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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선지자가 8개의 환상을 본지 2년이 지났다. 이때는 이미 성전재건이 어느 정도 많은 진척이 있었을 때였다. 어느날 벧엘에서 온 몇 사람들이 '금식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성이 훼파된 4월, 왕국과 성전이 무너진 5월, 그달랴 총독이 죽은 7월, 끝으로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기 시작한 10월, 이렇게 네 번 금식을 하였다. 그런데 벧엘에서 온 사람들이 질문한 요지는 해방이 된 오늘날도 그 옛날 일을 계속해야 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에 대한 스가랴의 답변이 본문의 내용이다.
1. 금식에 대한 질문과 첫 번째 답변(슥7:1-7)
본문은 벧엘 사람들이 계속해서 5월에 금식해야 하는 지를 질문하고, 하나님께서 답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찌하여 5월에 금식을 하였는가? 그리고 벧엘 사람들은 어찌하여 5월에 금식을 하였는가? 그리고 벧엘 사람들이 물은 질문의 요지는 무엇인가? 이때 하나님의 답변은 무엇이겠는가?
1) 금식보다 우선되는 순종
이스라엘에게 5월은 치욕적인 달이다. 그 달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되어 성전을 불에 타고 왕궁은 폐허가 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5월이 되면 그 때를 기억하여 슬피 울며 금식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훼파된 성전이 힘차게 재건되고 있고, 포로엣 귀환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벧엘 사람들은 이러한 시점에서 굳이 상처 있는 과거를 회상하여 슬퍼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제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금식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2)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
사무엘은 불순종하는 사울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15:22) 라는 말씀으로 그를 경고하였다. 우리가 성경 속에서 나타난 번영과 실패의 뒤안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느냐 불순종했느냐에 따라 판가름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말씀의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한 채 형식적인 제사 의식 속에서만 하나님의 섬기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신앙의 결과는 공허와 허무뿐이다.
2. 실생활의 의를 촉구함(슥7:8-14)
하나님의 앞단락에 이어 금식 준수의 진정한 의의가 무엇인지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그럼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답하신 금식 준수에 대한 답변은 무엇인가? 더불어 하나님은 조상들의 불순종을 상기시켰다. 그럼 조상들이 범한 불순종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했나?
1) 삶 속에서의 의로운 생활
하나님은 앞단락에서 금식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순종함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금식 준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정의를 구현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답변을 하셨다. 이같은 말씀은 이미 오래 전에 조상들에게 간곡하게 권면한 바 있었다. 하지만 조상들은 이를 완강히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항의 표현으로 돌릴 정도였다. 이에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시며 그들의 어떠한 부르짖음에도 듣지 않으셨고,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맡기어 열국으로 삼으셨으며, 이스라엘 땅이 황무지가 되도록 징계하셨다. 결국 이스라엘 조상들은 불순종의 대가를 혹독히 치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금식 준수 이전에 생활 속에서 의와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2) 공의를 행하라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 때의 북이스라엘은 최고의 번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성장은 종교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부패를 야기시켰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바알 숭배의 종교적 타락을 꾸짖었고, 아모스 선지자는 사회에 팽배해진 불의를 질타하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정도 의식주 문제는 해결되고 있다. 하지만 도덕과 윤리의 부패는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이때가 비로소 성도들의 신앙의 빛을 발할 시점이라 사려된다.
3. 기쁜 절기로 바뀌게 될 금식(슥8장)
본문은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세 번째, 네 번째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 하나님의 세 번째 답변은 무엇이며, 네 번째 답변은 무엇인가? 그리고 본문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라는 칭호가 총15회,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는 칭호가 10회에 걸쳐 나오고 있다. 그럼 이 말씀이 이렇게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임하게 될 기쁨
하나님의 세 번째 답변은 예루살렘의 영원한 회복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성전 재건이 이루어지는 그 땅을 축복하사 많은 추수를 거두도록 하시겠다는 용기와 소망을 주었다. 아울러 하나님의 백성답게 실생활에서 도덕적인 의를 다하도록 권면하셨다. 끝으로 하나님의 마지막 답변은 지금까지 행했던 네 번의 슬픔의 금식이 때가 되면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새 예루살렘에 영원한 구원이 있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금식에 대한 답변을 마치셨다.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강조하여 사용하신 이유는 당시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2)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상급
순종하는 자에게 상급이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신 축복이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마저도 축복으로 바꿔서 보증해 주신 축복이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마저도 축복으로 바뀌게 된다. 저주를 받아 기업을 잃게 된 레위 지파도 비느하스의 의로운 순종에 힘입어 다른 지파의 십일조를 받게 되는 축복을 누렸던 것이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금식 준수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금식 자체보다 더 중요하고 순종해야 할 본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성취이자 새 언약의 완성자이신 메시야가 예루살렘을 영원히 회복하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소망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모든 신앙 행위를 버리고 이제는 메시야를 대망하며 동시에 메시야를 소망하는 성도답게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