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말씀은 꿀과 같아 | |||||||||
| |||||||||
|
한 성도님이 제게 택배를 통해 꿀을 잔뜩 보내왔습니다. 꽤 적지 않는 양입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실은 더 정확히 말하면, 제가 아니라 제 아내입니다. 제게 하는 말이, “사모님, 건강하시라고 샀어요” 합니다. 아내가 조금 피곤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아내가 감기로 얼마간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 아내가 걱정스러웠든지 건강 챙겨야 한다면서 꿀을 선물한 모양입니다. 나보다 아내를 더 챙기는 것에 내심 얄미웠지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피곤한 모습을 보여 한편 미안하지만 고맙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선지자를 선지자로 인정하고 그에 합당하게 대접하는 사람은 선지자가 받을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마 10:41). 어린 소자에게 건넨 냉수 한 그릇도 잊지 않으시는 인자한 하나님이 그의 선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상 주실 것입니다. 문득 달달한 꿀 차 한 잔 아내와 나누면서 제 본연의 직업 정신이 발동하였습니다. 성경에 꿀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퍼뜩 인터넷을 검색하고 사전(Dictionary of Biblical Imagery, IVP, 396-97, 488)을 보았습니다. 영어 성경(NIV)으로 찾아보니 도합 60번 등장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을 지칭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그 중에서 무려 21회를 차지합니다.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이 꿀은 대개 달콤함(삿 14:14, 계 10:9~10)을 상징합니다. 간혹 치료(잠 16:24)의 용도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값진 선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야곱이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는 애굽 총리의 말에 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선물에 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창 43:11).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아히야에게 병든 아들의 운명을 묻기 위해 아내를 보내면서 꿀 한 병을 들려 보냅니다(왕상 14:3). 해서 그 교우도 선물을 했나 봅니다. 무엇보다도 꿀은 풍성함과 번영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시 81:16, 신 32:13) 단단한 반석에서조차 꿀을 딸 수 있다면 얼마나 기름진 곳일는지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것은 비옥한 땅이라는 말입니다. 젖은 우유입니다. 목축하기에 적절하기에 젖이 넘쳐나고, 농사짓기에 알맞은 땅이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신 8:8, 왕하 18:32). 그러나 정반대의 의미도 있습니다. 때로 꿀은 박탈과 궁핍, 상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침례 요한은 거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마 3:4). 그의 외모와 의복, 음식은 자기 부정의 삶의 양식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그만큼 절박합니다. 기름진 음식을 물리고 박한 음식을 먹으며 철저히 회개하고 되돌아서야 함을 요한은 온 몸으로 증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종종 세상의 향락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아가서에서 꿀을 먹는 것을 성적인 즐거움을 비유하는 언어로 사용합니다(아 4:11, 5:1). 잠언에서는 보다 직접적입니다. “음행하는 여자의 입술에서는 꿀이 떨어지고”(5:3). 삼손은 이방 처녀와 결혼하려 가는 길에 사자의 입에서 단 꿀을 먹고 갑니다(삿 14:8~9). 세상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기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제게 꿀은 그 어떤 것보다도 성경의 단 맛과 풍성함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교훈은 금보다, 순금보다 더 탐스럽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 달콤하다.”(시 19:10) “주님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도 단지요? 내 입에는 꿀보다 더 답니다.”(시 119:103) 두 구절은 하나같이 성경의 소중함이 가장 값진 금보다 더하며 금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말씀을 욕망한다고 합니다. 성경이 단 것이 단 것의 대명사격인 꿀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라고 노래합니다. 그것은 정욕이 불타는 젊은이들이 깨끗한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이 다름 아닌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범죄할 수 있지만 성경을 마음 깊이 간직할 때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말씀은 은신처요 방패입니다. 곤란한 일을 당해 쩔쩔 맬 때 위로입니다. 바른 삶을 사는 지혜입니다. 가슴 시린 고난을 당해 말씀을 배워야 할 만큼 유익합니다. 끝조차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종일 묵상하고 말씀을 묵상하다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입을 열어 마치 목마른 사슴처럼 헐떡입니다. 그 좋은 말씀을 떠나 살면 눈물이 시냇물 되어 흐를 지경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른 사람 다 예수 떠나도 자신은 주를 좇겠다고 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예수님에게 있다고 말입니다(요 6:68). 다른 그 무엇보다도, 세상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거참 꿀이 달기는 단 모양입니다. 이리도 성경 읽고픈 마음을 새삼 불러일으키니 말입니다. 그렇게 달디 단 하나님 말씀을 읽고 또 읽어 ‘시냇가 심은 나무 되어야지, 복 있는 사람 되어야지’라고 다짐해봅니다. 절로 찬송합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235장) 김기현/ 수정로침례교회 목사 | |||||||||
|
'기독칼럼·논문·서적 > 기독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칼럼] 신자가 술을 마셔도 되나요? (0) | 2008.02.19 |
|---|---|
| [서평] 십자가가 없으면 제자도 없다 (0) | 2008.02.19 |
| 구태여 술, 담배를 금하는 세 가지 이유 (0) | 2008.02.19 |
| 돈 문제는 신앙의 핵심 사안-신자가 부자이어도 되나요? (0) | 2008.02.19 |
| [칼럼] 성경을 통독하자 (0) | 2008.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