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장은 그리스도께서 대속적 죽음으로 새 생명의 공동체, 즉 교회를 조성하시고 머리로 존재하심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그분의 정체와 사역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분이 베푸신 새 생명은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갖고 우리는 새 생명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세우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새 생명의 삶 (골1:1-4)
바울은 골1:5,6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복음을 통해 새 생명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러면 이 새 생명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바울은 이 새 생명의 삶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죄사함을 얻고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하는 아들이 나라로 옮겨져서 사는 삶이라 말한다(골1:13,14). 베드로는 이 나라의 삶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으로 묘사한다(벧후1:11). 그러면 이런 새 생명의 삶, 세 세대의 변화된 모습의 특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이란? 죄용서받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새로운 삶의 특성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삶의 변화에는 빛에 거하는 것과 죄용서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빛에 거하다 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성령의 역사로 가리워졌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 후로 빛의 자녀들은 자신의 죄된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의 나라의 백성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로 인해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 믿는 자는 결코 정죄받지 않으며 모든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이다(롬8:1,2).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전되어 옛날의 사단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제 이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롬8:12-17).
2)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새 생명의 씨앗을 받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는 삶이 필요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성숙된 삶을 통해 죄악의 문제로 침체된 모습보다는 승리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2. 그리스도의 존재 규명과 사역(골1:16-24)
새 생명을 부여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만한 자격을 소유하신 분인가? 그렇다면 바울은 그 변증을 위해 어떤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화해 제사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1) 그리스도의 사역
바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변증하기 위해 골1:15에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어구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형상이란 현시(顯示), 다시 말해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한다. 즉 예수는 하나님과 닮은 꼴, 아니 성육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든 창조물에 선재하신 분으로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부활을 통해 새 인류의 시작이 되시고 그 공동체 즉,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말하고 있다(골1:20). 여기서 '화목'이란 창조 때의 완전한 상태와 본래적인 사랑으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즉 십자가의 피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분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화해제사가 필요했던 이유는,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골1:21)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멀어짐은 자기 중심적이고 자만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2) 상한 마음을 치유
십자가의 능력은 모든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현재 여러분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가? 슬픈가? 분노로 가득 차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 앞에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그분을 바라보라. 그리하면 십자가의 능력을 통한 치유하는 사랑과 용서와 용기가 우리 모두의 감정 속에 침투함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증거(골1:25-29)
바울이 전한 말씀은 비밀이었다. 이 비밀은 과거에 감추어졌다가 이제 성령에 의해 드러나게 된 사실, 즉 신성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엡1장). 그런데 이 비밀이 그리스도로 지칭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바울의 모습 속에서 어떤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가?
1) 그리스도의 증인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의 담이 무너지고 하나가 되어 그분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엡1:10에서 그 비밀을 정의하기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골1:29은 바울이 지칠 줄 모르는 근면한 일꾼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런 일을 가능케 했던 것은 그 비밀의 근원이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었다. 바울은 이것이 믿음과 관련되기보다 하나님의 주신 사명에 수고하고 애쓸 때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2) 우리의 태도
믿는 자들을 영적으로 성숙케 하기 위해서는 수고와 힘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목회자들은 이런 태도보다는 외형적 성숙을 위해 많은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하노라'는 바울의 말이 두렵게 느껴진다. 바울과 여러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전달된 복음을 이제 우리가 변질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그리스도의 기독론적 성격 규명을 통해 그분이 하나님이심과 구원의 주체자로서의 당위성을 증거하였다. 더욱이 그분의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은 오늘날도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신다. 그러나 오늘 우리 목회 현장에 이런 능력이 얼마나 선포되고 있는가? 현대와 같이 인간성이 상실된 시대에 하나님의 능력 선포는 상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갖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