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모세오경

창세기 1 장

은바리라이프 2007. 12. 30. 21:35

창세기 1 장


◇우선 1, 2장을 읽으면서 다음 도표를 완성시키시오.

준 비 (배 경)

완 성 (설 치)

첫째날

(1) (낮, 밤)

네째날

(4)

둘째날

(2) (하늘, 대기)

다섯째날

(5)

셋째날

(3)

여섯째날

(6)

일곱째날

(7)

    (1) 빛 (낮, 밤)
    (2) 해, 달, 별
    (3) 궁창 (하늘, 대기)
    (4) 어류, 새
    (5) 땅, 바다, 채소, 과목
    (6) 땅의 생물, 사람
    (7) 안식하심

1. 희랍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을 물, 불, 공기, 흙... 등으로 믿었다. 성경에는 이런 생각이 있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만물의 근원은 빛: 1절과 2절 두 구절은 서론이거나 선언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면 구체적인 물질의 창조에서 최초의 창조는 빛이라고 볼 수 있다.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만물보다 먼저 빛을 창조하셨다. (탈레스, 물, 아낙시만드로스?)

    빛을 가장 먼저 창조하셨다면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 E = MC2은 모든 물체를 에너지화 할 수 있다는 말이며 그것은 모든 물체는 빛으로 이루어져있다는 말이다. 이 빛은 현재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빛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빛은 태양 빛이다. 그 태양 빛은 넷째 날에야 만들어진다. 말하자면 태양 빛도 그 빛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도 원래는 빛(태양 빛이 아닌)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는 태양에너지에 의해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 태양이 있기 전에 더 근원적인 빛이 있었다고 한다.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식물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고대인이 쓴 글인지 아니면 사람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인지 우리에게는 판별할 능력이 없다. 믿든지 버리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함부로 버리기 전에 과연 그럴까하고 많이 공부하는 것이 좋다. 땅, 빛, 뭍 외에도 궁창 위의 물, 사람을 만드신 흙... 우리가 쓰고 있는 땅과 같은 개념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가령, 컴퓨터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 심부름꾼이 하나 있어서 여기서 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엄청나게 빠르게 불평 한마디 없이 합니다’ 달리 좋은 방법이 있겠어요? 창세기의 앞부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 잘 듣는 심부름꾼’을 찾아보려고 컴퓨터를 뜯어보는 할아버지같은 짓을 우리가 많이 한답니다.

2. 시간도 하나님의 창조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시간 바깥에 계시는 분이시다. 그것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창조물은? 아인슈타인의 시간에 대한 설명을 참고해 보자.

    빛: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낸다면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은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는 분이시란 말이 된다.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말은 전지전능하다 혹은 무소부재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은 시간과 관련이 있다. 가령,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 헤아리고 계신다는 말씀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서울과 포항을 왔다 갔다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면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되며,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3. 비유적 하루설이란 진화론에 바탕을 둔 지질학적 연대기와 성경의 기사를 조화시키려는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이론 같은 데, 요는 성경의 하루를 지질학적 OO기로 본다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창조 기사에 나타나는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불특정한 시간의 길이(예를 들면 선캄브리아기 라는 식)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증거로 현재의 하루는 24시간인데 24시간을 의미하는 하루는 (   )째 날에 만들어졌기 �문이다.

    넷: 믿을 필요는 없지만 이런 이론도 있음을 참고로 알아두자.

4. 창조론자들의 가정에 의하면 처음의 지구는 온실의 비닐처럼 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물이 온실처럼 지구를 둘러싸고 있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말씀은 무엇인가? (구름이란 표현도 노아 홍수 이후에 나온다)

    궁창 위의 물: 하늘과 물은 아무 관련이 없을까? 히브리어에서 물은 ‘마임’, 하늘은 ‘샤마임(저 편의 물)’이라고 한다.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릴 때는 궁창 위의 물은 구름이라고 배웠는데 구름은 결코 궁창 위의 물이 아니다. 높은 하늘에서 보면 지표면에 깔려 있는 것이지 궁창 위의 물이 아니다. 노아 홍수 때에 사라진 수층이 대기권 어디엔가 있었다는 가정은 성경의 여러 가지 사실과 부합된다. 고대인들이 그린 벽화에 등장하는 태양 중에는 타원형이 있다. 물을 통해서 보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5. 우리 몸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나온다. 이러한 음식에서 나오는 열은 태양에서 나오는 열을 식물이 받아서 저장한 것이다. 태양에너지가 없으면 모든 생명체는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생물의 근원이 되는 에너지도 근본이 태양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     )보다 (             )를 먼저 창조 하셨다.

    ( 태양 )보다 ( 나무나 채소 )

6. 에덴 동산의 사자와 호랑이는 (         )을 먹고 살았다.

    푸른 풀: 사자의 소화기관이나 이빨은 육식에 알맞게 되어 있는 데 그 무슨 어리석은 소리? 사 11:7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 아담의 범죄와 노아 홍수와 함께 닥친 변화가 얼마나 큰 변화이었는가에 관심을 두면 이 정도의 변화는 별 것 아닌 변화일 수도 있다.

7. 어떤 부자가 다음과 같이 유언을 했다. “모든 재산을 자기 종에게 준다. 다만 어린 아들에게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준다.” 어린 아들이 종에게 살해당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랬는데 아버지를 닮아서 똑똑한 이 아들은 무엇을 택했을까?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에게 복을 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사람이 받은 복이 가장 큰 이유가 이 이야기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모든 재산을 소유한 종을 가진다: 복 받은 피조물을 다스린다.

8. 우리 꼬마가 고집이 좀 세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해도 자기는 엄마를 닮았다고 우긴다. 이 꼬마의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증거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하나님의 자녀로 창조하셨다는 뜻): 현재 인간의 모습은 결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너무나 깨어지고 비틀려져버렸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고후 4:4, 골 1:15, 히 1:3).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알거지가 옛날에 우리도 떵떵거리며 살았다고 자랑하는 꼴이다.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우리(롬 14:15)’이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다.

9.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다. 맛있는 음식은 맨 나중에 나온다. 모든 사람이 준비를 끝내고 난 후에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등장하는 법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졌다. 왜?

    제일 나중에 만들어졌다.

10. 성경의 가르침 외에 사람이 존귀한 이유를 말해보고 성경의 가르침과 비교해 보시오.

    만물의 영장(동물들이 들으면 자기네들끼리 하는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까?),
    사고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사고능력이 없거나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공부 못하는 사람은 인간도 아니란 말인가?),
    도구를 사용하니까(도구 쓰는 동물이 사람뿐인가?)
    동물은 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사람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사람에 의해서만 사람으로 완전하여지도록 만들어졌다. 오히려 사람의 값을 떨어트리는 것 아닌가?)

    ↔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만드셨다.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가르치는 일에 등한하다.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사람이 귀한 존재라고 할 것인가? 거기다가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판이니, 갈수록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풍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능력이 있건 없건 잘났건 못났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점에서 사람은 존귀하다. 신약으로 이어지면 이런 인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존귀하다. 이런 자존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끔 말썽피우는 학생들과 상담하면서 옛날에는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참고 학교에 열심히 다녀라하면 통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렵다. ‘엄마도 우리를 버렸는데요’ 라는 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인간의 소중함을 달리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11. 진화론에서는 한 종에서 다른 종이 나왔다고 주장하는 데 이것을 명확하고도 단호하게 부정하는 표현을 찾는다면?

    종류대로: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는 불가능하다. 단지 한 종 내에서 더 뛰어난 개체는 있으나 이것은 소진화라고 말한다. 결코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는 지상에서 단 한 건도 목격되지 않는다.

12. 하나님을 닮은 것과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은 외에 사람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은 존재라는 증거를 찾으시오.

    음식이 다르다: 씨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 우리는 밥을 먹는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고 아버님은 진지를 드신다. 임금님은 수라를... 말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같은 셈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예 질이 다른 음식이 주어졌다. 또, 짐승들에게 비하면 사람은 굉장히 많은 양을 먹는 셈이다. 소죽에 사람이 먹는 보리를 조금만 섞어주면 부쩍부쩍 자란단다. 사람이 다른 동물들에게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두뇌활동 혹은 정신적인 활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비정상적으로 살이 찌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도 이런 현상이 아닐까?

13. 우리 주변의 인간세상이나 자연 세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좋다’라는 감탄사가 나올까 아니면 ‘개판이구만’이라는 탄식이 나올까?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는데 우리의 반응이 이와 다르다면 왜 그럴까?

    현재의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그 세상이 결코 아니다. 타락이후 그만큼 변했다는 말이다.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음에도 1,000년 가까이 살았으나 노아 홍수이후 100세 정도로 줄었다. 이왕 다시 태어날 모습이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사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는 바가 아니란 증거다. 잘 살면 100년이나 사는 우리의 인생은 10살밖에 살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14. 동물은 몇 가지로 분류되나?

    어류, 조류, 육축(가축), 기는 것, 짐승, 사람: 몇 종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짐승과 구별지었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가축으로 쓸 수 있는 짐승도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일찍부터 길을 들인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육축이 따로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누구나 별다른 노력없이도 함께 지낼 수 있는 동물도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이다.

15.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를 단면으로 잘라서 본다면 우리는 굉장히 위험한 곳에 살고 있다. 육지보다는 바다가 훨씬 더 넓고, 육지의 높이보다 바다의 깊이가 훨씬 더 깊다. 우리가 사는 포항은 아주 깊은 바닷가인 셈인데 위험한 물가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역 근처의 섬나라 필리핀 사람들은 아마 자신들의 위치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불안해서 잠이 잘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수면이 조금만 더 높아진다면 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아도 우리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왜?

    하나님께서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두셨기 때문에 결코 육지를 침범하지 않는다(9): 포항 해수욕장의 모래는 곱기로 소문이 났었다. 바람에 날려가고 파도에 쓸려가는 듯 싶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던 모래가 제철이 들어선 이후 다 떠내려가고 이제는 그 옛날의 곱던 모래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포철에서는 결코 포철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함). 사람이 손대지 않는 한 자연은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다. 동해안은 점점 가라앉기 때문에 바닷가에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염려는 접어두는 것이 옳다.

16. 주야, 징조, 사계절, 일자, 년한은 태양이 있고 달이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말 성경은 다소 애매하게 번역이 되었지만 원어에 충실하자면 14절은 ‘주야, 징조, 사계절, 일자, 년한을 이루기 위하여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으라’ 라고 해야 한다. 우리에게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끝도 없다는 우주의 많은 별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인간중심일까?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하여 창조되었음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신 4:19).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사람이었다. 그에 비하면 끝없이 넓은 우주도 하나님에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친구가 암으로 투병 중일 때 하반신이 마비되어 대, 소변도 못 가린 채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을 때 그 친구의 아내가 한 말은 ‘이런 모습으로라도 살아만 주면 감사하겠다’ 는 것이었다. 그의 재산이나 그의 능력, 그의 그 무엇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친구를 사랑한 것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오직 그 한 사람 자체에만 온 관심이 다 쏠리는 것이다.

17. 장차 회복될 새 하늘에는 밤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계21:25, 22:5). 다시 말하면 본래 하나님의 나라에는 밤이 없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어두움(밤)을 만드셨을까?

    육체를 입은 우리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천지 창조의 핵심이 사람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교대 근무나 24시간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경우에 밤에도 근무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지만 밤과 낮을 바꾸어 사는 것은 자신에게 결코 이로울 수 없다. 타락과 구원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회복된 모습은 처음 창조 때보다 더 나은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다.

18.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시지 않은 경우가 몇 번이며 어떤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가?

    2번, 나누임: 1) 빛과 어두움을 나누신 경우(4절 ↔ 18절)와 2)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을 때 ‘좋았더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나뉘어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기 때문 아닐까? 그런 하나님에게서 사람이 떨어져 나온 것이 하나님에게는 얼마만한 고통이겠으며 부부가 하나되는 것이나 교회가 하나되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소원하고 계시는 지 짐작할 수 있다. 물과 뭍이 나뉘어진 것은 나뉘어진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물이 한 곳으로 모인 것이라고 하시며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 본래 나뉘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흩어져 있던 물이 한 곳으로 모인 것이다.

    (4절의 빛과 어두움은 18절의 빛과 어두움과 어떻게 다른가?) 전자에 대해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없지만 후자에는 있다. 후자는 나누임이라기보다 협력관계인가? 그러면 전자는 완전한 분리인가? 물과 뭍이 그러하다. 나뉘어졌음에도 좋았더라가 있다.

19.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보다는 인간을 구속하였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창조사역은 1:1절 한 마디로 끝내고 1:2절부터 구속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6일간 모든 자연만물을 창조하셨지만 창조행위보다는 그것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속의 역사, 곧 인간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다음 빈곳에 알맞은 말로 채워보자.

    안식일은 안식년을 겨냥하고 있다. 안식년은 희년을, 희년은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겨냥하고 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겨냥하고 창조 사역을 6일간이라는 구조로 만드셨다. 굳이 6일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분이 아니잖은가? 창조 때부터 인류의 타락을 아셨고, 회복을 염두에 두셨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편지에 ‘오늘은 시내에 나가서 CD를 사고, 카드를 고르고, 책을 샀다’고 적었다면 이것을 ‘애인의 쇼핑 내역’이라고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랑고백’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창세기를 ‘하나님께서 단순하게 세상을 이렇게 창조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구속하기 위해서 이렇게 일을 시작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는 말이다.

20. 하나씩 창조하실 때마다 ‘좋았더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사람까지 완성하신 후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비유컨데 토기장이가 토기를 구워내고 ‘좋다’고 탄성을 연발하다가 어느 하나를 보고 ‘심히 좋다’고 했다면 하나님의 감탄과 같을까 다를까?

    토기장이의 감탄에는 ‘우연’이나 ‘요행’의 의미가 들어있을 수 있다. 똑같은 것을 여러 개 만들었는데 대체로 잘 나왔는데 어느 하나가 특별히 마음에 더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우에는 이런 요행수가 없다. 처음부터 다르게 작정해서 만드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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