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의 악동 알렉산더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11-20 |
에덴 동산에서부터 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뱀의 유혹으로 금단의 열매를 먹은 사람은 그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선악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 자리가 차지하려는 반역의 욕망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은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여기서부터 이미 사람의 인격 속에는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적인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적인 생각이 흔재하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기 시작하고 사람의 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결국 사람들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나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던 대표적인 불순종의 인물이 바벨탑을 건설했던 니므롯의 반역 정신은 새로운 신들을 만들어낸 가나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나안의 맹주였던 두로 왕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자신을 신이라 하였고 또 모든 세상의 영웅들에게 너도 신이 될 수 있다고 부추겼다. "인자야 너로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갤 28:2) 이 두로 왕이 바로 다윗과 솔로몬의 나라를 무너뜨렸던 히람이었고 아합을 망하게 했던 엣바알이었던 것이다. 그 두로를 집어삼켰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스스로 천하의 큰 권세를 잡았으니 이만하면 신의 자리에 앉을만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때부터 왕은 짐승의 모습으로 변모하여 들에서 풀을 먹으며 7년을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바벨론의 뒤를 이어서 천하를 지배하게 되었던 페르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바벨론을 기습하여 탈취한 고레스 왕은 포로로 잡혀와있던 유대인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등 합리적인 치리에 힙썼으나 그 뒤를 이은 왕들은 점점 교만해져서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다. 특히 에스더 시대의 아하수에로 즉 크샤야르샤왕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고 헬라를 침공했다가 살라미스에서 패전하였고 에스더 사건이 있은지 11년후인 BC465년에 자신의 침실에서 암살을 당했다. 이렇게 페르샤가 바벨론의 권력을 이어받아 세계를 지배한 사실을 적그리스도의 반역이 함의 집안에서 야벳의 집안으로 번져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함의 아들인 가나안(창10:6)에서 비롯된 반역 정신은 구스의 아들 니므롯(창10:8)에게 전이되고 애굽과 붓과 바벨론에 이르기까지 주로 함의 집안에서 번져갔다. 그러나 바벨론의 권력을 이어받은 페르샤 민족은 야벳의 세째 아들인 마대 족속(창10:2)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 반역 정신은 야벳의 네째 아들인 야완 즉 그리스로 넘어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BC356년, 마게도니아의 수도 페라에서 필립2세와 에피루스의 음녀 올림피아스 사이에 알렉산더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헬라의 제패를 꿈꾸고 있던 왕은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그 아들의 가정교사로 초빙하였다. 플라톤에게서 인본주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 철학자는 비범한 소년 알렉산더에게 자신의 이념을 주입하기 시작하였다. 어느날 미에자 교외의 한 동굴숙에서 알렉산더를 가르치고 있던 이 철학자는 문뜩 이마가 섬뜩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리로 손을 가져갔다. 동굴의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던 것이다. 갑자기 아리스토텔레스는 크게 흥분하면서 알렉산더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자여, 비가 왜 내리는지 아십니까? 땅에서 위로 올라가던 수증기가 찬 공기에 부딪혀서 물방울로 응축되고 그것이 다시 비가 되어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뚜껑을 만들어 덮을 수만 있다면 인공으로 비가 오게 할 수도 있겠군요"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으며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를 인본주의의 악동으로 길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알렉산더는 어려서부터 그 모친 올림피아스가 애굽의 암몬 신과 동침하여 그를 낳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났다. 그는 부친 필립이 전쟁에 나가서 승리할 때마다 탄석을 했다. "아버지가 다 정복해버리면 나는 무엇을 하란 말인가?" 마침내 그 부왕 필립은 BC336년에 암살을 당했다. 그리스의 사학자인 '플루타크'는 그의 '영웅전'에서 이 사건의 배후 조종자로 왕비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더에게 그 혐의 를 두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알렉산더는 아버지를 내 몰고 그 자리를 차지한 가나안의 바알 신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신의 모델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볼 수 있다. 20세에 왕의 자리에 오른 알렉산더는 그리스 모든 시의 대표들을 고린도에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으며 이 회의에서 그는 헬라 연맹의 맹주로 선출되엇다. 이때로부터 그는 헬라 연맹군을 이끌고 페르샤 정벌에 나섰고 두로 즉 페니키아를 집어삼켰으며 애굽을 정복하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암몬 신의 아들'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그는 다시 페르샤의 딸인 스타티라와 결혼하고 스스로 신이 되어 자신을 신으로 섬기라고 명령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라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의 도시를 모든 나라에 건설하여 그 수가 70에 이르렀다. 그는 전 세계를 헬레니즘의 제국으로 만들고 스스로 그 제국의 신이 되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본래 인본주의자였고 그의 이름 알렉산더는 '인간의 수호자'라는 뜻이엇는데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함으로서 그 인본주의의 허위성을 드러낸 셈이엇다. 또 그런 행위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훼방하는 가짜 그리스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스스로 인류의 통일을 위해서 일한다고 말했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는 BC323년 바벨론에서 아라비아 원정을 계획하던 중 열병에 걸려 죽었는데 기이하게도 그가 죽었을 때의 나이는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던 때의 나이와 같은 33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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