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욕망이 있다. 그런데 이 욕망은 끝이 없어 인간들로 하여금 빗나가게 마든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부할 지라도 그러한 것들로 인해 삶이 풍요로울 수는 없다. 본문은 한 인간의 노년기에 접어든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지나온 뒤안길을 돌아보았을 때 너무나 무익한 삶을 살아왔던 회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도자가 파헤치는 적나라한 모습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해 아래에서의 폐단(전6:1-6)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이 세상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인간들에게는 물질적 풍요에 따른 폐단이 나타났다. 그 폐단은 무엇인가? 그리고 전도자가 말하는 악한 병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악한 병은 치유되었는가?
1) 물질적 풍요는 일시적인 행복
전도서 기자로 알려진 솔로몬은 엄청난 재물을 가지고 있었다(대하1:1,12). 그러나 그는 그에게 있는 물질로 인해 만족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대신 그 풍요를 누리기 때문이었다(전6:2). 전도자는 사람에게 '중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전6:1).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폐단을 말하는데(전6:2-6), 이 폐단을 악한 병이라고 한다.
인간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재물을 모으고, 자녀들을 낳아 기르지만 이러한 일련의 소유조차도 결국은 하나님의 소유이지각 개인의 영원한 소유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라서 전도자가 말하는 이 세상에서의 폐단은 물질적 풍요로움은 결코 인간들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물을 올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중한 병에 걸린 것이다(전6:2).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보편적인 비극의 요소가 된다.
2) 주어진 복을 누릴 줄 아는 자
인간들은 복은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착오라고 할 수 있다(롬 11:36).온전한 복은 위에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는 모든 물질적인 요소들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주어진 상황에 대해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2. 부한자, 낙태된 자, 가난한 자(전6:7-9)
인간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한다. 그리고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끝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정해 놓은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그곳에 그대로 머물며 살 수 있을까? 전도자는 죽음 뒤에 오는 인간들의 모습을 말하면서 낙태된 자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사라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말하는가? 지혜롭고 부유한 사람들은 모두 삶의 궁극적인 문제들을 해결 받을 수 있는가?
1) 만족할 줄 모르는 인생
인간이 어떠한 살아가든 그들 앞에는 무덤이라는 막다른 집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많은 자녀와 장수하는 삶을 살더라도 그것이 결코 인생에 만족감을 주지는 않는다(전6:7). 인간들은 항상 좀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른다. 이러한 모습은 지혜로운 자든, 어리석은 자든 동일하게 적용된다(전6:8). 한편 전도자는 낙태된 자를 말하면서(전6:3), 이 세상에서의 삶의 중요성보다는 죽음 후에 오게 될 심판에 대비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왕상22:29-36). 즉 물질로 인해 오는 만족보다는 영적인 평안함을 누리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결국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의 모든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허망한 것임을 전도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전6:9).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올바른 답변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행동들 심지어 먹는 것, 마시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고전10:31). 육적인 것으로 인해 영적인 축복을 상실한다면 그 사람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결코 참 평안과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3. 인간의 종말(전6:10-12).
인간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 수는 잇지만 앞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죽음 후에 오는 인간의 상황은 미지수로 남게된다. 전도자는 순간 순간 살아지는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인간에게 있는 낙은 무엇인가? 또 죽음 후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1) 그림자 같은 인생
인간들이 하는 일에는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일이 많다(전6:11).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순간 순간들은 그림자처럼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전6:12), 절대로 거기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의 낙은 하나님의 품안에서 떨어지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품을 떠난 삶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요15:1-8). 인간들은 미래에 대해 불완전하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처럼 유한한 존재이며, 무한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삶을 살 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주어지는 것이다.
2) 인생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며,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이 땅에서의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이라고 하였다. 전도자의 이러한 깨달음을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하나님을 대치할 수 는 없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망각하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오는 것은 영원한 죽음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름대로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뒤를 돌아보면 후회할 것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많은 재물이 있으나 그것을 한번도 사용해 보지 못하는 인생, 끊임없는 욕망으로 이해 생겨나는 불만족은 결코 하나님을 인생의 주권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든 인생들은 결국 헛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부요함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느니 분도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말아야할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미래에 대한 산 소망이 있으며,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