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소선지서

연구 2 패역한 이스라엘(호4-11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19:36
연구 2 패역한 이스라엘(호4-11장)
연구 2 패역한 이스라엘(호4-11장)

사람은 언제나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 더 나아가 그 죄악들을 보면서 자기도 그 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따라서 우리의 의지대로만 움직여 간다면 우리는 죄로 인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행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음도 잊지 않고 언급하신다.

 

1. 패역함의 원인(호4-6장)

 

인간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때문애 성경은 그 죄들을 고발하고 있다. 호4:2은 다섯 가지의 죄를 고발하고 있다. 저주, 사위(詐僞), 살인, 투절(偸竊), 간음 등이 그것이다. 이 부분의 히브리 원문은 부정법 절대형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의 죄악상이 만연되었음을 강조하는 한 단면이다. 이 땅에서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죄악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악한 것인가? 그러면 이러한 죄악의 원인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

이것이 호세아가 설교한 첫 부분의 주제이기도 하다. 지식이란 히브리 말이 어근은 tpd(다아트)이다(렘4:22; 5:4). 여기서 다아트는 [dy (야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사단이 하나님을 알듯이 어떤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다"(롬1:21)는 마귀의 지식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요일4:7,8)과 또는 계명을 지키는 것(요일2:3,4)이 꼭 동반되어야 한다.

 

2) 회복의길

이스라엘이 패역한 원인을 호세아는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에수님도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요17:3).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송용조 목사는 회복의 길이"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는것"임을 강조한다.

 

2. 형벌의 날과 길갈(호7-9장)

  호9:7"형벌의 날이 이르렀고"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형벌의 날은'길갈'이  주는 의미를 찾음으로써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 호9:15의 '길갈'과 '형벌의 날'은 어떤 상관성을 갖는가?

 

1) 하나님의 공의(죄 그리고 심판)

호9:15에 악이 '길갈'에 있기에 저희를 미워하고 그 행위가 악해서 내집에서 쫓아내신다고 성경은 기로한다. 여기서 길갈은 가나안 입성의 첫 장소로서 하나님의 긍휼을 크게 입은 곳이다. 내집은 호8:1에서 보듯이 기업의 백성, 이스라엘 자체를 의미하는데, 이는 무형한 하나님의 집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임했던 길갈(내 집)에 형벌의 날에 임할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2) 오늘날의 물질주의

  송용조 목사는 이스라엘의 악한 행위에 비추어, "오늘날 만연한 물질주의와 육체적 쾌락주의는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고 음행한 것과 다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악을 일깨우시고자 호세아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 여겨진다. 오늘날의 만연한 물질주의는 분명 우리 기독교인들이 거부해야 할 문제이다. 만약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물질주의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본문의 이스라엘 추방의 의미는 오늘날 교회에도 주어질 것이다.

 

3. 멍에와 하나님의 의(호10,11장)

호10:11은 하나님의 징계로서 오늘 그들의 곤고한 날을 예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호10:12에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는 말씀은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셔서 너희에게 의를 가르치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11절과 12절은 엄첨난 차이를 주고 있다. 전자는 징계요,후자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사랑의 깊이

호11:1은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라고 기록한다. 여기의  bha(아헤브; 사랑)는 '선택의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셨던 것처럼(말1: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 이 사랑의 표현이 11절과 12절에 나타난다.

11절은 이스라엘이 율법에서 허락한 축복은 좋아하나 율법이 요구하는 의무와 책임은 싫어한다는 내용이다. 그러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의 의를 비처럼 내리신다고 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가를 나타내는 한 단면이다. 그리고 호11:8에 가서는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고 하신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곧 우리를 향한 사랑임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우리의 온 마음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2) 하나님에게 나아가는자

  예수의 비유 말씀 가운데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올 때 아버지는 아들의 더러운 그 모습 그대로 맞이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이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들 역시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져서 더 이상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그의 사랑을 끊지 아니하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식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스라엘은 이것이 부족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씻어 주시고자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이것은 의를 비처럼 내리시는(호10:12)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이 사랑을 깨닫고자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길 하나님은 언제나 기다리시고 계신다(계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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