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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경을 통독하자

은바리라이프 2008. 2. 19. 14:35
       
[칼럼] 성경을 통독하자
입력 : 2008년 02월 01일 (금) 17:13:31 [조회수 : 2014] 김기현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그 책의 사람들’(The people of the Book)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책은 일차적으로 ‘성경’을 말합니다. 하여, 그냥 책이라고 하지 않고 영어로 정관사를 붙이고 우리말로는 ‘그 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바로 그 책의 사람들’이라고 해야겠지요.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 많고 많지만 그 중에서도 책 중의 책인 성경을 즐겨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지성이 자라고, 영혼이 성숙하고, 삶이 변합니다.

침례교회사는 침례교인들이 기독교나 개신교 내의 어떤 교단보다도 성경을 사랑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장로교회에서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장로교인이 바로 ‘그 책의 사람들’이라고요. 놀라기도 했지만, 반가웠습니다. 침례교도인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기던 저로서는 영예스러운 호칭이 모든 개신교에게 공통이라는 것이 얼마간 섭섭했지만,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마땅히 그래야지요. 기실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사는 것은 특정 교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차적으로는 성경 외의 책들도 사랑한 사람들이라는 뜻도 담겨져 있습니다. 지성주의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 합니다. ‘한 권의 사람, 만 권의 사람’이고자 했던 요한 웨슬레는 하루에 다섯 시간은 독서하라고 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독서가 내면의 무질서를 정돈하고 영혼을 성장케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스스로 사고하는 훈련을 쌓지 않고, 또 평생 지속되어야 할 지적 성장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희생되고 만다.”(<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166쪽)

성경을 읽는 방법으로 대표적인 것이 QT와 통독입니다. QT는 성경을 깊이 읽기가 목표라면, 통독은 넓게 읽기입니다. QT가 정독을 방법으로 삼는다면, 통독은 속독으로 읽습니다. QT가 되도록이면 천천히 반복적으로 읽는다면, 통독은 빨리 많이 읽습니다. 통독이 전체의 조망을 우리 시야 속으로 들여놓는다면, QT는 성경을 삶 속으로 체득하게 합니다. 통독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면, QT는 그 말씀 자체를 묵상하는 동시에 지금 여기서 살아내는 것이 주안점입니다.

그러니까 QT는 현미경이고, 통독은 망원경입니다. 통독을 통해서 성경 전체를 하나의 숲으로 인식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QT를 통해서는 숲 속의 나무 하나, 새와 풀벌레 한 마리, 꽃 한 송이를 정밀하게 살피게 됩니다. 통독이 성경을 읽을 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전체를 보려 한다면, QT는 한걸음 더 다가서서 귀를 바싹대고는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듣는 것입니다. 각자의 기질과 스타일, 행습에 따라 무게 비중이 다르더라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통독은 말 그대로 성경 전체를 하나의 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성경 전체의 맥이 잡힐 것입니다. 성경에 일관되게 흐르는 세계관과 가치, 하나님의 마음이 보일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통독만큼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성경 66권 중 어느 한 두 책에 치중해서 읽으면 부분적으로 알게 됩니다. 순서대로 구약의 창세기에서 신약의 계시록에 이르는 파노라마를 훑어보면 성경 속에서 통일되고 일관된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통째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전부를 읽어야지 자신의 기호에 따라 취사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비유컨대, 생선을 살과 뼈를 함께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게 맛은 물론이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을 집중해서 읽고, 어렵다고 자꾸만 미루는 것은 말씀을 대하는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곳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한에 있어서 편식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에서 한두 권을 좋아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정경 속의 정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잣대로 특정 경전이나 본문을 우위에 두고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서를 해석할 때, 마가복음이 네 복음서의 근간이기에 마가복음에 우선권을 두고 해석합니다. 구약에서는 토라, 곧 모세 오경이, 그 중에서도 출애굽기가 구약을 해석하는 하나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니 로마서나 요한복음, 시편이나 출애굽기를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성경 전체의 맥락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 예가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입니다. 그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이 실망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준행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 결과 인간의 타락한 현실에 입각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윤리적 준거틀을 마련합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은 로마서 7장의 신학입니다. 문제는 그의 성경에는 로마서 8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 아래 사로잡힌 인간의 실존만 보았지, 인간을 해방하는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서 자유롭게 된 인간을 주목하지 못한 것이지요.

통독과  QT로 성경을 알아가자

성경을 통독하는 한 방법으로 많은 분들이 맥체인의 성경읽기표를 추천합니다. 새해 첫날 창세기 1장으로 창조의 시작을, 에스라 1장으로 민족의 갱생을, 마태복음 1장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사도행전 1장으로 교회의 시작을 읽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골고루 매일 네 장을 읽습니다. 이렇게 해서 1년에 구약 한 번, 신약을 두 번 읽게 됩니다. 맥체인 자신뿐만 아니라 마틴 로이드 존스와 존 스토트도 이런 성경 읽기로 성경 전체를 개관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식의 성경읽기를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라는 책의 성격에 걸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이 한 권과 같을 뿐 아니라 각 권도 통째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비유하자면 하나님의 연애편지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절절한 심정을 담은 66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이 여기 찔끔, 저기 쪼금 읽는 것은 아무래도 우스꽝스럽습니다. 순서대로 그러나 열정적으로 읽을 것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그 내용이 길지 않은 것이라면 단박에 읽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성경은 대하소설과 같습니다. 나관중의 <삼국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말입니다. 누군가가 그 책이 너무 좋다면서, 그리고 전체 내용 파악 위해 1권, 3권, 6권, 9권의 각 1장을 본 다음, 그 다음날은 각 2장을 읽는 방식으로 독파한다면 어떨까요? 그 참 엉뚱한 발상이라고 내심 생각할 것입니다. 성경의 각권은 무엇보다도 문학적으로 하나의 단위입니다. 그런데도 분절된 것처럼 뚝뚝 떼서 읽는 것은 성경의 문학적 성격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으로는 단연 ‘표준새번역’과 ‘쉬운성경’을 추천합니다. 둘 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입니다. 이 성경들은 성경 통독의 목적에 부합합니다. 고어체가 많이 남아 읽기가 어려운 개역성경보다는 술술 잘 읽힙니다. 둘 중에 하나를 굳이 고르라면 저는 표준새번역을 선택하겠습니다. 쉬운성경이 특정 출판사의 사역(私譯)이라면, 표준은 공인된 권위 있는 번역번이기 때문입니다.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면서도 의미가 잘 통하도록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설교할 때 자주 사용하지요.

통독하면 떠오르는 분이 김익두 목사님입니다. 이분은 정말 망나니 같은 분이었습니다. 온갖 행패를 다 부리던 이 분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받기로 예정한 시간보다 1년이 지나서 세례를 - 이분은 침례 형식이 아니니까 세례라고 했습니다. - 받았습니다. 그 사이 성경을 100번 읽었습니다. 3일에 1번 읽은 것입니다. 나중에는 성경이 거의 외울 정도로 읽었습니다. 아무라도 성경을 펴서 읽으면 어느 책, 몇 장, 몇 절인지를 척척 맞출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성경과 예수님을 사랑한 것이지요.

어떤 분은 자기 나이만큼 성경을 읽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치고 독서가 아닌 이가 없고,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치고 성경과 독서를 게을리 한 사람 없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 마침내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끝내 성경과 내가 구분 없이 하나 되는 경지를 갈망하고 매진하다보면,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여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기현/ 수정로침례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