선 과제이다. 그는 임신 중절 합법화에 반대하는 재판 문제와 인간 복제 반대 문제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 선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한 500억 달러 프로젝트로 그의 바쁜 계획 중에 포함돼 있다. 이런 문제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시의 든든한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전쟁을 통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금 현실은 부시에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전쟁은 논쟁에 휩싸여 있고, 북한 핵문제는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필리핀 군과 터키 국회는 미국 군대 수송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시의 고문들은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신앙에 눈이 먼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측근들은 대통령이 상당히 조용한 편이지만, 그의 뜨거운 신앙이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신앙은 자신감을 넘어선 그 무엇이 되고 있다. 상무부 서기 돈 에반스는 그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열정과 선과 악을 구별하는 명확한 시각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이런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이야기는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에서부터 시작된다. 옛날 코네티컷의 기독교인들은 사나운 사람들이었다. 이에 반해 1946년 조지 W. 부시가 거기서 태어났을 무렵, 그의 아버지는 감독교회(에피스코팔) 신자였는데 '의무, 명예, 국가'를 강조하는 사람이었고, 세계2차대전의 영웅이자 격식을 중시하는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은 신앙보다는 형식에 매우 철저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에피스코팔 신자들을 옛 농담으로 '하나님의 얼어붙은 백성들(God's Frozen People,-God's Chosen People을 바꿔 말함)'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48년 서부 텍사스 석유 지대로 이사를 가면서 부시 일가는 많은 동부 출신 아이비 리그 이민자들과 합세해 중부 지방의 장로교회를 다녔다. 그곳은 다른 교회들보다 안정적이고 사람들이 보다 격식을 갖추었다.
부시의 아버지는 돈을 벌며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조지'는 착실한 아들이자 교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 그가 성경 읽기를 즐겨했다고 말했다. 그가 다시 동부의 사립 고등학교로 오면서 그는 학교의 '집사'가 됐다. 그러나 그는 집사의 직분으로 신앙을 키운 것이 아니라 짓궂은 장난을 일삼았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그 탕자의 수준이 프로였을 때 더 극적이며 감동적이다. 부시는 세미 프로였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회심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1977년 로라와 결혼한 뒤 부시는 아내의 신앙을 따라 감리교회를 다니게 됐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회 안에서도 열심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심각한 대주가였다. 그는 밤낮을 가릴 것 없이 술을 찾았고, 파티에서는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그의 친구들은 로라가 그의 술버릇에 질려버려 부부관계로 악화됐다고 말했다.
그가 새로운 길을 걷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바로 상무부 서기 돈 에반스에 있다. 에반스는 당시 급속도로 발전하는 석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1984년 완전히 망하자 회사 빚더미에 앉게 됐다. 그는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좌절했고 우연히 초교파적인 '커뮤니티 바이블 스터디'라는 성경 공부 그룹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조지 부시를 초청했고 1년간 신약전서를 읽으며 사람들과 토론을 했다. 2년간 이 둘은 누가가 쓴 사도행전 등을 읽으면서 2가지 결론을 내렸다. 다마스커스에서 바울이 개종한 것과 교회 개척의 이야기들과 자신을 친구로 맞아 주는 예수에 대해 부시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성경공부는 대통령의 미래를 여러가지로 바꿔놨다. 미국 유명 사립고등학교와 예일, 하버드 대학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지만, 그의 시선을 집중시킨 책은 바로 성경이었다.
수년간 아침 조깅을 거르지 않은 부시는 성경공부가 정신적 영적 수양에 가장 좋다고 생각했고, 그의 삶에 커다란 장애가 됐던 술을 끊게 됐다.
부시는 술을 끊기 위해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았지만 성경공부가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부시는 1986년 여름 술을 끊었고, 당시 친구들은 이 사건이 '굿바이 잭 다니엘, 헬로우 지저스'였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앙을 키워온 부시는 매일 성경 공부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전 7시 대통령으로서의 공식 일과를 시작한다.
이라크 개전을 앞두고 성경 공부 모임을 하는 백악관의 모습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일 것이다.
역대 미 대통령들의 신앙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개인적인 신앙을 이야기할 때마다 시민들은 그 신앙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와 정치를 연결시켜 줄 만한 단서들을 찾는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과 정치를 연결시켜 줄만한 단서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는 모두 아내가 다니는 교회를 출석했다. 두 교회 모두 감리교회였다. 그러나 이 두 대통령이 정치적으로는 매우 달랐다.
클린턴에게 있어서 찬송가를 부르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일종의 공연예술이었으며 일요일이면 성경책을 들고 거리에 나서 사교적인 모임에 한시간동안 참석하곤 했다. 이러한 클린턴을 기억하는가? 그의 임기중에 미국에서는 침례교단이 오히려 기독교계의 중심이 되지 않았던가. 부시의 경우는 이와 같은 괴리가 더욱 심하다.
이들이 주는 교훈은 한 인물이 소속된 교파는 그의 껍데기만을 설명해 줄 뿐, 그의 진면목을 말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장로교인이며 칼빈주의자인 윌슨 우드로우 정도만 가계의 종파를 보고 성품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이다. 존 F. 케네디의 카톨리스즘은 1960년대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정치적인 우세 요인이었지만 그의 생애에서 그것은 그저 유산일뿐이었다. 레이건은 탈교파적 사회에서의 첫 대통령이었다. 그는 교회에 출석한 경험이 거의 없으며 그의 종교적 웅변술만이 그가 크리스천임을 말해 주었다.
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처럼, 지미 카터는 거듭난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그의 영적 중생은 남침례교단의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형성된 통과의례적 중생이었다. 반면 부시의 영적 전환은 관례적인 교회문화로 인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고백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부시의 믿음을 다른 대통령들의 그것과 차별화 시키고 있다. 프린스턴대 로버트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내 성인 10명중 4명은 기도모임이나 성경공부 모임 등의 소그룹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그룹 기독교 신앙의 개인적 경건성은 정치적인 조직체를 통치하는데 있어서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인다. 믿음을 정치적인 원리들로 해석하는 것은 성직자들이 시도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부시의 인정많은 보수주의는 연합감리교의 자유주의적 사회 신념과 매우 닮았다. 대통령 임기 초기에 부시는 자신과 절친했던 프린스톤의 존 딜루리오 교수를 끌어들여 신앙에 기반한 주도권을 잡는데 있어 핵심측근으로 삼았다. 그는 부시에게 칼빈 신학이 이 세계 역사에 어떠한 반향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자세히 강의해 주었다. 그 자문은 물론 성경의 언어를 통해 이뤄졌고 그를 통해 부시는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최선의 종교적 웅변술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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