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나님의 분리와 소외로 인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죄성을 지적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낙관적인 면으로 인도한다. 에베소서 2장은 이와 같은 본래의 인간과 은혜로 인해 변화될 수 있는 인간 사이의 생생한 대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대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소외 문제를 화해로 대체시키고 있다.
1. 인간의 본성(엡2:1-3)
바울은 여기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아직 하나님의 자비를 입지 못한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상태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그것은 죽음, 중노릇, 저주 등이다. 이처럼 극심히 부패한 인간의 상태는 어느 특정 민족과 계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교도, 유대인 그리고 모든 인류의 죄를 차례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 인간의 상태가 죽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무엇의 종이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
1) 죽음, 종, 저주
우리는 종종 예수그리스도를 비난하면서도 매우 생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죽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장 문제시되는 영적인 영역에서 그들은 전혀 생명을 소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엡4:18). 그들은 눈이 멀어서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며 귀가 먹어서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그들은 마치 시체처럼 하나님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세상의 풍속을 좇는 것이다(엡2:2). 여기서 '세상의 퐁속'은 하나님을 떠난 사회 전체의 가치 체제를 의미한다. 반도덕적이고 배금주의, 빈곤, 살인 등 비인간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우리는 '세상 풍속'의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 인한 진노가 내려져 있다(롬3:22 ; 롬6:23). 그리고 아담을 조상으로 한 우리도 예전에는 대표의 원리에 의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었다(롬5:12-14 ; 엡2:2)
2) 새 생명의 축복
아무리 많은 물질과 명예가 있다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자들은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아직도 세상 가치에 여러분의 새생명이 가리워져 있다면 다시 한 번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여러분의 새 생명의 가치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은혜(엡2:4-10)
엡2:4의 '그러나 하나님은'이란 두 음절은 앞 단락과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타락한 인류의 절망적인 상태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구원 사역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진노의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 긍휼을 베푸셨다. 우리는 죽었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구원하셨다는 것이다(엡2:5,8). 그러면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새로운 구성원의 특징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결속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였으며 그가 존귀히 되신 것처럼 이들도 존귀케 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주권을 행사하는 그곳에서(엡1:20) 믿는 백성들에게 복을 주신다(엡1:3). 더욱이 이것은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시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승리를 약속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생애에 나타내려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존귀케 하심으로 그의 능력이 지극히 크심을 보이셨다(엡1:19,20). 그리고 우리를 부활시키시고 회복하심으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증거하시고 이것은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자비와 은혜의 산 증거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에게로 사람들을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을 바울은 '선물'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자랑하는 일이 불안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불순종의 일만 행하였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가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3. 새로운 공동체(엡2:11-22)
성경은 소외에 대하여 두 가지로 말하고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이고(엡2:1-10), 다른 하나는 인간들 상호간의 소외이다(엡2:11-22). 특히 이방인들은 이스라엘로부터 소외된 자들로 지칭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 시키심으로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창설하셨다. 그러면 소외된 인류와 우리의 관계는? 그리고 화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현재 우리의 신분은 무엇인가?
1) 새로운 인류
바울은 '그러므로 기억하라'(엡2:11) 라고 말하면서 과거의 이스라엘 나라로부터 소외되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도 외인이었음을 상기할 것을 권고한다. 이들은 그리스도도 없었고 국적도 없고 친구도 없고 소망도 없는 자였다. 바울은 이들을 가리켜 하나님과 그의 백성으로부터 '멀리 있던 자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인 십자가의 사건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들이 하나님 가까이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방인들은 국적 없이 소외되었었지만 이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 즉 그리스도의 성전으로 살게 되었다.
2) 교회의 담
사랑을 받은 자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듯이 하나님과의 회복을 체험한 자만이 소외된 자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서로간에 화해를 주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성도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 속에서는 담을 쌓고 남을 경계하는 일들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벽을 헐고 모든 사람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뤄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이루신 새로운 공동체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이들은 소외된 자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리스도에 의한 화해는 분열과 적대감이 아니라 일치와 평화이다. 이 새로운 사회를 하나님은 통치하시고 사랑하시며 또한 그 안에 거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