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에게서 꿀을 얻으려면 매년 벌 한통에 설탕 한 포대정도는 양식으로 주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꿀'이 아니라 '벌에게 먹인 설탕물' 아니냐는 의혹도 생기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가짜꿀 치고는 최고급(?)입니다. 비록 설탕물일지라도 벌의 뱃속을 통과하면서 벌의 효소가 작용한 것이니까요.
양봉하시는 분들이 꿀 속에 설탕 성분을 최소화하려면 굉장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꽃이 피고 꿀이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설탕물을 먹여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이라면 꿀이 들어오겠다 싶은 날에 벌통의 양식이 깨끗이 떨어지도록 맞추는 것이지요. 이론은 그렇지만 벌의 생사가 달린 위험한 일입니다.
꽃이 피었다고 바로 꿀이 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꿀이 날 것을 예측하고 벌의 양식을 조절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벌을 한꺼번에 죽일 수도 있는 위험이 따릅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좋은 꿀을 따려는 양심적인 양봉업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꿀은 믿지 말고 사람을 믿으라'는 말도 있고, '꿀은 부자지간에도 속인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고 꿀이 쏟아질 때에는 설탕물을 아무리 갖다 놓아도 벌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꽃마다 꿀이 달려 있는데 가짜꿀에 속을 벌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때에는 가짜꿀 만들기가 진짜꿀 만들기보다 더 어렵고 힘듭니다.
술이나 담배가 교회 나오는데 장애가 됩니까? 아니면 남몰래 켕기는 데가 있습니까? 교회 가기가 너무 부끄럽습니까? 교회를 너무 그렇게 선한 사람만 모인 곳으로 보지 마십시오. 교회는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온갖 병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기 위한 가족들과 의사, 간호사, 심지어 장사꾼마저 모여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아픈 사람이 '나는 지금 간도 나쁘고, 장도 나쁘고, 폐도 나쁘다. 힘도 없고 돈도 없다. 조금 회복이 되고 여건이 좋아지면 병원에 가겠다'고 한다면 이처럼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요?
교회는 선하게 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선하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선하게 되려는 사람, 즉 선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더 힘써 찾아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태복음 2:17)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사람에게는 교회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교회가 잘못해서 욕을 듣는 경우가 많은 것은 진짜 잘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이렇게 선하지 못한 사람들도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좋지 않은 습관이나 버릇이 있다고 교회 나오는 것을 주저하십니까? 지은 죄가 많아서 더 큰 벌을 받을 것 같아서 가급적 교회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교회는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곳이기 때문에 있는 모습 그대로 오셔야 합니다. 추호도 병을 다 고치고 병원을 찾겠다는 생각은 갖지 마십시오.
양의 우리에 잘 있는 99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길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서 이리 저리 헤매이고 다니는 목자의 마음이 곧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찾은 즉시 머리에 이고 돌아와 이웃들을 불러서 잔치를 벌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요, 교회의 사명입니다. 계산상으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지 않는 것이 유익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그런 계산을 떠나서 길 잃은 양을 불쌍하게 여기십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도 그냥 그대로 오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시면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담배나 술을 끊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끊으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어떤 분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가짜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법입니다. 진짜꿀을 발견하고는 설탕물에 관심도 두지 않는 벌처럼 '성경의 맛'을 알게 되면 저절로 담배나 술이 멀어진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성경 말씀이 인생의 목적이나 가치관을 바꿀 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람의 입맛마저 이렇게 바꾸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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