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눅9:51) 예루살렘으로 사역의 정점부분을 감당하시러 가고자 하는 때부터 사마리아인, 세상에 얽매인 속된자들, 율법사, 바리새인, 바알세불 선봉자 등이 예수님을 배척한다. 우리 주님은 그 많고 불쾌한 배척에도 아랑곳없이 70인의 제자를 파송하며 외식에 관하여, 회개에 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용서에 관하여 많은 교훈을 베푸신다.
1. 속된 배척자들의 양상(눅9:51-10:37)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예루살렘을 가시고자 할 때 제자들이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흥분한 야고보와 요한이 불을 내려 저들을 멸하게 하자고 하니 예수께서 꾸짖으셨다. 그 뒤에 어떤 율법사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를 시험할 때 예수는 비유로써 사마리아인을 두둔하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그들의 배척의 원인은 무엇이며 제자들의 흥분은 어떤 연유에서이며 율법사에게 비유로 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세상에 얽매인 자
사마리아인들의 소원은 예수가 자기들과 함께 머물면서 자기들의 적을 막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예루살렘을 목적지로 그곳을 통과만 하겠다는 것에 그들은 격분하여 배척한 것이다. 바로 며칠 전에 변화산상에서 엘리야, 모세를 목격한 두 제자는 그 엘리야 때의 갈멜산의 불을 생각하고 멸하게 해 달라고 흥분하여 외쳤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적인 생각에 얽매인 좁은 소견의 그들을 꾸짖으셨다. 사마리아인들은 개처럼 취급받는 소외된 자들이다. 주님은 그들의 밑바닥에 내재하는 겸손함과 순수한 인간미를 바라보셨다.
2)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
예수를 배척한 사마리아인들이 있다고 해서 예수도 여느 사람처럼 그들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지 않는다. 당당하고 위태로운 율법사에게 대조롭게 비천하지만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천민을 비유한 것뿐이다. 반드시 사마리아인이 선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누구라도 안목이 편협하여 세상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든지 주님을 따르기 원하면서도 세상일을 먼저 한 다음에 남은 시간에 주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와 같다고 엄히 경계하신다.
2. 하나님 나라와 인자(눅10:38-13:30)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의 예수님 접대 장면은 너무도 생생하여 마치 극중에서 그들의 모습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초대한 장본인이고 그분께 맛있고 훌륭한 만찬을 대접해 드리기 위해 기쁜 마음과 정성으로 최선의 봉사를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경고를 받았고 할 일없이 예수의 발 앞에 앉아서 마치 일하기를 꾀부린듯한 마리아는 칭찬을 받았다. 그들의 경고와 칭찬과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의미로 연결되어졌는가?
1) 인자의 경고와 칭찬
마르다는 주님을 편하게 모시기 위해 부산스럽게 바빴다. 그것은 그녀의 헌신의 표상이다. 그녀의 모습은 관대하고 아량 있고 은혜 배풀기 위해 어떤 수고도 감내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주님은 마르다의 일시적인 심술을 자상하게 경고해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진리를 간파하고 주님의 심중을 헤아리는 것은 마리아이다. 마르다가 봉사자라면 마리아는 선지자이다.
2) 하나님 나라와 인자
마르다가 음식 준비로 분주할 때에 마리아는 주님의 '때'를 위해 간직했던 옥합을 가져왔다(막14:3). 그 예지적 정신은 깊은 신앙에서 수반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름다운 조화로 이루어진다. 숙고하는자와 행동한는 자, 영접하는 자와 말씀을 듣는 자, 그리스도의 교회는 둘다 요구된다. 안내자와 후원자 그 두 부류가 주님의 안에서 바르게 당겨주고 밀어줄 때 교회는 성장한다. 다만 예수님의 발 앞에 앉은 목적이 주님의 자취를 따르려는 것일 때에 한해서이다.
3. 인자가 배척한 자들(눅13:31-19:27)
예수는 자신이 배척당하시는 중에도 많은 교훈의 말씀을 주셨다. 그중에 천국을 많이 말씀하시며 천국에 들어갈 자는 겸손한 자, 회개한 자, 가난한 자의 양상으로, 멸망당할 자는 외식하는 자, 부자, 교만한자로 대체로 구분하셨다. 그렇다면 인자가 배척하는 부자들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심판받고 가난한 자, 특히 나사로는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가? 그렇다면 구원의 진리가 왜곡되는 것이 아닌가.
1) 회개와 용서
곡간에 재물을 많이 쌓아둔 탐욕스러운 부자(눅12:16-21), 거지 나사로와 대조되는 호화판의 부자(눅16:19-31)는 그들의 탐욕과 교만이 그들을 불신앙으로 몰고 간 것이 증명된다. 그들의 부는 선지자들의 전과에 귀를 먹게 하는 도구가 되었으므로 인자는 그것을 경계하고 배척할 것이지 부자를 무조건 멸시한 것이 아니다(눅16:31), 그리고 외식하는 자들은 그 위선적 교만으로 회개의 기회를 놓친다. 그러나 세리와 같이 자기를 죄인시하며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았다. 거지 나사로는 단순히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겸손과 고난중에도 인내한 신앙의 결과이다(눅16:25).
2) 인자가 배척한 자들
'교만은 패배의 선봉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 주님도 교만이라는 이름으로 부와 인습과 율법에 얽매인 위선적인 사람들을 극히 싫어하신다. 그들에게는 진정하게 자신을 돌아볼 빈자리가 없을 뿐 아니라 회개의 여지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신다.
주님은 그의 사역에서 배척을 당하시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우리가 그 시민이 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많은 비유와 분량으로 전혀 새로운 개념을 교훈하셨다. 그것은 평화와 의와 기쁨의 날, 칼과 왕관 없이 세워질 나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거룩함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나라이다. 그 나라에 이르는 자는 세상에 얽매여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 돌아보는 자거나 외식하고 교만한 자들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