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드라마 <이산>
매력적인 이야기 소재의 보고 - 정조 시대
<다빈치 코드>에서 촉발된 팩션 붐에 걸맞는 한국 작품의 시초를 찾는다면, 대부분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꼽을 것이다. 1993년에 출간된 <영원한 제국>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미스터리를 제대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역사속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재구성하는 기존 역사소설과는 다르게 <영원한 제국>은 허구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미스터리 기법을 도입하여 관객이 쉽게 역사 속으로 빨려들게 만들었다. ‘금등지사’라는 가상의 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남인과 노론의 당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후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보여준 선구적인 한국 팩션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원한 제국>의 시공간이 바로 정조 시대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문화계의 눈과 귀는 고대사와 함께 정조 시대에 맞추어져 있다. <주몽> <대조영> 등으로 이어지던 고대사 열풍은 <태왕사신기>로 절정에 올랐지만, 이 작품들은 사실보다는 허구에 더욱 많은 것을 의존하며 강력한 영웅을 그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근대, 현대사의 영웅이 대부분 실패한 영웅인 것에 비하여 고대사의 영웅은 대중이 원하는 거대한 승리를 쟁취한 진정한 영웅으로 그려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몽이나 광개토대왕이 고대사의 영웅인 것은 분명하지만,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그들의 모습은 사실보다는 원망(願望)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설보다, 이미지에 의존하는 드라마에서 유독 고대사가 많이 그려지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다.
반면 정조 시대를 다룬 작품은 소설,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성공을 거두었다. 드라마 <이산>은 시청률 20%가 넘는 성공을 거두었고, 정조의 암살설에 기초한 미스터리물 <8일>이 케이블에서 방영되었다. 정조 시대의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한 <비밀의 화원>(이정명 지음)이 출간 2개월 만에 20만부를 넘기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요즘 한국에서 역사 팩션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다빈치 코드>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사건>이 20만부를 넘긴 후, 정사만이 아니라 야사와 미시사를 다룬 다양한 대중역사서가 쏟아지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가 단지 왕들의 교체로 이루어진 왕조사가 아니라, 온갖 잡스럽고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흥미로운 사실들로 가득한 풍속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는 실록이나 야사가 잘 보존되어 있고, 현대와 시대적으로 연속성을 가진 시대’라는 말처럼 대중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조선 시대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정명의 <뿌리깊은 나무>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내시의 이야기인 <왕과 나>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대이면서도, 의외로 관심이 가지 않았던 정조 시대에 현미경을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 소설 전문 작가라고도 할 수 있는 김탁환은 한 시대를 한 인물을 통해 조명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선조 시대는 이순신이 주인공인 <불멸>, 중종 시대는 <나, 황진이>, 광해군 시대는 <허균, 최후의 19일>였다. 하지만 백탑파 이야기는 이미 10년 전부터 3부작으로 가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정조 시대는 너무나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어서, 도저히 한 인물과 작품으로 끝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조 시대는 천주교와 북학 등 새로운 사상이 들어오며 충돌을 일으켰고, 한편으론 왕권과 사대부의 권력 다툼이 치열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정조는 지적이면서도 강단 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현재 한국사회가 바라는 지도자상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과거일 뿐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도 연구하고 검토해볼 여지가 무궁무진한 시대였던 것이다.
‘당시 조선사회는 농업과 상업의 발달에 의한 신분제의 해체라는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었다. 즉 아래로부터의 변화에 의해, 사대부라는 소수 지배층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전근대적 사회 체제의 개혁을 요구받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는 이런 변화를 적절히 수용하려 한 군주였다. 그러나 그의 사망과 함께 전개된 세도정치는 이런 변화를 거부하는 극단적인 수구 정치 체제였다. 당시 조선뿐 아니라 전 세계적 추세였던 개혁과 개방을 외면하고 오히려 보수와 폐쇄로 전환한 세도정치는, 역사의 반동이자 후퇴였으며 사실상 조선의 멸망이었다.’(이덕일)
채널CGV의 <8일>에서 김상중이 연기한 정조
정조 시대를 알기 위해서는 정조와 마찬가지로 암살설이 유력한 경종 시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숙종 대에 남인과 서인이 대립하다 서인이 승리했지만 다시 송시열의 노론과 윤증의 소론으로 분열된다. 숙종은 당쟁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지만, 사대부의 강력한 힘을 해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숙종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른 경종은 암살되고 만다. 경종을 암살하고 영조를 옹립한 노론은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에 방해가 된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세자를 죽일 정도의 권력까지 갖게 된 노론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 역시 결사적으로 방해했다. 하지만 사도세자를 죽인 것에 가책을 느낀 영조는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그러자 노론은 정조에 대항하는

이인화 원작의 <영원한 제국>
노론이 정조를 직접 시해하거나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미는 동안, 정조 역시 왕권 강화를 위한 개혁을 단행했다. 명목상으로는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을 설립하여 당론에 물들지 않은 문신들을 규합하여 개혁 정치세력을 만들어내려 했다. 그리고 군사조직인 장용위를 만들어 국왕을 호위하는 개혁적 무신들을 양성했다. 이후 장용위는 장용영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현륭원이라고 이름 붙인 후, 재위 14년 2월부터 사망하는 24년까지 12번이나 원행을 했다. 정조가 노론과 대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남의 남인 세력은 노론을 비판하는 만인소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얼마 후 정조는 사망하게 된다. 정조는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흥미로운 팩션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어야만 한다. <다빈치 코드>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이유는, 예수의 자손이라는 의문 자체가 워낙 극적이기 때문이다. 정조 역시 마찬가지다. 정조라는 인물을 둘러싼 모든 것이 의문이다. 개혁을 꿈꾸었지만 결국 실패한 정조는, 모든 것을 수수께끼로 남겨두었다. 이를테면 정조는 얼마나 개혁적인 인물이었을까? 김탁환이 <열화광인>을 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조는) 이미 어렸을 적에 주자학에 심취했고 굉장히 똑똑했죠. 그래서 조선을 주자학에 기초한 품격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백탑파는 달랐죠. 소위 북경 유학파로서 신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옛것을 배척하고 새로운 어떤 것을 해보고자 했던 거죠. 당시의 보수꼴통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두 세력이 연합해야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달랐던 겁니다.”
조선시대에서 세조, 구한말 시대와 함께 가장 드라마틱하고 음모가 많았던 시대인 정조 시대를 팩션이 다루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김탁환이 말하듯, 아직까지도 우리는 정조의 전모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건 정조의 일대기를 다룬 <이산>을 다 보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팩션의 가치는, 역사의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그리면서, 그 안에 현재적 의미가 있는 수수께끼를 어떻게 연결시키는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조 시대는 한국 팩션이 마땅히 도전해야 할 시대인 것이다.
<금등지사>는 정말로 있었을까?
<금등지사>는 없었지만, <금등비서>는 있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인 후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담은 <금등비서>를 작성했다. 금등이란 쇠줄로 단단히 봉하여 비서를 넣어두는 상자를 말하는데, 이는 주공이 무왕의 병을 낫게 해주고 대신 자신을 하늘로 데려가라고 하늘에 빌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신하가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즉 신하인 사도세자가 국왕인 영조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내용이니, 사도세자 사건에 대한 일종의 후회인 셈이다. ‘피 묻은 적삼이여 피 묻은 적삼이여. 동(영조)이여 동이여. 누가 영원토록 금등으로 간수하겠는가. 천추에 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란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후회하는 영조(<이산> 중에서)
화성 천도설은 정말이었을까?
80년 이상 노론이 집권한 서울을 떠나 화성으로 천도하려는 시도는 사실이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현륭원이라고 이름 붙인 후, 12번이나 원행을 했다. 또한 군사조직인 장용영을 내영과 외영으로 나누어 내영은 서울을 중심으로, 외영은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운영했다. 장용외영에는 2만여 명의 군사가 소속되어 있었다. 정조는 능행을 통해서 사도세자와 현륭원 그리고 장용영을 하나로 묶었다. 능행은 왕실의 권위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행사이자, 백성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어가를 따른 인원이 6천명이 넘었고, 동원된 말도 1400여필이나 되었다. 백성들은 능행 때 몰려나와 억울한 일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처벌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정조는 정말로 암살당했을까?

드라마 <8일>의 원작이 된 <원행>
백탑파는 실제로 있었을까?
백탑파는 영정조 시대에 탑골의 백탑 아래에 모여 시문을 공부하고 경세를 논한 지식인 그룹을 말한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백동수 등 대부붕이 서얼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당상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정조의 개혁을 보필하게 되었다.
'GG뉴스 > 문화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정완 영화칼럼-트렁크 문을 닫고 그 여자와의 장난 멈춰라 (0) | 2008.01.20 |
---|---|
[MBC 문화사색]문화트렌드 '박물관의 이유있는 변신' (0) | 2008.01.20 |
한국인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 브런치와 와인 (0) | 2008.01.20 |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1위 한국의 대표 IT 문화 트렌드, ‘싸이월드’와 (0) | 2008.01.20 |
미드열풍의 원인 미국드라마의 시대적구분 미드가 유통산업에 미치는 영향 (0) | 2008.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