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바울서신

연구 3 하나님의 신실성과 경건훈련(살후3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21:10
연구 3 하나님의 신실성과 경건훈련(살후3장)
연구 3 하나님의 신실성과 경건훈련(살후3장)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일부 교인들의 문제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견책함으로 다루어 주고 있다. 단 이와 더불어 격려와 위로도 잊지 않고 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바울 스스로가 사도임에 불구하고 양무리에게 경건하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자세를 본 장에서 배울 수 있다.

 

1. 바울의 기도 요청(살후3:1-5)

 

바울은 참으로 겸손한 분이시다. 자기에게 주께서 맡긴 양무리(데살로니가 교인)에게 겸허하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단 양무리에게 바라는 바도 있다. 바울은 무엇을 기도해 주기를 원하는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로부터 무엇을 확신하는가? 그리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기원하는가?

 

1) 양무리를 위한 기도

바울이 양무리들에게 기도받기를 원하는 것은 첫째, 복음 사역의 성공이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 또한 바울과 같은 동역자에 의해 되어지며 이에는 기도 지원이 필요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보호를 위해서이다. 복음 사역자들은 어디서나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그들의 목숨까지도 위태롭다. 바울 또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고후11:23-33). 복음과 자신들의 연약함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면서도 또 바울은 양무리들을 격려한다(살후3:3). 바울이 확신하는 것은 양무리들이 자신이 명한 것을 지킬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형(행하고)과 미래형(행할줄)을 쓴 것은 바울이 확신할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양무리들을 대해줄 것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또 양무리들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기를 기도한다(살후3:5).

 

2)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

요즘 교회에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다. 그리고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것을 자랑하는 교회도 많다. 어떤 교회에서는 자신들이 파송한 선교사의 사역을 자랑하기도 하고 선교사가 잘못하였을 경우에는 문책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환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파송한 선교사를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 사역을 위해, 또 문화가 다르고 이질적인 기후와 핍박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안전과 보호와 건강과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2. 규모 있는 삶(살후3:6-15)

 

데살로니가 교회의 일원 중에 재정을 잘못 이해하여 규모없이 사는 이들을 바울은 엄하게 꾸짖고 있다. 꾸짖는 바울의 권위는 무엇인가? 이을 해야 하는 당위성은 무엇인가? '일만 만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규모없이 행하는 이들을 교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1) 올바른 길을 가르치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도적인 권위로 엄히 명하고 있다(살후3:6). 사도의 권위는 주님의 권위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행하는 대사이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내린 저주 이후 인간은 수고하여야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유대인 격언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가 있다. 생존을 위하여 때로는 자아 실현을 위해서도 우리는 노동하여야 한다. 살후3:11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의 의미를 존 낙스(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는 '자신의 일은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는 자들'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들을 바울은 출교시키라고 명하지는 않고 있다.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껴 그들 스스로 바른 길을 가도록 교회가 처리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복음이 이방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형제이기 때문이다.

 

2) 열심 있는 삶

'일'의 의미는 생존권 확보와 자아 실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게으른 자에 대해서 엄히 꾸짖고 있다. 6일간 열심히 일하고 안식일에 쉬는 것이 주의 뜻이다. '일'은 이렇게 주의 뜻이요, 계명이며 실제적으로도 우리를 생존케 한다.

또한 우리를 즐겁게 해주며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더 나아가서 나태함과 죄의 유혹에서 건져준다. 그러므로 행여 잘못된 재림 사상으로 나태함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내일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 자세가 종말을 맞이하는 성도의 태도이다.

 

3. 주님의 은혜(살후3:16-18)

 

바울은 편지의 끝맺음을 맺으면서 축복과 기도를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친필로 문안한다는 말을 삽입하였다. '친필로 문안한다'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1) 평강을 주심

바울은 주께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였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도 모든 인류의 공통된 소망이다. 평화는 주님이 함께 하실 때만 얻을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친필로'라는 의미는 고전16:21, 갈6:11, 골4:18에서도 나오며, 이는 이 서신에 바울의 권위를 더하는 것을 의미하여 악한 자들이 편지를 날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2) 영원한 평강

우리 인사말에 '안녕하세요'가 있다. '안녕', 즉 어떤 의미에서는 '샬롬'(평화)과 같다. 많은 나라 인사말에 '평화', '안녕'은 들어 있다. 그만큼 인류의 보편적인 희망 사항이다. 그러나 이 '안녕', '평화'는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평화의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

 

바울은 목자로서 따뜻함과 엄격함과 겸허함 그리고 권위를 갖춘 분임을 알 수 있다. 철저히 주님께 의지하면서 자신의 양무리(데살로니가 교회)를 견책도 하고 격려도 하고 중보기도 하며 더 나아가 겸허히 기도를 요청한다. 이 모든 것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함을 그 스스로 본을 보여 주셨다(살후3:9). 잘못된 신앙은 잘못된 삶으로 인도한다. 올바른 종말 사상으로 인생을 열심 있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함을 배운다. 사도요 목자인 바울에게서 참다운 삶의 모범을 배우며, 이 모든 기초는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는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