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사학 특강] (7) 해상 왕국 가야의 비밀 |
[2001.01.30 10:17] | ||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수로의 일행이 지금의 낙동강인 황산강 하구에 도착했을 때에 그 땅을 신답평이라고 했다.변한의 족장들이 수로를 추대하여 나라를 세우고 그 이름을 가락국이라 했는데 수로의 직할지를 금관(金官)이라 한 것은 수로가 가락국의 제철산업을 크게 일으켰기 때문이었다.철은 당시 국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나라에서는 철과 소금을 전매제도로 통제했을 정도였다.그리고 수로가 가락에 들어와 제철 산업을 크게 일으켰음은 당시 한 제국의 제철산업을 주도한 것이 산동 지역의 동이족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환웅천강도가 발견된 가상현의 남쪽에는 지금도 김향(金鄕)이라는 지명이 남아있어 수로의 연고지일 가능성도 있다. 금관은 동방 3국은 물론이고 선비와 오환 그리고 후한과 왜국까지 철을 보급한 제철의 대국이었다.수로의 때에 이미 가락국이 보유한 상선은 500척에 이르고 있었다.후일 신라가 이 곳을 김해(金海)라고 부른 것은 가락국이 비록 그 영토는 작다하나 모든 바다에 쇠를 공급한 해상 왕국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한 제국의 박해를 받아 한반도로 귀환한 수로는 그의 제철 기술을 바탕으로 바다의 왕국을 건설할 꿈을 가졌고 마침내 그 꿈을 실현했던 것이다.수로의 그 꿈을 성취한 이면에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멀리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 공주의 출현이었다. 수로가 가락에 도착한 지 6년 후인 AD 48년 남해 바다에는 붉은 돛을 단 배 한척이 붉은 빛 깃발을 휘날리며 나타났다.그 배에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그를 수행해온 두 신하의 내외 그리고 선원 20여명이 타고 있었다.김견명은 삼국유사에서 허황옥이 마치 불교를 전하러 온 것처럼 하여 그녀가 배에 파사(婆娑,페르샤)의 석탑을 배에 싣고 온 것으로 기록해 놓았다.그러나 허황옥이 도착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수로에게 그녀가 온 목적을 말하는 대목을 다시 들어보자. “금년 5월 제가 본국에 있을 때 부왕이 왕비로 더불어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제 밤 꿈에 함께 상제(上帝)를 뵈었는데 상제의 말씀이 가락국왕 수로를 내려보내 등극케 하였으니 그는 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그가 새로 나라를 세웠으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어 짝을 삼게 하라 하시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 가셨다고 합니다.부모님께서 잠을 깬 후에도 상제의 말이 아직 귀에 쟁쟁한지라 저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곧 이곳을 떠나 그리로 가라 하시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상제(上帝)는 천(天)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며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다.불승이었던 김견명도 수로의 가문에서 전해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어서 하나님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다.허황옥이 가락국에 도착한 AD 46년은 예수의 사도 도마가 페르샤를 거쳐 인도에 들어가 선교하던 시기이다.당시 페르샤는 도마를 비롯하여 시몬,다대오 등 사도들의 선교 중심지였던 것이다.외경 ‘도마행전’에는 사도 도마가 인도에 들어가 처음 전도하여 세례를 준 사람이 인도의 공주이며 뒤따라 왕와 왕비도 세례를 받았다고 돼있다.허황옥의 배가 처음 도착했던 곳을 가락 사람들은 ‘주님의 포구’ 즉 주포(主浦)라고 했다. 김견명이 파사의 석탑이라고 써 놓은 그 돌이 지금도 김해의 허왕후릉에 남아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손댄 석탑이 아니라 자연석 여섯개를 쌓아 놓은 것일 뿐이다.허황옥은 그녀가 타고 온 배에 큰 돌 여섯개를 싣고 온 것이다.왜 그 돌들이 배에 돌을 실려 있었을까? 페르샤에서 온 사도 도마는 본래 갈릴리의 배기술자였다.그는 먼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공주의 배에 돌을 옮겨가며 중심을 잡도록 여섯개의 큰 돌을 실어주었을 것이다.그것을 김견명은 파사의 석탑이라고 한 것이다. 김해에 있는 수로왕릉의 납릉정문에는 석탑 모양의 그릇을 가운데 두고 두마리의 물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가운데 있는 그릇 모양은 누가 보아도 나중에 덧칠하여 개작하였음이 완연하다.어쨌든 이 그림은 갈릴리의 오병이어 교회에 있는 모자이크와 같은 형태인 것이다.허황옥과 결혼한 수로왕은 국호를 가락국에서 ‘가야’로 바꾸었는데 그 가야는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의미한다.이 물고기는 초대 교회에서 기독교인들사이에 사용된 암호였다.헬라어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말의 이니셜이 물고기 즉 ‘익두스’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면 신라 제5대 왕인 파사(婆娑) 이사금은 수로왕을 매우 존경하여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그를 모셔다가 자문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왜 그는 자신의 왕호에 파사 즉 페르샤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일까.이는 그가 수로왕을 통해서 페르샤와 인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도마의 복음을 듣고 감동하여 기독교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1956년 불국사 경내에서 발견된 석제 십자가와 마리아 관음상이라 불리는 마리아상 그리고 영남대학교 박물관 지하실에 보관돼 있는 양을 품에 안고 있는 석상들도 그런 사실들을 뒷받침 하는 것들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고조선 시대부터 무궁화를 사랑하며 살아왔다.무궁화는 산해경 해외동경에 훈화초(薰華草)로 나와 있고 고조선에서는 이를 천지화(天指花)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화랑의 머리에 꽂아주던 꽃이었다.이 무궁화는 영어로 ‘샤론의 장미’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메시아를 상징하는 꽃이고 고대의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꽃이었다.아라랏 산 넘어의 소치 항구에도 이 꽃이 있고 중국의 태산에도 무궁화가 피고 있다.그 꽃잎은 순결한 백색이고 화심은 피처럼 붉으며 꽃대는 노란 황금빛이다.이는 바로 그리스도의 순결과 고난 그리고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BC 4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와 이를 상징하는 유향과 몰약과 황금을 아기에게 선물로 드렸다.바로 그 해,혁거세 54년에 신라의 첨성관은 큰 별이 나타난 것을 관측했다. “2월에 패성(혜성)이 하고(河鼓,은하수)에 나타났다”(‘삼국사기’ 신라본기) /김 성 일<작가·한세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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