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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십자가가 없으면 제자도 없다

은바리라이프 2008. 2. 19. 17:00
[서평] 십자가가 없으면 제자도 없다
존 스토트가 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십자가는 하나님 능력이요, 지혜
입력 : 2007년 11월 02일 (금) 17:33:19 [조회수 : 1507] 김기현 ( ezrakim

   
 
  ▲ <그리스도의 십자가 >/ 존 스토트 지음/ 황영철 옮김/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펴냄/ 733쪽/ 1만 7000월 
 
 
1. 십자가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루터)

십자가는 성경과 신학, 신자의 삶을 규정하고 평가하는 기준이요, 방향을 지시하는 가늠자다. 예수는 십자가 지기 위해 오셨고, 그랬기에 십자가를 기피하라는 베드로를 두고 주저하지 않고 ‘사탄’이라고 호통을 쳤다.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기를 원치 않았다. 십자가만 사랑하였다.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으로 중세 가톨릭의 ‘영광의 신학’과 그 성채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몰트만에게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에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이야기하지 않는 신학은 아무런 감명을 주지 못했다. 십자가가 없다면 아무 것도 없다.

만약 당신이 이렇듯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십자가를 알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피할 수 없다. 이 책은 십자가의 의미를 판별하는 기준과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빠짐없이 제시한다. 1부는 십자가 이해의 기초를, 2부는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의 충돌을 해결하는 십자가의 핵심을 논구한다. 3부는 십자가의 영향을 탐색한다. 십자가로 죄인이 구원받고, 하나님을 알고 악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 4부는 십자가 이후, 곧 십자가의 공동체와 삶을 서술한다. 십자가는 모든 것이다. 이 책은 십자가의 모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었는가 여부로 당신의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말은 결코 과하지 않다.

2. 상징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폴 리쾨르)

상징은 무엇인가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생각이다. 모든 상상력의 원천은 상징에 있다. 문제는 그 상징이 무엇인가에 있다. 우리 기독교의 상징은 다름 아닌 십자가다. 사실 십자가만큼 말도 안 되는 상징은 없다. 누가 고문 받고 사형당한 자와 그 사형틀을 자신의 신앙의 상징으로 삼는단 말인가.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 거친 십자가가 아닌가. 사람들이 원하는 표적에 미치지 못하고, 지혜치고 너무 생뚱맞다. 그러나 십자가를 십자가의 눈으로 볼 때,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에게는 신학과 신앙의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언제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십자가의 운명을 타고났다. 모두 십자가를 말하지만, 십자가를 사랑하는 이는 드물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읽지 않았지만, 아무라도 아는 척하는 책이다. 해서, 나는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다루는 고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애초부터 사랑받기 글렀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십자가의 현실이요, 고전의 숙명이 아니던가. 뉘라서 속도와 실용의 시대에 이렇게 두껍고 느려터진 책을 한 줄 한 줄 공들여 밤을 홀딱 새워가며 읽겠는가. <마시멜로 이야기>나 <긍정의 힘>이나 줄곧 읽겠지. 그런 이가 있다면 그는 바보다. 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을 자청해서 하는 그에게 이 책은 분명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선사할 것이다. 읽는 자는 복 있을진저!

3. 십자가가 없다면 면류관도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십자가 아래서 사는 삶’(4부)이 제일 좋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제자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 다음에는 항상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이 뒤따라 나온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기독론이자 제자도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듯이, 십자가를 따르지 않고는 제자가 되는 법은 없다. 십자가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입증이듯, 십자가 아래 사는 삶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사랑의 증거이다. 십자가 지고 따르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지금도 우리는 십자가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름을 듣는다.

안타깝게도 나는 스토트의 생각과 달리 하는 곳이 있다. 고전인지라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당대의 지식이 달라지는 법.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갈라디아서는 그의 첫 번째 서신서”(649쪽)가 아니다. 맥그라스의 말처럼 이런 “약점이 없는 책은 없다”(682쪽).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가 창조의 질서라는 대목은 동의할 수 없다(579쪽 이하). 국가는 타락한 질서에 속한다. 바울은 악을 선으로 이기는 한 사례로 국가를 언급한다. 따져 볼 일이다. 그래도 이 책은 십자가 지고 가며 읽어야 할 책이다. 게다가 존 스토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673쪽)이다. 아, 나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존 스토트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십자가 아래서.

김기현 / 수정로침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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